"줄소송 우려" vs "주주 보호"…끝나지 않은 상법개정 공방전
국민의힘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주주 보호 충분"
"상법과 규율 범위 달라"…'눈 가리고 아웅' 지적도

[뉴스투데이=염보라 기자]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문턱을 넘었지만 여당과 야당, 산업계와 개인투자자 간의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다.
야당과 개인투자자들은 기업의 무분별한 '쪼개기 상장' 등에 따른 주주 피해를 막기 위해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를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과 산업계는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26일 국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상법개정안 등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상법개정안 등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데 따른 결정이다.
상법개정안은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충실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탓에 국내 증시의 폐단으로 지목되는 '문어발 상장' '쪼개기 상장' 등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에 따라 자본시장을 넘어 국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의 무분별한 합병과 분할로 주식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상법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반면 국민의힘은 기업 경영에 혼선을 초래할 확률이 높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계의 입장은 여당과 같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상법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24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상법개정안이)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대한민국을 기업 하기 힘든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야당의 상법개정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민의힘의 거부권 행사 요청 방침이 전해지자 비영리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의 공식 카페에는 "상법개정은 꼭 필요하다" "대통령이 '밸류업'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상법개정을 들고 나온 만큼 (여당은) 수용해야 한다", "(상법개정안을) 거부하는 순간 시위를 해야 한다" 등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법원 판례로 일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례는 '이사는 회사 이익을 위해 일하면 된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법에서 (주주 이익 보호를) 명시하지 않으면 소액주주의 피해가 영구불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산업계가 우려하는 소송 남발 가능성에 대해 "잘못되면 (투자자가 기업의) 소송 비용을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남발할 수가 없어 (줄소송은) 기우에 가까운 걱정"이라면서 "회사가 잘못했을 때에는 소송을 제기할텐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피력했다.
학계에서도 상법개정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크게 갈리는 모습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투데이>에 "과거 영미권에서 주식회사는 신탁의 법리에 의해 규율됐는데, 자금을 낸 사람에 대해 신탁의 관리자가 충실의 의무를 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아주 근본적인 법리"라며 "(주주에 대한 충실의 의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하루 빨리 추진해야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회사를 만들었으면 회사의 지분을 가진 주주에 대한 충실의 의무는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 등 거대 자본의 경영권 공격에 대한 대책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반면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범위를 주주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지 교수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검토를 의뢰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 관한 헌법적 고찰' 의견서를 통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이사는 책임 회피를 위해 필연적으로 주주를 우선한 경영의사 결정만을 할 유인이 증가할 것"이라며 "결국 회사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권리도 보호하도록 하는 헌법상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헌법 제119조)과도 상충된다"고 판단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상법개정안의 대안으로 인수·합병(M&A), 물적 분할 시 주주의 보호 조치를 '핀셋' 규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민의힘 소속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해당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합병가액 결정 시 주가,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한 가액으로 결정 △이사회는 합병 등의 목적 및 기대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해 공시하는 등 주주의 정당한 이익 보호를 위해 노력 △합병 등을 하는 경우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합병 등에 관한 평가를 받아 공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전성인 교수는 "자본시장법의 규율 범위는 상법의 규율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눈 가리기 아웅"이라면서 "예를 들어 상장회사는 분할하는 순간 비상장사가 되는데, 이후 합병을 추진한다고 할 때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지지 않는 문제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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