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이번달 ‘어닝 시즌’(실적발표 시즌)’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채권 수익 악화와 브로커리지(위탁매매) 감소가 맞물리며 하반기 실적에 적신호가 켜졌다.
상반기에는 주요 증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차액결제거래(CFD) 관련 충당금 등 여러 악재에도, 채권 운용 실적과 위탁매매 수수료 증가에 힘입어 양호한 실적을 냈다.
하지만 미국 국채 금리 급등 여파가 전세계 채권 시장으로 확산하는 데다, 9월에는 개인의 투심이 악화하며 수수료 수익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돼 하반기에는 증권사들의 실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기자본 상위 5개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KB증권)는 지난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한 1조833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증권사들은 2분기 CFD와 부동산 PF 충당금을 털어내고 3분기부터 괜찮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봤지만,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를 밑돌 가능성 제기가 대다수다. 전문가들은 당장 3분기 실적이 컨센서스를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대형 증권사 5곳(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키움·삼성)의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추정치 합계(애프앤가이드 기준)를 1조77억원으로 봤다. 순이익 추정치도 7997억원이다. 이들은 각각 전 분기 대비 0.6%와 3.5% 감소다.
유안타증권도 주요 증권사 5곳(한국금융지주·미래에셋·NH투자·삼성·키움)의 실제 3분기 실적이 컨센서스를 하회한 순이익 합산 전망치를 6730억원으로 제시했고, KB증권은 시장 전망치에 12.8% 밑도는 7146억원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주요 증권사는 여전히 충당금과 손상차손 부담이 존재하고 금융채권 금리 상승으로 예상보다 부진한 트레이딩 및 상품 손익을 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데에는, 하반기 중 채권시장 약화와 상반기 실적을 떠받쳤던 증시 거래대금 감소 영향이 컸다. 투자자들은 관망세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증권가는 채권평가손 인식 가능성이 커지며 실적 부담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우선 채권 금리 급등이 증권사 수익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긴축 우려에 채권 가격이 폭락한 이유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반대로 채권값이 떨어져 수익률에 악영향을 줘서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속되자,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8%를 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결국 국내 채권금리도 비슷하게 흐른다. 채권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 채권 금리가 그대로 머물면 자금 이탈은 불가피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채 3년물 금리는 3분기 초(7월3일) 3.613%에서 분기 말(9월27일) 3.884%로 0.271%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회사채(무보증 3년) AA-등급 금리도 4.421%에서 4.658%로 0.237%포인트 뛰었다.
국내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5월 중순부터 위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더니, 지난 9월26일엔 4.054%로 거래를 마감한 바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발 유동성 위기를 겪은 국내 채권시장이 올해도 가혹한 시기를 보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조달한 자금의 만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지 않고 있어, 재차 자금경색 관련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사태 당시 10월 중순 4.632%까지 치솟았을 때보다 낮다.
채권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증권사 채권평가손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채보다 카드채, 기타 금융채 금리 상승폭이 컸던 점을 고려 시 두 가지 보유 비중이 큰 증권사가 채권 평가이익 규모가 줄거나 손실로 돌아설 수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전세계 주요 증시의 폭락을 시작으로 자금 유출과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즉 증권사 거래대금 수익에 타격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증권업계는 지난달 초까지만도 주식거래대금 확대와 충당금 적립 규모 축소 등으로 주요 기대 이상의 3분기 실적을 거둘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차전지와 반도체주에 이어 테마주 투자 광풍이 몰아치며 주식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반기 증권사 거래대금이 하반기 들어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일평균 거래대금(19조786억원)은 20조원 밑으로 내려가고, 2,6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가 2,400선 초반까지 밀렸다.
올해 증시를 이끌던 이차전지 열풍에 일일 증시 거래대금은 62조8333억원(7월26일)까지 올랐으나, 이후 테마주에 대한 관심이 줄고 투심이 식으며 지난달 27일엔 14조원 수준까지 내려갔다.
이처럼 증시에 흘러드는 자금이 줄고 각종 리스크가 잔존한 상황인 만큼, 하반기에는 실적 방어가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해외 투자자산 평가 손실, PF 관련 충당금 적립 등 리스크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의 4분기 채권평가손실에 대한 우려가 남았고, 투자은행(IB) 부문 실적이 3분기 이후 정체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여겼다.
특히 부동산 PF 관련해 2분기에도 충당금을 쌓았는데, 구체적인 PF 부실 규모를 예상하기 어려워 3분기도 추가적인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증권사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중 요주 이하 자산 비율이 가장 높다는 점이 우려 요인이다. 요주 이하 등급이라는 것은 이미 연체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향후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해외 부동산 투자를 크게 집행했던 일부 회사들에는 자본이 크게 감소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증권사들의 3분기 실적이 대부분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6월말 기준 대형 증권사 9곳(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해외 대체투자 규모는 21조2000억원이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각각 29조원대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KB증권(24조원), 하나증권·메리츠증권(22조원), 신한투자증권(20조원), NH투자증권·삼성증권(18조원), 키움증권(13조원), 대신증권(5조원) 순으로 보유하고 있다.
정 연구원은 "요주의 이하 등급은 이미 연체가 시작됐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향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것"이라며 ”해외 부동산 투자를 크게 집행했던 회사들의 경우 자본이 크게 감소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증권업종에 대한 투자심리는 기준금리가 하락 사이클로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 2024년 중순 이후에나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2024년 중순 이후 기준금리가 하락 사이클로 진입할 수 있으며 2018~2019년 설정된 해외 부동산펀드 손상과 PF 대출 관련 충당금이 실적에 상당 부분 반영되며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국면으로 진입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증권가는 실적 컨센서스를 낮추고 채권, 해외 부동산 투자 등 리스크 재점검에 돌입했다. 채권 보유 규모와 운용자산 규모가 큰 증권사 중심으로 평가이익 시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의 지원책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높아진 금리·원가는 여전히 큰 부담요인이다"며 "증권사 역시 충당금 적립이나 유동화 PF 인수를 통한 만기 연장 등을 하지만 빠른 리스크 해소를 기대하기는 여전히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