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역설’, ‘흙수저’가 토해낸 5조원은 보험사 ‘공돈’으로

저소득 직장인 및 자영업자들 보험중도해지로 연간 4조 9000억원 손실
현대경제연구원 “가계소득 정체로 ‘미래자금’ 당겨쓰면서 초래된 손해” 분석
(뉴스투데이=이지우 기자)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임유진(26)씨는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됐다. 독립 후 가장 큰 고민이었던 부분은 바로 월 5일마다 나가는 ‘보험료’였다. 10만원 남짓한 실손보험료는 독립하면서 직접 납부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10년 간 목돈 마련을 위해 임 씨 앞으로 넣은 보험금이었지만 실제로 병원을 가서 보험금을 받거나 혜택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과연 필요한 금융상품인지에 대한 고민이 됐다. 임 씨는 해지 시 받게 되는 금액에 대해 알아본 결과, 지금까지 납부된 금액에 65%라는 것을 듣게 됐다. 약 1200만원을 넣었지만 실제로 수령하게 되는 금액은 780만원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임 씨는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 해지를 결심했다.
팍팍한 살림 탓에 원금손실을 감수하면서 보험을 해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100세 시대로 보험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지만, 미래보다 ‘당장의 삶’이 힘들어 중도 해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연간 원금 손실액인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험사들 입장에서 막대한 ‘공돈’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돈은 ‘흙수저 계층’이 흘린 눈물의 산물이다.
2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중 보험계약 중도해지로 소비자가 원금손실을 본 금액(납입 보험료-해지 환급금)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쳐 3조8903억원이었다. 연간으로는 보험 계약자들이 4조8000억원∼4조9000억원가량의 원금손실을 감수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 중도해지로 인한 소비자 원금손실 규모는 2012년 4조9982억원에서 2013년 4조4029억원, 2014년 4조1928억원으로 감소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2015년 4조8579억원으로 1년 새 16% 늘어난 뒤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보험계약 중도해지로 원금손실을 본 금액은 2012년부터 2016년 3분기까지 5년간 15조6000억원에 이른다. 생명보험 13조4000억원 손해보험 2조2000억원이다.
이렇게 증가하는 이유로는 최근 경기불황과 정체된 소득에서 보험금 납입은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을 깨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쓴다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손해를 무릅쓰고 적금이나 보험을 중도해지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약자 계층에 집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 손보사 관계자는 2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취업준비생은 보험을 드는 경우가 드물고 고소득 직장인들은 중도에 손실을 보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서 “취약한 고리인 중소기업 직장인이나 수익성 악화로 고민하는 자영업자 분 등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계약조건에 따라 중도해지하는 분들은 큰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적 약자 계층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가계소득이 정체되면서 미래를 대비한 자금인 적금, 보험 등을 해지해 미리 당겨쓰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가계경제의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금 담보로 한 약관대출도 1년새 2조원 이상 증가
실제로 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쓰는 가계도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보험사들의 약관대출 잔액은 53조6661억원으로 1년 새 2조1743억원(4.2%) 증가했다. 약관대출은 까다로운 대출심사 없이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생계형 대출’로 통한다.
대출 금리가 최소 4.0%에서 최대 9.22%(올해 2월 공시 기준)로 은행에 비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보험료를 꾸준히 납입하고 혜택을 봐야 할 시점에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금융당국에서 관심을 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보험사들이 매년 해지 환급금으로 수조원에 이르는 수익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벌어들이고 있다”며 “환급 체계가 합리적인 수준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 약관 대출을 받거나 중도 인출을 하는 것을 넘어 손해를 감수하고도 보험을 해지하는 현상은 서민 경제에 적색등이 켜졌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