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철강업계 후판값 협상 해 넘기며 '치킨게임'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 협상이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이로 결국 해를 넘기며 장기화되고 있다.
조선업계는 저렴한 중국산 후판 가격과 수입량 등을 고려하면 국내산 후판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철강사들은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과 최근 환율 상승까지 더해져 가격을 더 낮추기 어렵다며 맞서고 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시작된 조선·철강업계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양측은 매년 상·하반기 두 번 협상을 통해 후판 공급가격을 결정한다.
■ 선박 건조에 쓰는 '후판'…철강사 매출 15% 차지
후판은 주로 선박 건조에 사용된다. 특히 후판은 선박 건조 비용 가운데 약 20%, 철강사 전체 매출에서 15% 가량을 차지하는 중요 제품이다. 이에 따라 양 업계는 매번 후판 가격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업계 특성상 정확한 후판 가격은 공개되지 않지만 국내산 후판 가격은 계속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23년 상반기 톤당 100만원 수준이던 후판 가격은 △그해 하반기 90만원 후반대 △지난해 상반기 90만원 초반대로 내림세다.
문제는 국내산 후판 가격이 내려가고 있지만 중국산 후판과 가격 차이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국산 제품은 중국산 제품과의 가격 차이가 최대 20%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달 중국산 후판 가격은 톤당 70만원 대로 국내산보다 20만원 가량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중국산은 과거보다 품질이 개선돼 조선사로서는 굳이 비싼 비용을 내고 국내산 후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조선사는 국산 후판 가격이 적어도 80만원 대로 낮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후판 가격 인하 요인으로 후판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낮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며 " 철광석 가격은 후판 가격 협상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 지표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철광석 가격은 1일 기준 100달러로 나타났다. 철광석은 지난해 12월 월평균 가격이 103.48달러다. 이에 따라 시세가 2023년 12월 136.37달러에서 1년 사이 24% 가량 낮아졌다.
■ 조선업계, 후판 가격 협상 주도권 거머줘...철강시장 '불확실성' 더 커져
현재 양 업계의 후판 가격 협상 주도권은 조선업계가 쥐고 있다. 후판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하락한데다 중국산 저가 후판 공급 증가 등으로 조선업계는 철강업계에 후판 값 인하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 셈이다.
반면 철강업계는 실적 악화에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까지 더해져 원가 부담이 늘어나는 등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가격 인하는 어렵다며 가격 동결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업황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조선업계는 오랜만에 찾아온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아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빅3'가 13년 만에 13년 만에 모두 연간 흑자를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내 조선업계에 러브콜을 보내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확대라는 기대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조선업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최대 수혜 종목으로 꼽힌다.
이에 비해 철강업계는 관세 폭탄을 예고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 노심초사 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미 미국의 쿼터제로 수출 물량이 고정된 상황에서 만약 관세 부과가 현실이 되면 막대한 세금 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국내에 중국산 철강재 추가 유입에 따른 타격도 우려가 된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산 제품에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미국으로 가지 못한 중국산 물량이 헐값에 다른 국가로 유입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는 이미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업계로서는 경영을 더 압박하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협상이 해를 넘기는 경우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라며 “양측 모두 입장이 있고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철강 수급 불균형으로 철강재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철강사가 주도적으로 협상을 끌어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