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민낯 분석]① 베일 벗은 삼성 이재용의 ‘어눌 화법’, ‘위기 대응 역량’, ‘자기 평가’
황진원
입력 : 2016.12.07 16:35
ㅣ 수정 : 2016.12.07 16:35
지난 6일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는 직장인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총수들에 대한 ‘정보 공개’의 자리였다. '알맹이 없는 청문회'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베일에 가려져 있던 9개 재벌 총수들의 민낯과 육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직장인과 취준생에게 대기업 오너의 속내를 이해한다는 것은 성공적인 회사생활을 위한 첫 단계이기도 하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관점에서 6일 청문회에서 드러난 총수들의 민낯 분석을 기획했다. <편집자 주>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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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참석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황진원 기자)
처음으로 대중에게 노출된 이재용 부회장의 언변에 엇갈린 평가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의 주인공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주요 대기업 중 미르·K스포츠재단에 가장 많은 출연금을 내며 삼성미래전략실에 대한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에 휩싸인 삼성이 이번 청문회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흘러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 보여진 이재용 부회장 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가 향후 정국의 향배를 가를 태풍의 눈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국회의원 및 다수의 국민들은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삼성 내부에서는 전경련 탈퇴 발언 등 파격적인 결단으로 이재용 부회장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도 나온다.
이러한 논란과는 무관하게 베일 속에 가려있던 삼성 오너 3세인 이재용의 민낯과 육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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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전체 질의 712회 중 70%에 해당하는 436회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뉴스투데이
이재용의 위장된 어눌함에 ‘송구 재용’, ‘삼송 그룹’ 등 인터넷 신조어 급부상
13시간 가량 진행된 이번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전체 질의 712회 중 70%에 해당하는 436회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9개 재벌 총수의 전체 답변 시간 1시간 10분 중 이 부회장이 40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구스럽다”라는 대답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이번 청문회에서 보여준 이재용 부회장의 언변이 그의 기존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어눌함’에 있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언변 스타일이 계산된 어눌함인지, 철저히 위장된 어눌함인지 의견 또한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계산된 어눌함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 근거는 우선 이 부회장이 민감한 사안의 경우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삼성 미래전략실 차원의 지원에 대해 사전에 몰랐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집요하게 캐묻던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이 부회장에게 수차례 ‘동문서답’을 하지 말라고 꼬집었을 정도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최순실 지원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인수합병 등과 같은 사안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은 모른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즉 이 부회장이 내용면으로는 ‘모르쇠 작전’, 태도상으로는 ‘어눌함’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삼성과 박근혜 정부의 유착 의혹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송구하다”는 표현을 되풀이하면서 핵심을 피해갔던 이 부회장의 대응방식은 6일 온종일 도마위에 올랐다.
네티즌들은 연거푸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기승전 송구’, ‘송구 재용’이라고 부르며 이 부회장의 태도를 꼬집었다. 이제부터는 ‘삼성그룹’이 아니라 ‘삼송 그룹’이라는 인터넷 풍자도 발견됐다.
정청래 전의원의 ‘이재용의 10대 답변전략’ 인기몰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 ‘이재용의 10대 답변전략’이라는 게시글을 올리며 그의 전략적인 언변의 핵심을 지적했다.
정 전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의 언변에 대해 “1.답변은 애매모호 2.최대한 공손한 말씨 3.정확히 기억안난다 4.구체어 피하고 추상어 사용 5.곤란할때 멀뚱멀뚱 6.수사중이라... 7.부족하다 송구하다 반복 8.송곳질문엔 침묵 9.말은 느리게 10.동문서답 시간끌기”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그간 부드러운 이미지와 탈권위 리더십을 지향했다. 덕분에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가수 ‘지 드래곤’의 예명에서 따온 ‘재 드래곤’이라 불리웠을 정도다. 그런 이 부회장이 이번 청문회에서 드러낸 민낯은 다소 의외였고 기대 밖이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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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와 전경련 탈퇴 등 결단력 있는 발언에 우호적인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뉴스투데이
이 부회장의 파격적 결단에 우호적 평가도 잇따라
반면, ‘이재용 부회장이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할 건 이미 어느정도 예상된 수순’이라며 논란이 될만한 대답을 피해가는 계획적인 언변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네티즌들은 ‘이재용의 언변은 계획된 연기’, ‘정황상 저렇게 한 수 접고 가는 게 참 현명한 것’, ‘(영화)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인공)카이저 소제마냥 철저히 위장된 어눌함’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와 전경련 탈퇴 결단에 대해 삼성 내부에서는 결단력 있는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의 진원지로 공표됐을때 직접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던 이재용의 결단력이 이번 청문회에서도 발휘됐다는 평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은 “조심스럽지만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삼성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또한, “더 이상 개인적으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며 전경련 탈퇴를 공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7일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미래전략실 해체설에 대해 예정된 발언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즉석에서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위기 대응역량, 집요한 공세에도 어눌함과 침착함 유지…국민은 화나도 삼성에겐 차선책
종합적으로 볼 때, 이 부회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위기 대응 능력을 공개했다는 의미도 갖는다. 특위 위원들의 질문이 삼성에 집중될 것은 예상됐지만 그 정도는 심했다. 따라서 이 부회장으로서는 삼성 지원팀이 보고했던 시나리오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더불어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나이가 몇이냐. 젊은 사람이 어른들 앞에서 제대로 대답 못하느냐”는 등의 발언으로 몰아부쳤지만, 이 부회장은 감정적 동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어눌함과 동문서답이 국민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고 화가 나는 태도였지만, 삼성이라는 사기업의 입장에서는 차선책 정도는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무수하게 되풀이했던 “자세한 것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발언이 위장된 것이라면, 그는 도덕성은 낮지만 ‘명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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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삼성그룹의 경영권도 넘길 수 있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내놨다. ⓒ뉴스투데이
이재용,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나
실제로 이 부회장은 “그렇게 모르는 게 많다면 CEO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박영선 의원의 질타에 대해 “저보다 훌륭한 분이 오시면 언제든지 (제 자리를) 넘기겠다”고 답변했다. 표면적으로는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총수 자리를 제 3자에게 넘길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부회장이 자신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면 삼성 그룹의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것은 자신이 훌륭한 사람임을 가정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답변과정에서도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지분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오히려 국민의 지지와 평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위위원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이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에 대한 반론 과정이었다.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편법으로 지분을 승계하고 있다는 특위위원들의 날선 지적에 대해 이 부회장은 ‘훌륭한 사람’ 이라는 표현을 통해 경영능력과 국민적 지지가 더 중요하다고 반박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서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것은 지분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자신의 ‘경영능력’과 ‘인품’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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