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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의 이슈산책

20대 남성은 왜 극우가 되는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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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
입력 : 2025.01.31 10:47 ㅣ 수정 : 2025.01.31 10:47

여민남국(여성은 민주, 남성은 국힘)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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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 뉴스투데이 회장.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이대남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시즘의 첨병이자,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홍위병, 유겐트가 되었다. 대구지하철 세월호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조롱하는 학우들,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실 분위기, 일베가 단순히 유머로 치부되는 학교 내 남초 환경,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연장선에 있는 군대와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이런 것들이 이대남이라는 집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대남은 자신의 권리가 무엇에 위협받고 있는지, 누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 채, 반대를 위한 반대와 혐오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다. 급기야 이들은 탄핵반대집회에 참가하는 수준을 넘어 내란 가담 세력이 되어 폭동을 일으키고 법원을 습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대남을 사유화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윤석열과 국밈의힘에 분노하기에 이 자리에 섰다.

 

대구에서 올라 온 20대 남성(고양이 뉴스 유튜버)이 집회 현장에서 성토했다. 남성 청년으로서 같은 세대의 극우화를 개탄하고 나선 것이다. 내란 전과 내란 후, 그리고 조기대선을 보는 태도에서 청년 남녀는 확연한 차별을 보인다. 전 연령층 구간에서 남녀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2030뿐이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남녀의 상반된 정치적 태도는 왜 다른 것일까? 

 

1) 누가 짱돌을 들었는가?

 

중앙일보가 두 개의 집회에 참여한 인구데이터를 분석했다. 서울시는 KT와 협업해 매일 1시간 단위로 각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연령별·성별로 추정한 생활인구 데이터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지난해 12월14일 오후 3시 탄핵안 촉구를 위해 여의도에 모인 인파는 44만5900여 명이다.

 

그중 20대 여성의 비율이 15.6%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은 것은 30대 여성(11.5%)이었다. 집회 참가자 4명 중 1명(27.1%)은 20·30 여성이었다는 이야기다. 응원봉을 들고 K-팝을 부르며 시위를 주도했다.  반면 20대 남성은 3.9%, 30대 남성은 6%에 그쳤다.

 

윤석열 구속영장이 집행됐던 1월15일 서울 한남동에는 응원봉이 아닌 태극기와 성조기를 쥔 20·30 남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한남동에는 4만8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20대 남성(6.5%) 30대 남성(10.7%)로 이들의 합(17.2%)은 여의도의 탄핵안 촉구 때(9.9%)보다 비중이 2배 정도 늘었다.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에서도 이어졌다. 시위대가 법원으로 난입하기 직전인 18일 오후 11시 같은 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20대 남성과 30대 남성은 각각 6.1%, 9.4%를 기록했다

 

청년 남성들이 내란을 비호하는 정당을 옹호하고, 정권재창출을 원하고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12.3 계엄군의 국회 진입 때 보여주는 쭈볏쭈볏하는 Z세대 군인이 있는가하면 폭도가 된 이들도 있다. 윤석열이 시청하기를 권고하는 극우 유튜브를 즐겨 시청하고 있다. 지역주의, 개신교 근본주의, 고령층 반공주의와 함께 2030의 여성혐오주의가 극우정당의 4대 인적 기반이다. 2021년 서울시장(20대 남 72.5% 국민의힘 지지. 출구조사),  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특히 청년남성의 다수는 일관되게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극우화되었는데도 여전히 지지를 하고 있다.

 

2) 이대남, 변혁의 주체에서 극우의 전사로? 

 

우리 역사에서 20대는 늘 변혁의 주체이자 담지자였다. 새로운 역사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20대 남성이 극적으로 변화했다. 홍세화가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2003. 한겨레신문)에서 먹고 마시고 논다고 개탄했던 그들. 우석훈 박권일이 ‘88만원 세대’(2007)에서 세대 착취와 승자독식구조에 맞서기 위해 토플책을 덮고 거리로 나와 봉기하라고 촉구했지만 꿈쩍도 안했던 그들. 그들이 어디에 있는가 했더니 한남동과 서부지방법원에 나타났다. 2030 남성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조 앤 윌리엄스는 EBS ‘위대한 수업’을 통해 <저출생, 워킹맘, 극우 그리고 신자유주의> 현상을 진단했다. 왜 젊은이들이 극우화되는가를 묻고 답했다.

