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31억달러 대미투자, 트럼프 시대 ‘국내 고용감축’ 신호탄?
황진원
입력 : 2017.01.19 17:52
ㅣ 수정 : 2017.01.1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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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 미 앨라배마 엔진공장에서 엔진조립을 하고 있는 근로자 ⓒ현대차
(뉴스투데이=황진원 기자)
현대차, 제 2공장 증설 추진…도요타 및 GM 등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도 미국 투자 약속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신규 공장 건설 검토와 함께 앞으로 5년간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규모의 미국 내 투자계획을 밝혔다. 자국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의 압박에 현대차가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대차의 미국 내 제 2공장 신설은 자동차업계의 고용창출이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 트럼프 시대의 고용감소 신호탄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의 여파가 국내 고용시장의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7일, 정진행 현대차 사장은 외신기자들과 가진 신년인사회 자리에서 “친환경차, 자율주행 등 미래 신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신차 생산 및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 등을 위해 2021년까지 미국에 3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지난 5년간 미국 투자액인 21억 달러보다 10억 달러 이상 증가한 규모다.
이 자리에서 정 사장은 “수요가 있다면 공장을 짓는 것을 검토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미국 내 신규 공장 건설 가능성도 내비쳤다. 또한 신규 공장 증설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또는 제네시스 등 시장에서 팔리는 차 위주로 생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미국 투자 결정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예정돼 있던 투자로 트럼프의 발언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현대차의 이번 투자 계획 발표가 “미국에서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에서 고용해 생산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의 압박에 영향을 입은 투자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미 트럼프의 이같은 압박은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 GM 등 미국 3대 자동차 기업은 물론이고 외국 기업인 일본 도요타에게도 5년간 총 100억 달러의 투자 약속으로 이어진 상태다. 트럼프의 ‘미국 투자’ 압박에 전세계 완성차 업체가 백기를 드는 모양새를 취하게되면서 현대차 또한 선제적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내 신규 공장 증설은 국내 일자리 감소로 연결돼 노사분규 가능성
문제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신규 공장 증설 여부에 따른 파장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미국에 제 2공장을 증설할 시 국내에서 현지로 가는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생산시설로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 공장에서 약 3000명의 생산직원을 각각 고용해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완공된 앨라배마 공장은 현대차의 쏘나타, 아반떼, 싼타페 등 3종을 생산하며 연간 37만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0년 준공한 조지아 공장은 기아차의 K5, 쏘렌토 2종으로 연간 34만대를 생산한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미국에 판매한 140만대 중 73만 대가 이 곳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나머지 67만 대는 한국에서 수출한 것이다.
만약 현대차가 공장 증설 계획을 확정한다면, 자연스럽게 한국 수출 물량은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고 이는 곧 국내 생산 설비 감축으로 이어져 결국 노사 갈등과 일자리 감소 등의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미국 내 제 2공장 증설시 가동률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현대차는 미국 내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수요가 늘면서 작년 7월부터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던 싼타페 물량 일부를 앨라배마 공장으로 돌리기는 했지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승용차 중심의 차량 라인업을 가진 현대차가 SUV 물량 수요에 어려움이 없는 현지 시장상황에서 제2 공장을 증설한들 공장가동률 저하 뿐만아니라 영업이익을 하락시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현대차 미국 근로자 1인당 평균 임금, 국내의 68.5%에 불과
반면, 현대차의 미국 내 공장 증설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은 경쟁사 대비 낮은 생산 수준을 감안하면 미국 공장 증설은 긍정적이라며 현지 생산으로 인해 환율 영향이 줄어들뿐더러 제 2공장 증설에 따른 다양한 차종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현지 공장 설립으로 인해 인건비 등 낮은 생산비 효과를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근로자의 1인당 평균 임금은 연 9700만원으로,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 5만4663달러(약 5700만원)보다 68.5%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차량 한 대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HPV)은 현대차 국내 공장이 25.9시간인 데 비해 미국 공장은 15.8시간이다. 미국 근로자가 한국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생산성은 훨씬 높다는 얘기다.
기업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압박을 방패삼아 미국 현지생산 비중을 월등히 높힐 수 있는 기회다. 물론, 현대차는 신규 공장 건설로 인한 국내 공장 가동률 위축, 나아가 국내 공장의 고용감축 우려를 해결해야하는 숙제 또한 짊어지게 된다. 현대차 입장에선 공장 증설 관련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의 ‘미국 투자’ 압박이 거세지자 GM은 10억달러(약 1조2000억달러)의 투자 계획과 함께 미국 내 1500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현대차그룹 또한 미국 내 신규 공장 증설로 트럼프의 고용 창출 정책에 도우미가 될지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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