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마저 괴로운 취준생, ‘설명절 대피소’로

이지우 입력 : 2017.01.28 12:22 ㅣ 수정 : 2017.01.2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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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 전날인 26일 오후 서울 용산역에서 한 청년이 고향으로 향하는 목포행 KTX에 오르고 있다.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이지우 기자) 
 
 
취준생들의 명절 기피증후군 겨냥한 ‘설명절 대피소’의 등장
 
“취업이 어려운 것은 나뿐만 아니라 지금 20대 청년 모두가 가진 공통분모지만, 괜히 친척들 눈치가 보인다. 취업준비로 설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2년이나 지났다보니 올해는 내려오게 됐지만 마음은 착잡하다. 특히 ‘취업’이야기가 나오면 부담스럽고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올해도 취업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들이 나오고 있어 걱정이 크다”
 
민족대명절 설날 아침이 밝았다. 2년째 ‘취준생’ 타이틀을 벗지 못한 김혜지(28,여)씨는 2년만에 노량진 학원가를 벗어나 고향인 부산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명절은 과거 미혼자들에게 ‘결혼 잔소리’듣기 싫어서  피하고 싶은 자리 1순위였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명절 기피증 대열에 취준생들도 합류한지 이미 오래이다. 


서울 시내 일부 취업관련 학원들은 '설명절 대피소'를 운영한다. 연휴 기간중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공부를 하는 취준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스터디룸의 명칭이다.  간식 및 음료 등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원들이 명절 연휴에 공부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설명절 대피소라는 명칭은 취준생들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의 강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취준생 김필정씨(29.가명)는 "설 연휴기간에 친지들을 만나면 그들이 보이는 관심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서 "그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오히려 학원의 스터디룸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1080명을 대상으로 ‘설 명절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잔소리, 불편한 친척과의 만남 등 정신적 부담’이 36.7%(385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비율은 20대가 53.8%, 미혼자가 50.9%로 과반을 차지했다. 또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0.4%)은 ‘직장 및 직업’, ‘결혼 여부’, ‘취업 여부’ 등으로 친척들과 비교당하는 스트레스를 받은 적 있다고 밝혔다.
 
 
관심을 표현하는 ‘덕담’도 오히려 부담만 가중돼 ‘독’
 
그렇다면 덕담은 괜찮을까. 하지만 덕담도 오히려 직장인 및 취준생들에게는 부담을 주는 말로 인식되고 있었다.
 
인턴만 3번을 하고 현재 취준생인 이유미(30,여)씨는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올해는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어 “명절에 가장 좋은 것은 덕담을 듣는 것보다 아무 말도 안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서울권 4년제 광고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광고 회사에서만 6개월씩 3번의 인턴생활을 경험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진 못했다. 때문에 친척들이 ‘어디에서 근무하느냐’,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 물으면 부담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결국 덕담마저 부담스러운 취준생들이 선택할 곳은 취업학원들이 제공하는 ‘설명절 대피소’가 된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경우,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연휴 기간동안 대부분 상점들도 문을 닫아 음식을 사먹기도 어렵다. 그러나 '설명절 대피소'에 가면 간식거리도 줄 뿐만 아니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지낸다는 것도 장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설 명절을 앞두고 직장인 및 취준생 15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취준생의 90.9%, 직장인의 89.6%가 ‘관심을 표현하는 덕담이 상대방에게는 잔소리가 되거나 불편할 수도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실제로 ‘불편하거나 부담을 느낀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직장인 75.8%, 취준생 74.1%가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또 명절 모임에 참여했던 응답자(1157명) 중 54.5%는 ‘불편하거나 (참석했던 것을)후회했다’고 답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설명절 잔소리 대처법’ 등이 올라와 많은 취준생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소개된 잔소리 대처법은 이러하다. △그러게요 스킬(어떤 잔소리에도 ‘그러게요’라고 답해 할 말을 잃게 하는 것) △반박하기 스킬(‘삼촌 아들은요?’) △선비형 대처(‘저도 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학하기(‘제가 많이 못났나봐요’) △자리 피하기(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시계를 확인하며 자리 피하기)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기 △용돈 드리기 등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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