 

“남성들은 경쟁이 심해지자 분노와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중산층 일자리와 내 집은 얻기 어려워졌다. 아버지 세대에 가능했던 일이 지금 세대에서는 어려워졌다. 아버지 세대에서는 좋은 일자리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했다. 지금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젊은 남성은 이민자를 탓하지만,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젊은 여성들을 탓한다.  ‘분노는 항상 아래로 흐른다.’ 이것은 진리다. 부유층이나 노동의 질을 떨어트리는(비정규직) 대기업, 정부를 탓하는 대신에 여성들을 비난한다.(여성 혐오) 20대 남성의 80%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성’을 위협하는 것 중에 ‘가장(家長)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정을 부양하는 것은 오랫동안 ‘남성성’, ‘남성다움’의 상징이다. 이 남자다움의 상실을 남성들이 맛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한 분노가 여성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3) 남성성, 남성다움의 상실 혹은 변화-가부장제에서 가모장제로

 

인류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 가부장제적 질서다. 여기서 남자는 가정의 중심이고, 돌아가신 조상 남자는 우주의 중심이었으며, 남자 자손은 내일의 중심이었다. 이것이 주자학적 세계관이었다. 조선사회에서 인간은 아들을 낳고 키우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가신 남자 조상을 잘 섬기기 위해서이다.

 

역사(history)는 남성사(his story)이다. 남성의 역사이지만 모든 남성의 역사가 아니다. 가부장제하에서 지배자가 된 남성의 얘기다. 하지만 지배당한 남성들도 그들의 세계관에 젖어있다. 씨족의 위계를 관리하고 그 체제와 항렬을 통해서 단합을 도모하고 위세를 보인다. 제사와 같은 문중의 가장 큰 행사를 관리하고 재산을 분배한다. 남성은 이 세계의 중심이고, 여성은 국외자이다.

 

남성다움은 가정을, 가정경제를 부양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여성은 그 가정을 관리하는 역할 분담체제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분업이 먼저 깨졌다.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1970년대 여성의 사회적 진출, 1980년대 여성 CEO의 출현, 1990년대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부딪혔다. 여자는 남자의 경쟁자가 되었다. 학업 직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을 가진 여성, 이른바 알파걸(Alpha Girl)이 출현했다. 

 

결정적인 것은 세계화, 신자유주의이다. 외환위기를 거쳐 한국경제와 사회도 완전히 포섭됐다. 평생 직장의 시대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가 되었다. 부의 원천이 노동에서 금융으로 이전했다. 노동의 외주화, 비정규직화가 진행됐다. 가정의 주부양자로서 어깨를 펴고 살던 시대는 끝났다. 여성도 신자유주의 피해자가 되었다. 반면에 새로운 흐름도 나타났다. 여성이 주부양자가 되거나, 여성이 남자보다 수입이 많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된 부모를 보면서 오늘의 20대는 자랐다.

 

우리나라의 고령층 7080은 가부장제에서 태어나서 가부장제로 인생을 마감한다. 지금의 5060은 가부장제의 온갖 특혜 속에서 자라나서 가모장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원래 가모장제는 가정의 주부양자가 여성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가부 가모장제가 양립(공동부양제)하고 있거나, 여성의 권력이 가정 내에서 남성 보다 우위에 섰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지금의 20대 이하는 가모장제에서 태어나 가모장제 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여전히 20대의 남자에게 구시대의 남자다움을 강요한다. 

 

4) 지금의 청년 남성은 어떻게 자라났나

 

우리나라에서는 선택적 낙태, 즉 여아를 낳지 않고 남자를 골라 낳는 젠더사이드(Gendercide)가 지속되었다. 1970년대에 시작하여 1990년 무렵에 정점(여아 100명 대비 남아 114)을 찍었고 2011년(105.7)에 자연성비로 돌아왔다. 젠더사이드의 후반부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부모의 의도와 달리 학교에서 부터 여자 아이들에게 밀렸다. 공부는 여자들이 앞섰고, 사귐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넘어갔다. 

