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한국조선해양 정기선 호(號), 올해 수주 목표 조기달성한 비결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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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정기선 대표(41·사진)가 이끄는 HD한국조선해양이 환경 친화적 선박 사업을 대폭 강화해 국내 조선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올해 수주목표를 달성해 눈길을 끌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지금껏 컨테이너선 및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으로 대다수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메탄올 추진선, 암모니아 운반선, 이산화탄소 운반선까지 수주해 다변화된 친환경 선박 수주 역량을 뽐내고 있다.
게다가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9월 초 기준 총 159억4000만 달러(약 21조 5349억원)의 누계 수주를 기록해 수주 목표 157억4000만 달러(약 21조 2647억원)를 뛰어넘었다. 이는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이처럼 다양한 수주를 일궈낼 수 있었던 데에는 보유 중인 친환경 선박 설계·건조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야드(선박 건조장)가 넓어 다양한 선종(선박 종류)을 건조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수주 선종에 대한 건조 스케줄을 계획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조선사가 따라하기 힘든 역량이기도 하다. 게다가 올해 초 전북 군산조선소를 재가동해 블록사업에 특화된 야드를 운영하는 등 차별화된 기술적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선박 건조는 블록 여러개를 용접해 이어 붙이는 형태로 진행한다. 군산조선소는 각각의 블록에 대한 공정을 최대한 진행한 후 이를 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등에 전달해 관련 조선소 직원들이 마무리 작업을 하는 형태로 선박을 건조한다.
이에 비해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거제조선소 야드만을 보유해 다양한 선종을 수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 업체들은 한정된 선종에 따른 대형 선박 수주를 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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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탄올 추진선 수주가 선종 다변화 포문 열어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초 유럽 선사로부터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2척을 수주했다. 수주 금액은 총 2조5264억원으로 알려졌는데 기업체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면 기존에 사용하던 선박 연료(벙커C유)보다 황산화물(SOx)은 99%, 질소산화물(NOx)은 80%, 온실가스는 최대 25%까지 줄일 수 있어 환경 친화적이다.
메탄올 추진선은 아직까지 보편화되지 않은 선종이다. 이런 가운데 HD한국조선해양이 대규모 수주를 성공시킬 수 있던 것은 이 분야에서 최고 기술력과 앞선 수주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21년 8월 덴마크 선사 머스크(Maersk)로부터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해 ‘메탄올 추진선 시대’를 활짝 열었다. 총 수주금액은 1조6474억원으로 알려졌으며 새로운 선박 연료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업계 이목을 끌었다.
이후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10월 머스크로부터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6척을 추가 수주해 전세계에 이 선종 제조 역량을 과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새로운 선사로부터 수주를 이끌어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 비로소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수주했으며 한화오션은 아직까지 이 선종을 수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이 국내 다른 조선사보다 메탄올 추진선 시장을 빠르게 제패한 것으로 보여진다.
글로벌 조선·해운 시황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세계에서 발주된 메탄올 추진선은 총 109척이며 이 가운데 HD한국조선해양은 54척을 수주해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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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시대 겨냥한 암모니아·이산화탄소 운반선 시장 공략 순조로워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싱가포르 선사 EPS, 그리스 선사 캐피탈로부터 각각 2척 씩 총 4척의 암모니아(NH3)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수송할 수 있는 운반선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금액은 6168억원으로 알려졌다.
이 선박은 암모니아와 LPG를 모두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 추진선으로 건조될 예정이다.
암모니아는 연료로 사용하면 이산화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아 대표적인 친환경 연료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LPG를 연료로 사용하면 벙커C유 대비 황산화물 배출량이 90% 감소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5% 줄어든다.
HD한국조선해양에 따르면 이 선박은 처음에 LPG 추진선 형태로 건조하고 향후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해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변경돼 운용될 예정이다. 이는 준(準) 친환경선박(LPG 추진선)과 궁극적인 친환경선박(암모니아 추진선) 역량을 모두 거머쥐고 있다는 얘기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9월 기준 전세계에서 발주된 27척의 초대형 암모니아·LPG 운반선 가운데 19척을 수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20년 7월 영국 선급 로이드(LR)로부터 암모니아 추진선에 대한 기본인증서(AIP)를 획득해 관련 역량을 갖췄다. AIP는 선박 기본설계의 기술적 적합성을 검증하는 단계를 뜻한다.
그리고 HD한국조선해양은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선해양 산업 핵심 기술 개발 사업’을 통해 LPG 연료를 대형 엔진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은 LPG와 암모니아를 모두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어 관련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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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해운업을 하는 그리스 캐피탈 마리타임 그룹과 총 1790억원에 이르는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2척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이 선박은 길이 159.9m, 너비 27.4m, 높이 17.8m로 세계 최대이며 현대미포조선 야드에서 건조돼 2025년 인도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은 주로 소형으로 제작됐다"며 "그러나 친환경에 대한 전세계적 목소리가 커져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설비를 산업계 대부분에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이산화탄소 운반선 수요도 커지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은 업계 최초로 대형 이산화탄소 운반선 건조에 나섰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9월 미국 선급 ABS, 영국 선급 로이드, 각종 조선·해운 관련 제도를 관리하는 라이베리아 기국으로부터 이산화탄소 운반선에 대한 AIP를 획득했다.
이를 통해 HD한국조선해양은 전세계 모든 선사가 신뢰할만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친환경 선박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모습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수요는 CCUS 시장 확대에 발맞춰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CCS연구소(Global CCS Institute)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탈(脫)탄소 정책이 가속화돼 CCUS 시장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2050년에는 전 세계 탄소포집량이 76억t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운반할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