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모멘트' 바라만 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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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타임머신을 타고 6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옛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름 58cm, 무게 83.6kg, 안테나 4개가 달린 알루미늄 공 모양의 스푸트니크 1호는 소련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상공으로 치솟았다. 이 인공위성은 900㎞ 상공에서 1시간 36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무선 신호를 안테나로 송출했다.
공교롭게도 그해는 ‘러시아 우주 개척의 아버지’로 불리는 물리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가 탄생한 지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소련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자국의 첨단 우주 기술을 보란 듯이 뽐낸 것이다.
당시 우주 개척에 가장 앞섰다고 자부해온 미국은 스푸트니크 발사 장면에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에 휩싸였다. 기술 우위를 자신해온 국가가 후발 주자의 앞선 기술에 충격을 받는 순간인 ‘스푸트니크 모멘트(Spuknik Moment)’가 미국 눈앞에 펼쳐진 셈이다.
위성 발사에서 선두를 빼앗긴 미국은 절치부심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 그 이듬해인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해 우주과학 기술에 엄청난 예산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미국은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으며 우주개발 경쟁에서 소련을 다시 앞지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실로 되돌아오니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경구(警句)가 자못 뼈저리게 다가온다.
미국이 ‘AI(인공지능) 패권’을 사실상 장악한 골리앗으로 군림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선보인 AI 모델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윗 ‘딥시크’가 골리앗 미국 AI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것 아니고 무엇인가.
딥시크가 AI 개발에 투자한 비용이 558만달러(약 81억원)로 AI 분야 최강자인 미국 오픈AI 대표 모델 ‘챗GPT’ 개발비 1억달러(약 1458억원)의 18분의 1 수준에 그친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처럼 딥시크가 저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AI 반도체 시장의 맹주인 미국 엔비디아 주가가 한때 17% 넘게 주저앉아 ‘딥시크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AI 개발에 엔비디아의 비싼 신형 칩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딥시크가 ‘AI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는 꼬리표가 붙어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 경영학자 겸 위기분석 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외친 ‘블랙스완(Black Swan)’이 문득 떠오른다. 촌음을 다투는 글로벌 테크 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인 블랙스완은 언제든 출몰한다. 딥시크가 이를 웅변하고 있지 않는가.
딥시크의 화려한 등장에 미국 기업과 정부가 잇따라 견제구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 미국과 중국 간 AI 패권 경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AI 굴기’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발표해 오는 2030년까지 AI 연구개발(R&D)과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AI 세계 최강'이 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일까. 중국의 AI 기술 수준은 2020년 기준으로 미국의 85.8%에 이르며 미국, 유럽에 이어 세계 3위다. 그러나 중국은 AI 논문 인용 수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AI 세계 최강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둘러싸고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앉아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AI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중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것은 우리 앞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고 무엇인가.
세계 주요국이 AI 등 최첨단 기술 경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지만 우리 정치권에는 한가한 남의 얘기다.
공산주의 국가 중국마저 국가 차원에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반(反)기업 정서에 매몰된 정치권은 국가 미래가 달린 반도체산업특별법 등 경제 살리기 법안을 외면하고 있는 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에서 주인공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머무르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다른 곳으로 가려면 이보다 두 배 더 질주해야 한다”라고 역설한 ‘붉은 여왕’의 외침은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AI와 로봇 등 4차산업혁명 첨단기술이 속출하는 글로벌 초경쟁 시대에 ‘붉은 여왕의 법칙’처럼 품질을 끊임없이 개선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붉은 여왕이 마술봉을 휘두르고 있는데 현재 성과에 안주해 한순간 방심하면 아찔한 천 길 낭떠러지가 발아래 펼쳐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전 세계 산업 지평이 급변해 ‘졸면 죽는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언더도그마’, ‘근거 없는 피해의식’, ‘경제지식의 무지’로 점철된 우리 정치권의 세계관은 그저 한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