 

합계출산율이 6.0이었던 1960년에 남자와 여자는 학교에서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가정에서부터 여자는 남자를 위해 희생했다. 오빠나 남동생의 학업 성취를 위해 공장에 취직하고, 집안의 생활비를 보탰다. 이때는 과외공부, 학원, 진학 등 미래를 위한 투자가 남자아이들한테 집중되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는 경쟁 상대가 안되었다. 어차피 여자는 졸업하고 나면 시집갈 것이라는 사회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었다. 

 

출산률이 떨어지면서 남녀 차이가 없어졌다. 여자아이에 대한 투자가 똑같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서 겪는 학령기 남학생의 학습 부진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났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발달이 먼저 이뤄지면서 교실의 경쟁에서 앞선다. 남자아이들은 반복되는 좌절을 일찍부터 경험한다. 스스로를 우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열성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부로는 안된다는 여성과 경쟁이 안된다는 좌절에 빠지게 된다. 

 

싸움이나 게임중독 등 사고를 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는 비인지적 능력도 남자아이들이 부족하다. 핀잔과 꾸지람은 온전히 남자 아이들의 몫이다. 과거에는 남자답다고 했던 행동이 용서가 안된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1996년에 출판되어서 밀리언셀러가 된 장편 소설 ‘아버지’(김정현)에서 아버지는 항상 외롭다. 가족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돈 버는 기계다. 남자아이들이 본 첫 남성이다. 아버지의 지위와 역할이 위태로와 보였다. 남성성, 남성다움 즉 패권적인 헤게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강하다. 가정 내에서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실력자다. 때로는 남편의 기를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남편을 윽박지른다. 용돈도 어머니에게서 나온다. 사회에서 처음 접하는 이들도 대개 여성이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여자다. 가르치는 것은 여자가 하는 일로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은 이미 여학생들 더 많다. 대학입시에서 여학생들과 치열한 경쟁을 한다. 그리고 스펙쌓기에 나서야 하는데 남자들은 군대에서 2년을 보내야 한다. 군대는 남녀 경쟁에서 결정적이다. 취업경쟁을 하는 또래 친구 여자아이들이 스펙을 쌓는 동안 북한 땅을 바라보거나  기합을 받는다. 군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국가가 나에게 해주는 일이 없다. 그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청년 남성은 성차이가 역전된 시대에 살고있다.

 

5) 남녀간의 성전(性戰)이 시작됐다.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청년 남성은 특히 이대남은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그랬다. 남성 우위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른다. 꿈도 못 꾼다. 이미 세상은 가모장제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천년간 남성이 태어나고 자랐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2030 여성의 삶도 사고방식도 그들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수천년간의 어머니와 완전히 다르다.

 

외환위기는 중산층을 파괴했고 중산층의 진입장벽을 높였다. 금융위기 등 잇달은 경제위기는 치열한 적자생존의 시대를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의 무한경쟁이 시작되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안정된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남자도 여자도 공무원이 되려고 했다. 이때부터 공시 열풍이 3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이회창 아들의 면제가 이슈가 되었다. 이를 덮기 위해서 1998년 공무원 시험에 군가산점 5%를 주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이대생 5명이 나서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했고 만장일치로 위헌판결이 났다. 징집문제는 남녀간의 이익전쟁이 되었다. 여자도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격렬한 남여 성전의 서막이 열렸다. 

