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영세상공인 등골 빼먹는 ‘전안법’, ‘탁상악법(惡法)’ 논란 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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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받았던 ‘KC인증’, 성인 의류에 왜 필요?
서민 겨냥한 정부의 새로운 ‘준조세’ 논란 속 ‘졸속입법’ 지적도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산업통산자원부는 오는 28일 시행하기로 예정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에 대해 1년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25일 밝혔다. 시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전격적으로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여론의 격렬한 반발 때문이다.
영세자영업자 및 상인들은 지난 23일을 전후로 온라인 상에서 ‘전안법 폐지’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기업은 큰 부담이 없지만 영세상인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 즉 정부 관리들이 옥시 등의 부도덕한 기업에 의한 ‘살인 가습기’ 사건의 후속대책으로 ‘전안법’을 추진한 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탁상악법(惡法)’이라는 주장이다.
영세상인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의류비를 폭등시킴으로써 그 폐해는 전국민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결국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삼아 담배세 인상을 해 거액의 세수 증대를 맛본 박근혜 정부가 또 다른 ‘서민증세 정책’을 밀실에서 추진했다는 논란도 거세다.
전안법의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 같은 비판론은 설득력을 갖는다. 28일 시행될 예정이었던 전안법이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의 안전관리법으로 기존에 있던 두 법을 통합해 하나로 만든 법이다. 안전 기준을 준수해 만들었다는 표시인 ‘KC인증(공급자 적합성 확인 서류)’를 전기용품 뿐 아니라 의류, 잡화 같은 공산품과 생활용품까지 받아 공개하도록 의무화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피부에 닿는 의류, 장신구 등도 모두 KC인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습기 살균제나 아기 옷과 같이 유해한 성분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는 공산품 등에만 의무적으로 적용되던 제도였다.
동대문 시장에서 남성의류 도매상을 하는 강남철(가명.47)씨는 2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받아야 했던 KC인증을 도대체 왜 받으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느 업자가 인체에 치명적인 성분을 발라서 옷을 만들겠느냐”고 반문했다.
강 씨는 “더욱이 ‘전안법’이 시행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최근에 알았다”면서 “소규모로 옷을 만들어 파는 영세업자들 입장에서 건당 수십만원에 달하는 KC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면 10개 모델의 의류를 제작하면 수백만원의 인증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수백만원의 돈은 대기업에게는 푼돈이지만 우리같은 소상공인에게는 거액”이라면서 “그 수익은 정부와 소수의 KC인증기관이 벌어들이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씨는 “영세상공인과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악법을 공무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시행하려다 연기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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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안법’ 시행되면 시장 옷값 폭등…‘시장 옷’ 죽고, 대기업 브랜드 의류만 남아
문제는 이 같은 강씨의 주장이 영세상인의 푸념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이라는 점에 있다. 전안법에 성인의류와 잡화 품목이 추가됨에 따라 그 파장은 예측불허이다.
그동안 전기 제품의 경우 위험도에 따라 안전인증은 55종, 안전확인은 101종, 공급자적합성확인 102종의 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전안법에 따르면 모든 섬유 제품도 안전성 테스트를 받아 KC인증마크를 부착해야 한다고 정부가 정했기 때문이다.
또 불분명했던 구매대행의 검사 시기를 세관을 거치는 시점으로 확정하고, 구매대행업자까지 전안법에 포함시켰다. 아마존과 같은 개인의 직구는 상관없다.
KC인증은 각 제품이 안전 규정에 맞게 제조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로 대기업의 브랜드 의류들은 이미 인증을 받아 판매하고 있어 타격이 없지만, 자체 안전 검사 장비를 갖추지 못한 소상공인은 외부 전문 기관에 돈을 내고 맡겨야 하기에 타격이 크다.
인증 서류가 없으면 오픈 마켓 등에서 판매를 할 수 없게 되며, 과태료는 최대 500만원까지 부가된다. 중저가 브랜드보다 저렴한 동대문 의류나 지하상가의 매장들은 1개 종류 의류 기준으로 인증비가 20~30만원이 필요한데, 생산하는 모든 모델의 의류를 판매 전 검사해야 한다.
유행에 민감한 소량의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영세상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부담이다.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러나 옷값이 오르면 의류 소비가 위축되므로 그 피해는 다시 영세상인들이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된다.
동대문 시장의 의류 도매상인 이수설(35. 가명)씨는 “영세상인의 의류에도 KC인증을 의무화 할 경우, 대기업 브랜드 의류에 대한 시장 옷의 가격 경쟁력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면서 “결국 대기업만 살아남고 서민들은 죽으라는 게 KC인증제도”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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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전안법 폐지를 위한 모임(전폐모)’ 만들고 서명운동 까지
전안법이 논란이 된 것은 23일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오면서부터였다. 이 글은 현재 조회수 33만 7500건이 넘었다.
이 글은 “정부에서 KC인증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켜 오는 28일부터 시행 예정이라며, KC인증을 하게 되면 옷값이 상당 부분 오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KC인증을 받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옥시도 KC인증을 받았던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글이 퍼지면서, 수많은 비난글과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인터넷에는 ‘전안법 폐지를 위한 모임(전폐모)’이 발족됐고, ‘전안법 반대 서명운동’에는 하루 만에 1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 법과 관련된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 한국제품안전협회 콜센터 전화번호가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게 됐으며, 24일 본지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안법 담당하는 생활제품안전과와 연결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또한, 전안법 통과에 찬성한 국회의원 189명의 명단과 의원실 연락처도 공개되어 공개된 기관과 의원실에는 하루 종일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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