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한숨, 생계형적합업종 지정 제도 이대로 좋을까
[뉴스투데이=최정호 산업2부 부장대우]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생계형적합업종'은 자영업자들에겐 최후의 보루(堡壘)와도 같다. 이 제도는 자본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밀고 들어오는 대기업으로부터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했다.
좋은 취지로 만든 제도지만 대기업이 진출한 뒤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이 이뤄진 전례가 많다는 게 흠으로 꼽힌다. 업계 판도가 대기업쪽으로 기운뒤 지정해봐야 자영업자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2020년 10월의 일이다. 중고차매매업이 생계형적합업종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자 대기업들이 사업 진출을 위해 준비할 때였다. 대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중고차매매업에 진출해 있었다. 특히 중고차매매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잠식이 컸다. 남은 것은 정부의 공식 지정뿐이었다.
위기를 느낀 중고차매매업 종사자들은 단체행동에 나섰다. 수원에서 소규모로 중고차매매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 대표를 만났다.
“한 달에 중고차 5대를 팔려면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옷매무새 할 시간도 없다”고 그는 하소연했다. 또 전셋집을 구할 형편이 되지 않아 150만 원 월세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있지만 중고차를 팔아서 돈을 벌지 못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중고차매매 업계의 극한 반대에도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이 지난해 해제됐고 대기업들은 올해 사업에 공식 진출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중고차 일을 하고 있다. 중고차허위매물 근절과 관련한 활동을 하며 업계 이미지 쇄신을 위해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들의 진출은 비단 중고차 시장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기업들과 대한제과협회와 맺은 상생협약이 무의미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과업은 지난 2019년까지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다가 자율 협약으로 전환됐다. 대한제과협회와 맺은 상생협약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신규 점포를 출점하는데 제한을 받았다.
제과제빵 업계에서 생계형적합업종을 보호하는 것은 대단히 애매모호한 일이다. 우선 대기업 제과점이 가맹사업 형태이기 때문에 점주에게는 생계형적합업종이기는 마찬가지다. 또 동네마다 곳곳에 대기업 제과점이 한두 개는 있어 신규 점포 출점이 쉽게 가능한 것도 아니다.
게다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숨은 맛집으로 알려진 동네빵집에서 빵을 구매하는 소비가 늘고 있고 배달 앱이 있어 동네 빵집의 빵을 쉽게 구할 수도 있게 됐다. '맛 경쟁력'이 있다면 대기업 제과점과 벌이는 승부에서도 선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정부는 생계형적합업종 운용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3년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 지정되기 이전을 생각해보면 결론은 분명해진다. 생계형적합업종 지정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대기업 제과점이 무분별하게 점포를 늘려 나갈 때 사라진 동네 빵집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출로 버티다 결국 폐업을 결정한 자영업자들에게 뒤늦은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대기업의 사업 확장과 위기의 파도가 밀려드는 속에서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는 자영업자들은 물론, 폐업하고 새로운 생업을 찾는 소상공인들에게 튼튼한 보루 하나쯤은 만들어주는 제도 운용의 묘미를 발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