 

남성들은 신자본주의 하에서 집과 여성을 소유할 수 있는 남성과 그렇지 못한 남성으로 나뉘어진다. 다수의 남성들은 후자로 편입되어 점차 남성다움(주부양자)을 상실해 나가는데 반해서, 여성들은 남녀관계에서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격,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 남성들은 인터넷 공간으로 이주를 했다.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남초 공간에서 시작하여 일간베스트에서 형제애를 키웠다. 꼴페미를 처단하고, 폭력과 욕설이 난무한 가운데 새로운 남성다움을 습득했다. 인터넷 남초공간에서 남자의 자격을 이상한 방식으로 회복하여 재주체화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여성이 들어오게 되면 현실세계처럼 소유자와 비소유자가 나뉘어지게 되고 세상이 평등해지지 않는다. 여성이 들어오면 축출했다. 현실세계에서 마음껏 할 수 없는 연애와 성을 포르노 이미지를 교환하고 공유하는 사이트(소라넷)을 통해 해소했다. 그런 남성이 다수는 아니다. 하지만 이를 알게된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한국 여성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집단적으로 자각하게 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있다” 여성의 생명이 항상적으로 위협받는 구조를 깨트리기 위한 운동이 일어났다. 사회적 반향이 없으면 반향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여성들의 공적 등장이었다. 여성운동의 대중화를 촉발시켰다. 2015년 8월 메갈리아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독립된 왕국이 건설된다. 이들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대해 남성 혐오로 되돌려주었다. 미러링을 이용한 전투적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대단한 전략적 성과를 얻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남성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되었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고, 메갈리안의 등장으로 남성들은 온라인이라는 그들만의 영토도 위협받았다. 

 

6) 청년 남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청년 남성은 세상이 완전히 여자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정체성 정치 즉 페미니즘은 이제 부문운동이 아니라 주류운동의 하나가 되었다. 페미니즘이 권력이 되었다고 보며 자신들을 페미니즘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성평등한 세상에서 태어나, 여성을 차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자신은 가해자가 되어있다.

 

남자들은 찌질해 보인다. 왜소해진다.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여성들이 침투한다. 여성들은 명품 성형 해외여행 등으로 소비시장의 주체가 되었다. 반짝반짝거린다. 그들의 인스트그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자들의 이런 소비는 남자들에게 빌붙어 사치한 결과라는 것이 청년 남성들의 인식이다. 남성들은 게임캐릭터, 술집 풍경, 영끌해서 구입한 외제차를 올릴까 말까 한다. 잘해봤자 인생에 단 한번 미국야구, 영국 축구 직관한 그림이다. 질적 차이이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비혼선언 비혼주의 비혼가족이 어느새 트렌드가 되었다. 선택적 낙태로 남자들이 가뜩이나 많은데 여자들은 점차 연애와 결혼으로부터 멀어져간다. 남자들이 경제력을 독점했을 때는 경제력으로 얻은 일부를 여성에게 나눠주는 대신에 섹스와 연애와 가정과 가사노동을 교환했다. 남자들의 호주머니가 얇아지면서 그런 우월적 교환은 어렵다. 가뜩이나 힘든 판에 비혼을 당한다. 여성들은 외국 남자와 어울린다. 그들과 교제할 때는 더치페이를 하면서 한국 남자한테는 독박을 쓰게 한다는 분노를 갖고 있다. 게다가 “키가 180cm 이하면 루저”라는 말까지 한다. 아예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2030 남성들은 여저히 자신의 어머니 같은 여성상을 원한다. 그런 여성은 이제 현실에서는 없다. 반면 2030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들도 낳지 않으려고 한다. 남자들은 전통에 따라 모든 것이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더 보수적이 되는데 여자들은 더 넓은 평등과 더 많은 변화를 원한다. 그 간극이 크다. 여기서 생기는 원망을 된장녀, 김치녀로 한국 여성을 매도하는 것에서 해소를 한다.

 

모든 것은 군대 문제로 환원된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경쟁자인 된장녀 김치녀들을 위해 군에서 복무한다는 것이 억울하다. 공인된 국가기구에서 2년을 폭력적인 환경에서 살았는데 국가가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군 경력이 승진에서 반영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기재부가 2021년에 정부와 공기업에 일괄적으로 내려보냈다. 여성들에게는 여성을 위한 정부 부처(여성가족부)가 있지만 남자들은 2년 동안 공적 기부를 강제하는 국방부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청년 남성 특히 이대남의 생각이다.(계속)

 

※ 이 컬럼은 개인의 견해이며, 뉴스투데이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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