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노사, ‘8.5% vs 1.5%’ 임금 인상률 두고 격돌...영업시간 단축도 화두로
은행권 노사 올해 산별중앙교섭 본격 돌입
임금 인상률 두고 노사 ‘창과 방패’ 기싸움
영업시간 단축 문제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
고객 불편 우려에 노조, 저출산 관점 접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 노사가 내년도 적용할 임금 수준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회사) 측에서 각각 제시한 임금 인상 요구안 간극이 초반부터 크게 벌어져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은행권의 해묵은 난제인 영업시간 단축 문제도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교섭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금사협)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은행회관에서 ‘제3차 산별중앙교섭 대표단 교섭’을 열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재확인한 채 해산했다. 산별중앙교섭은 근로자와 사용자 대표가 협의해 정한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을 해당 산업 전체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 너무 큰 노사 임금 인상 요구안 격차...‘고연봉 직군’ 사회적 인식 부담도
올해 은행권 산별교섭의 최대 쟁점은 임금이다. 금융노조가 지난 3월 금사협 측에 전달한 요구안에는 임금 8.5% 인상이 담겼다. 이는 올해 예상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1% 및 소비자물가 상승률 2.6%에 최근 3개년(2021~2023년) 동안 발생한 실질임금 저하분 3.8%를 모두 더해 산출했다고 금융노조는 설명했다.
금사협은 금융노조 최초 요구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다가 최근 1.5% 인상안을 제시했다. 대·내외 경제 상황과 미래 불확실성, 현재 은행권 임금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같은 수준까지만 인상하자는 게 금사협 입장이다.
올해 산별교섭에서 은행권 노사가 각각 제시한 임금 인상안 격차만 7.0%포인트(p)에 달한다. 지난해 산별교섭 당시 금융노조는 3.5%, 금사협은 1.0%를 최초 제시한 이후 2.0%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다만 올해는 금융노조 쪽에서 요구한 임금 인상률이 지난해보다 2배 넘게 커지면서 초반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임금을 비롯한 주요 요구안을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지난달 20일 새로 취임한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사협이 제시한 임금 인상안(1.5%)에 대해 “터무니없는 숫자”라고 지적했다. 금융노조는 “올해는 산별 임금협약과 단체협약 개정이 함께 진행하는 해인만큼, 투쟁의 의지를 한데 모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노조와 금사협 모두 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하는 건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몇 년간 은행권은 시장금리 상승에 힘입은 이자 장사 논란에 휩싸였는데, 여전히 이 같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금리 수혜로 얻은 막대한 이익을 임직원 임금 및 성과급 인상에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국내 은행의 ‘경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임직원의 평균 근로소득은 전년(1억922만원) 대비 3.1% 오른 1억1265만원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으로 내년 이들 은행 임직원의 임금이 7% 오른다고 가정하면 평균 근로소득은 1억2000만원을 넘어서게 된다.
은행권 안팎에선 내년 임금 인상률이 3%를 넘기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매년 진행하는 산별중앙교섭에서 금융노조 최초 요구안이 그대로 반영된 전례가 없는 데다, 고연봉 직군인 은행원들의 과도한 임금 투쟁 이미지가 씌워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8.5%라는 숫자를 무조건 받아내기 위해 제시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3% 정도만 인상이 돼도 직원들이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며 “금사협 측은 공무원 임금 인상률 정도로 가져올 거 같은데 결국은 2~3%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영업시간 단축도 협상 테이블에...금융노조, 저출산 문제 관점서 요구한다
이와 함께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영업시간 단축 문제도 핵심 현안으로 올리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 영업점 운영시간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로 바꾸는 걸 요구할 방침이다. 이 경우 영업시간은 기존 7시간에서 6시간 30분으로 줄어든다.
앞서 은행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절정이었던 지난 2021년 7월 영업시간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전 3시 30분으로 단축한 바 있다.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개·폐점 정상화 요구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1월 30일 영업시간을 현재 상태로 원복했다.
은행 영업시간 문제는 해묵은 난제 중 하나다. 은행권 안팎에선 비대면 금융 활성화에 따른 영업점 수요 감소가 가속하고 있는 만큼 영업시간 조정도 가능할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데, 반대로 대면 채널에 의존하는 취약계층의 불편이 가중될 것이란 지적도 공존한다. 경영진과 근로자, 고객 등의 이해관계자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영업시간 단축은 첫발도 떼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금융노조는 이번 영업시간 단축 요구를 저출산 문제 관점에서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여성 노동자 비중이 높은 은행 산업 특성상 영업시간은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는 게 금융노조 판단이다. 영업시간 전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저출산 문제 해결도 가능할 것이라는 뜻이다.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은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은행업 특성상 사전에 업무 준비해야 될 시간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출근시간이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라며 “취업규칙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노동시간을 결정해 놓고 사실상 조기출근을 강요하는 행태가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은행권 기준) 최근 10년 동안 출생이 급감해 왔다는 건 출산이나 육아에 대해서 여성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충이 있다는 거고, 가장 중요한 고충 중 하나가 오전 시간대”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정책의 기조가 저출산 문제와 출산, 육아에 관련된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사회적 요구다. 영업시간과 육아휴직, 아이 키우는 환경 등 저출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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