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리포트] 구조조정으로 쏟아져 나온 수만 명의 퇴직자들과 ‘쿼바디스’

정승원 입력 : 2017.01.05 17:46 ㅣ 수정 : 2017.01.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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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단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는 퇴직자들이 증가하면서 제2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퇴직자들이 늘고 있다. ⓒ뉴스투데이DB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작년, 대기업-은행권에서 2만여명 퇴직 러시

치킨집 등 자영업 폐업률 상승에 고민 늘어


1951년에 만들어진 ‘쿼바디스’란 영화가 있다. 로버트테일러와 데보라 카 주연의 이 영화는 로마시대 폭군 네로황제 때의 기독교 탄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 ‘쿼바디스’는 라틴어로, "(주여)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의미한다.

최근 기업마다 앞다퉈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둔 명예퇴직자, 희망퇴직자, 강제퇴직자들이 스스로에게 물을 수 밖에 없는 가장 절실한 물음일 것이다.

5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그룹에서 감원한 인원은 1~11월까지 1만4000명에 달한다. 2015년 30대 그룹에서 순수하게 줄어든 인원이 4500명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얼마나 거센 구조조정의 광풍이 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특히 재계 대표기업인 삼성그룹이 전체 직원 수를 9500명 이상 줄이면서 고용쇼크를 불러일으켰다.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 등 총 22개 계열사에서 9515(4.3%)명을 내보냈다. 최악의 불황으로 수주절벽에 내몰린 조선3사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 4110명(10.9%)을 비롯해 감원 규모가 6131명에 달했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12월 2800명으로부터 희망퇴직을 받은 것을 비롯해 KEB하나, 우리, NH농협 등 시중은행에서만 5000명 이상이 옷을 벗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0대 기업과 금융권에서 나온 인원만 어림잡아 2만여명에 달한다. 대기업이 기침하면, 독감에 걸리는 중소기업들의 상황까지 고려할 경우 이 수치는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있는 돈마저 까먹을까 두렵다”=문제는 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은행 등의 경우 희망퇴직을 할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 22~27개월치의 월 임금에 해당하는 특별퇴직금이 주어져 어느 정도 목돈을 쥐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단행한 포스코건설의 경우 퇴직금 외에 1인당 2억원 가량의 특별퇴직금을 추가로 받고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목돈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퇴직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포스코건설을 나온 A씨(53)는 “희망퇴직 전부터 창업스쿨도 다니고, 프랜차이즈 설명회도 참관했지만 ‘이거다’라는 확인이 드는 업종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의 ‘2016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자기사업을 시작한 개인사업자는 106만8000명이고, 폐업을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73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 10명중 7명은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영업자들이 선호하는 업종은 세탁소, 이·미용실, 고용알선, 여행사, 교육기관 운영 등 서비스업이 19.6%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이어 부동산·임대업이 19.2%, 소매업 17.6%, 음식점업17.1%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폐업 순위를 보면 음식점업이 전체의 20.6%를 차지했고, 소매업 19.9%, 서비스업 19.7%, 부동산·임대업 12.3% 등의 순이었다.


◇식용유 대란이 불러온 치킨집창업 공포=
식용유 공급물량 부족도 퇴직자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식용유 부족 사태의 원인은 남미의 콩수확량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남미 지역에서 일어난 홍수로 콩 수확량이 크게 줄고 불량률이 높아지면서 원료 공급도 수월치 않게 되면서 국내에도 불똥이 튄 것이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18ℓ 식용유 한 통 가격은 최근 한 달새 7~9% 상승했다. 2만2000~2만4000원 정도에서 현재는 2만4000~2만7000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오뚜기와롯데푸드는지난해 말 가격을 9% 올렸다. CJ제일제당은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업소용 식용유 가격을 7~8% 올릴 예정이다.

가격뿐 아니라 공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으면서 튀김용 식용유를 많이 쓰는 치킨집과 중국집 등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원가상승에 따른 메뉴 가격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가뜩이나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가격마저 인상할 경우 매출액 감소가 불가피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퇴직 후 치킨집개업 등을 고려했던 퇴직자들이 창업을 접는 사례도 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한해 평균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로 생기고 5000여개가 문을 닫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치킨집폐업률은 84.1%로 가장 높다. 100개 중 84개꼴로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치킨집은 이미 포화상태라서 창업을 해도 쉽게 돈을 벌 수 없는 레드오션 시장이라는 지적이다.


◇해외영주권 이민시장에 다시 관심=
자영업에 대한 확신부족으로 퇴직 이후 섣부른 사업을 벌이기 보다는 아예 해외 쪽으로 눈을 돌리는 퇴직자들도 적지 않다.

국내 이주공사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내 가발회사에서 영업직이나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조건의 비숙련(EB3) 영주권 사업설명회에 수십 명의 퇴직자들이 몰리고 있다. 가발회사 근무는 한국인들이 많이 신청했던 닭공장과 달리사무직이어서 인기가 높다는 게 이주공사측의 설명이다.

미국 뉴저지에서 인턴 및 영주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JOB USA의 임현덕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발회사 근무는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시급이 평균 11~13달러 선이어서 현지정착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내 가발회사 등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턴(J1)비자를 발급받은 후 현지에서 영주권 및 취업비자로 다시 진행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발회사들 마다 마땅한 인재가 없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어 성실성을 인정받으면 대부분 영주권이나 취업비자 신청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에 따르면 미국의 가발시장은 2012년 6억8400만달러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7억6100만달러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교민들이 운영하는 가발회사만 해도 미국 전역에 수십 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JOB USA 임대표는 “한인 소유의 가발회사 규모는 대략 매출 300억원 수준의 중대형 이상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미국으로 가기 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미국취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이주공사 관계자는 “퇴직자들이 관심은 많이 갖고 있지만 다른 나라로 생활근거지를 옮기는 것이어서 쉽게 결정을 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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