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의 미래 먹거리, 첨단항공엔진 개발에 달려 있다
[뉴스투데이=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8월 27일 국방부는 2025년도 국방예산안을 발표했다. 사상 처음으로 60조원을 넘긴 국방예산안에는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최초 양산에 필요한 1.1조원도 반영됐다. 이번 달 국회 본회의 심의가 통과될 경우 우리나라는 2026년 전 세계에서 독자개발 전투기 양산에 성공한 8번째 국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최신 국산 전투기 개발을 선언한 지 25년 만의 일이다.
이는 대한민국 K-방산의 기념비적 사건이자 국가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전 세계의 4.5세대 전투기 중 가장 최신형인 KF-21을 본격 양산하고 이를 플랫폼으로 스텔스(5세대), 유무인복합 및 AI 전투기(6세대)로 진화할 경우,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K-방산을 대표하는 수출 주력 제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모든 난관 극복하고 독자개발에 성공할 경우 그 가치는 상상 초월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KF-21 전투기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커다란 해결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전투기의 ‘심장’이라 불리는 첨단항공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일이다. KF-21 최초 양산에는 미국 GE사의 F414 엔진이 탑재될 예정이다. 대당 가스터빈 엔진 2기가 포함되는 쌍발 엔진으로 전투기 양산 단가의 약 15~20%를 차지한다. 수출이 되더라도 값비싼 로얄티 지불과 수익 저하, 납기 지연 가능성 등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해외수입 엔진을 KF-21에 계속 장착할 경우 미국 정부에 건건이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동맹국인 미국이 향후 KF-21 전투기 엔진 수출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글로벌 전투기 시장에서 자국 F-16V 전투기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KF-21 엔진 수출 승인을 쉽사리 해 주리란 보장도 없다. 미국 입장에선 자국 경쟁제품이 없는 T-50 고등훈련기에 대한 엔진 수출 승인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KF-21 개발에 성공한 한국 정부도 이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KF-21 전투기 양산 추진에 따라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첨단항공엔진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말 그대로 KF-21 양산과 연계한 항공엔진 독자개발은 자주 국방력 제고와 함께 K-방산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미래 먹거리 사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첨단 항공엔진 독자개발은 KF-21 전투기 개발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선 전투기 엔진은 국제 규정상 미사일처럼 타국으로의 기술이전이 절대 불가능하다. 아울러 1,500도 이상 고열에 견딜 수 있는 첨단 소재와 냉각 기술을 확보한 다음, 분당 3만회 이상의 고속회전 및 각종 최첨단 설계·제어 기술과 수천회 이상의 시험평가, 국제 기준의 감항 인증을 통과해야 비로소 개발이 가능한‘국방 첨단기술의 끝판왕’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6개국만이 첨단항공엔진 독자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수십년 간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은 사실상 미국(GE, P&W)과 영국(롤스로이스), 프랑스(샤프란), 러시아(클리모프), 중국(AVIC) 등이 주도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첨단항공엔진 독자개발에 성공할 경우,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 우리나라 자주 국방력 강화의 상징적 지표이자 K-방산 미래 먹거리 확보
먼저, 첨단항공엔진 독자개발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자주 국방력 강화에 또 다른 상징적 지표가 될 것이다. 전 세계 6개국 외에 심지어 독일과 일본, 인도, 이스라엘도 독자 개발하지 못한 첨단항공 엔진 개발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명실공히 K-방산이 글로벌 방위산업 강국 대열에 진입하는 중요한 이정표(milestone)가 될 수 있다. 국방과학기술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 9위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
우리가 첨단항공엔진 독자개발에 성공한다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이스라엘(7위)과 일본(8위)을 제치고 세계 7위 국방과학기술국가로 부상할 수도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방산부품 국산화율은 77.2% 수준이고 그중에서도 항공분야 주요구성품 국산화율은 45.4%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첨단항공엔진 독자개발은 K-방산 국산화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첨단항공엔진 개발은 차세대 K-방산 미래 먹거리 확보를 가능케 할 것이다. 예정대로 약 5조원을 투자해 2030년대 후반 전투기 엔진 개발에 성공할 경우, 더 이상 해외로부터의 수입은 필요치 않게 된다. 국내 전투기 엔진 시장은 2050년까지 약 1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개발 예정인 KF-21 스텔스 전투기(5세대)와 T/FA-50 성능개량, 무인전투기, AI 전투기(6세대) 엔진 등을 포함한다. 말 그대로 첨단항공엔진 개발은 향후 10조원 이상의 국내 전투기 엔진 시장을 국산으로 대체함으로써 막대한 해외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T/FA-50 성능개량 버전과 KF-21 스텔스 전투기(5세대)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할 경우, 독자 엔진 수출에 따른 매출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가 첨단항공엔진 개발에 약 5조원을 투자할 경우, 2050년까지 약 10조원 규모의 해외 엔진 수입비용을 절감함과 아울러, KF-21 수출 등에 따른 새로운 항공엔진 시장 창출로 K-방산의 지속가능성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국가 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 예상되며 애프터 마켓 수요로 일자리도 증가
마지막으로, 전투기 엔진 독자개발은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전투기 엔진 개발은 60종 이상의 첨단 소재 개발과 1만여개 이상의 부품 생산을 포함한다. 소재로부터 부품, 장비, 체계에 이르기까지 대기업과 수백여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전투기 엔진 산업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향후 수송기와 민항기, 발전용 엔진 등으로 파급될 경우, 민군을 아우르는 항공엔진 산업 생태계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50년까지 KF-21, T/FA-50, 무인전투기 등의 국내외 수요를 고려한 첨단항공엔진 개발의 생산 파급효과는 최소 30~43조 원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나아가, 향후 6세대 AI 전투기와 민항기, 함정 및 발전용 엔진 등의 민간 파생형 엔진 개발을 고려할 경우, 최대 94조 원까지도 가능할 전망이다.
여기에 첨단항공엔진의 특성상 향후 수십년 간 이를 수리, 정비, 운영 유지해야 하는 MRO 시장 창출은 덤이다. 가혹한 환경 조건에서 고속 기동과 빠른 가속을 요구하는 전투기 특성상 엔진 수명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첨단항공엔진 개발은 타 산업 대비 높은 산업파급 효과에 더해 애프터 마켓 수요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매력적이다.
지난 50여년 간 우리나라 K-방산은 불굴의 ‘자주국방’ 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왔다. 70년대 번개 사업으로부터 시작해 전차, 자주포, T-50, KF-21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방산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KF-21 전투기 개발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미래 글로벌 전투기 시장 석권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도전을 시작할 시점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2030년대 첨단 항공엔진 개발 성공을 위한 강력한 컨트롤타워 구축과 방위사업청 내 민군 첨단항공엔진사업단(가칭) 신설, 첨단소재·부품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 국책과제 추진을 위한 범부처 및 전투기 체계종합업체와의 긴밀한 협력, 첨단항공엔진 개발을 위한 공감대 형성과 아낌없는 국민적 성원을 모아 K-방산에서 첨단항공엔진 독자개발이라는 또 하나의 위대한 금자탑이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 장원준 프로필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한국혁신학회 감사,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 국방산업발전협의회 자문위원, 前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부장, 前 명지대·국방대 외래교수, 前 미국 CSIS 객원연구원, 2022년 자랑스러운 방산인(방산학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