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준 칼럼] K-방산 신속획득, 신속만 있고 양산은 없다?
소요와 연계된 획득 프로세스 확립하고 충분한 양산물량 보장하며 민간기업 참여 제도화 필요
[뉴스투데이=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국내 방위산업에서 신속소요 및 신속시범사업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러-우 전쟁과 이-하마스 전쟁에서 이미 인공지능(AI)과 드론, 사이버, 우주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상황이다. 이제 10~15년 이상 걸리는 전통적 무기획득방식(PPBEES)만으로는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안보 환경과 첨단기술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신속획득 제도가 빠르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무기 획득을 통해 K-방산의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몇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 신속시범, 소요와 연계되지 않았고 성능입증시험의 군 시험평가 대체 미지수
신속소요사업은 2023년 5월 방위사업청이 미국의 신속획득 프로세스(MTA, Middle Tier Acquisition)를 벤치마킹해 도입한 제도다. 본 제도는 성능개량과 두 가지 이상 무기체계 기능 통합이나 기존 무기체계 계열화, 민간 자체개발 제품의 개량 도입 등을 통해 사업 시작 5년 이내에 제품을 만들어 실제 군 전력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신속시범사업은 2020년부터 방위사업청 주도로 시작된 신속시범획득사업이 2022년 신속연구개발사업으로 진화한 형태로서 현재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이하 신속원)을 중심으로 사업이 수행되고 있다. 본 사업은 무기체계로 분류 가능한 시제품 개발사업으로, AI, 사이버, 드론 등 14개 민간 신기술 분야를 포함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속획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신속시범사업은 초기 단계부터 군 소요와 연계되지 않고 시제품을 개발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현 규정상 초기단계 군 소요와 연계되지 않은 신속원 자체 시범사업이라는 점이다. 반면, 미국의 신속획득(MTA)과 국방혁신단(DIU)의 민간기술신속획득사업(CSO), 독일의 IT 전력획득사업 등은 군 소요와 연계된 사업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에 따라, 신속시범사업은 시범 운용 및 성능입증시험에 의존하고 있어 정상적인 군 시험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규정 개정을 통해 성능입증시험을 통과하면 군 시험평가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으나, 성능입증시험이 정상적인 군 시험평가를 실제로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결론적으로, 최초에 군 소요 없이 시제품을 개발하고 성공 시 긴급획득으로 소요를 제기하는 상당히 특이한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신속소요, 최초 양산물량 제한되는 데다 사업 완료 후 사후조치도 불명확
둘째, 신속소요사업은 현 규정상 시제품 개발(rapid prototyping)에 중점을 두고 있어 실제 야전 장병들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 양산 및 전력화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현 제도상 신속소요 프로세스로 개발된 시제품에 대해서는 개발에 성공한 기업이 최소 전술제대 물량만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차의 최소 전술제대를 중대급으로 보면 불과 10여대 시제품 생산에 그치고 만다는 얘기다. 어떤 기업이 전차 10여대 만들려고 사업에 참여할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현 규정상 신속소요사업 완료 이후 사후조치가 불명확하다. 미국 MTA의 경우, 사업 완료 시 바로 양산·전력화되거나 후속양산을 위한 신속전력화사업(rapid filelding) 연계, 또는 기존 전통적 무기획득 탐색 및 체계개발사업과 연계하거나 종료·폐기 등 사후조치가 명확한 것과는 크게 구별된다. 따라서 신속소요 성공 이후 최소 전술제대 물량 생산과 함께 향후 다양한 사후조치에 관한 규정을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 규정상 제안서 평가 시 방산기업에 유리한 평가 기준이 적용되어 AI, 사이버 등 첨단기술을 보유한 민간 기술기업의 참여가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과거 방산분야 참여실적을 요구하는 등 기존 방산기업 위주의 제안서 평가 방식으로는 처음 방위사업에 발을 내딛는 민간기업의 첨단기술이 채택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국방혁신단(DIU)의 신속획득사업(CSO)에서는 전체참여기업의 87%가 비방산기업(Non-traditional contractor)이라는 점이 놀랍다. 이를 통해 안두릴(Anduril), 팔란티어(Palantir) 등 기업가치 수십 조원 이상의 방산 유니콘들이 탄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기존 방산업체 위주의 국내 신속획득 제안서 평가 방식은 인공지능, 양자, 사이버 등 민간첨단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 신속소요 및 신속시범 통합해 소요와 연계하고 양산물량 충분히 보장해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개선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신속소요 및 신속시범사업을 통합해 초기 단계부터 군 소요와 연계된 신속획득 프로세스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신속소요사업과 신속시범사업 모두 첨단민간기술을 활용해 5년 이내 무기 시제품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신속획득 방식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신속시범사업의 경우 수백억원 규모의 소규모 예산만으로는 소요군과 기업이 원하는 개발제품의 충분한 개발과 양산 보장이 어렵다. 또 지난 수년간 군 소요 없이 시제품을 개발한 이후 긴급소요로 채택되지 않거나 상당 기간이 지체돼 개발에 성공하고도 가슴앓이를 한 기업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차제에 유사한 신속획득 방식을 하나로 통합해 군의 실제 요구를 반영한 효율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혁신해 나가야 한다.
둘째, 신속획득 성공 시 소요군이 요구하는 충분한 물량을 양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신속소요로 사업이 성공한 이후에도 기업에 최소 전술제대 물량만을 보장한다면 기업이 구태여 이를 선호할 이유가 없다. 개발제품에 대한 신속한 양산이 가능하도록 초기 신속소요물량을 개발에 성공한 기업이 생산하도록 규정을 개정하거나 별개로 신속전력화사업(Rapid Fielding)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신속획득(MTA)은 시제품 개발에 중점을 둔 신속시제품개발사업(rapid prototyping)과 함께 양산에 중점을 둔 신속양산사업(rapid fileding)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개선을 통해 어렵게 개발된 개발제품의 양산 및 신속 전력화로 실질적인 군사력 증강을 도모할 수 있도록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 민간기업 별도 쿼터 부여하거나 전용 신속획득사업 신설 등 검토 필요
셋째, 순수한 민간첨단기술의 국방 분야 진입을 위한 제도 마련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10대 국방전략기술 중 AI, 유무인 복합, 양자, 우주, 에너지, 사이버·네트워크 등은 이미 민간기술 경쟁력이 국방기술보다 우위에 있다. 따라서 첨단민간기술기업의 참여 촉진을 위해 별도의 쿼터(Quota)를 부여하거나, 민간-방산기업 간 컨소시엄을 우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DIU 수준의 민간첨단기술기업 전용 신속획득사업(K-CSO) 신설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신속획득제도는 소요군에게 필요한 무기체계 개발과 충분한 양산물량 확보, 더 나아가 K-방산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제도로 평가된다. 지난 수년간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속획득제도 도입을 위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소요군이 상당한 노력을 다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나타난 신속획득제도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다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차제에 신속획득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돼 K-방산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함과 아울러 우리 군이 미래 전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 장원준 프로필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한국혁신학회 감사,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 국방산업발전협의회 자문위원, 前 명지대 외래교수, 前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부장, 前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연구원, 2022년 자랑스러운 방산인(방산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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