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시중은행 ‘대출 문턱’ 높이기 돌입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올 하반기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완화 전망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은행들은 오히려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으로 수요 조절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선 정기예금 등 수신금리 하락세가 본격화한 상황에 대출금리를 높여 잡은 은행권이 다시 ‘이자 장사’ 비판에 휩싸일 거란 전망도 나온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18일 부터 전세자금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 상품의 금리를 0.2%포인트(p) 인상한다. 신한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중 은행채 3년물과 5년물을 기준으로 하는 상품의 금리를 22일부터 0.05%p 올리기로 했다. 우리은행 역시 24일부터 변동형 아파트담보대출 상품 금리를 0.2%p, 아파트 외 주택담보대출 중 5년 변동금리 상품 금리를 0.15%p 각각 올려 적용한다.
앞서 국민은행은 이달 3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13%p, 11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2%p 각각 올린 바 있다. 신한은행 역시 은행채 5년물을 기준으로 하는 대출 상품 금리를 최대 0.2%p 높였다. 우리은행은 12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상품 금리를 소폭 인상했다. 이들 은행이 이달 들어서만 두 차례에 걸쳐 대출금리 인상을 단행한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가계대출 관리 목적이라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6조원 증가한 1115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이 전월보다 3000억원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이 6조3000억원 늘면서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은 데다 최근 은행권의 대출 현황을 들여다보기 위한 현장점검에 돌입한 만큼 주요 시중은행들도 선제적인 대출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이 금리를 높이면 차주의 이자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출 수요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채권금리가 떨어졌고, 이를 기준으로 삼는 은행권 대출금리도 덩달아 내려간 바 있다. 다만 대형 은행들의 ‘릴레이 금리 인상’으로 그동안의 대출금리 하락분이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 전반적인 대출금리 수준이 올라가면 신규로 대출을 실행하는 차주 뿐 아니라 변동 주기가 도래하는 차주 역시 이자 부담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여·수신 상품 간 금리 불균형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35~3.40%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밑돈다. 은행권에선 정기예금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가 하락한 데다, 빠르게 밀려들어오는 수신 잔액을 조절하기 위해 금리를 내렸다고 설명한다.
정기예금 등 수신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에 대출금리가 오를 경우 예대금리차(예대마진)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이 예치한 자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적게 주면서 대출로 걷어들이는 이자는 많아지는 만큼 수익성이 증대될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 시중은행을 계열사로 둔 금융그룹들은 올 2분기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시장금리 수준이 여전히 높게 형성돼 있는 데다 꾸준한 대출 자산 증가 흐름도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자 부문 중심의 수익성 제고가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금리 인상은 최대한 대출을 덜 받게 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자 수익 부문에서 호재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가계 뿐 아니라 기업 부문의 대출도 크게 성장했고, 금리 레벨도 여전히 높아 여전히 수익성이 괜찮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