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기획 : 직장인 정신 건강 현주소 ⑦] 콜센터 상담원 48% '자살 생각'…"개인 문제 아닌 '구조적 문제'로 봐야"
김태규 기자 입력 : 2024.07.10 07:04 ㅣ 수정 : 2024.07.10 08:22
콜센터 상담원, 고강도 스트레스 노출에 편집증‧공황장애 겪기도 사람과 대화가 '스트레스'…대인관계 기피하며 스스로 고립 자처 '감정노동자보호법' 지키지 않는 경우 허다…상담원 권리 보호 필요
최근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 가운데 특히 4차산업 종사자들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3차 산업이 중심이던 과거 1980~1990년대까지는 정신 건강 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을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정신보다는 육체 중심의 노동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중증 이상 환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 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가 사회 문제로 인식 자체가 전환되고 있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기업 등의 사례를 총 15회에 걸쳐 보도하며 우리 사회와 직장에 작은 걸음이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진아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한다. 불만이 가득한 고객, 매번 타임머신을 발명해서 2002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 등 다양한 '진상' 고객과 통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죄송하다', '아 그렇군요'라는 기계적인 대답 뿐이다.
진아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혼자가 편하다. 점심시간에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혼자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울 때도 혼자다. 잘 때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든다. 사람과의 대화가 스트레스가 된 진아는 처음 입사한 신입사원에게도 '밥은 혼자서 먹으라'고 말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극중 진아(공승연 扮)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며 고객의 말에 감정이 없이 기계적으로 답한다. 수많은 '악성' 민원인을 상대하면서 견뎌내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다.
콜센터 상담원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콜센터 상담원이 대하는 고객 가운데는 단순 질의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만을 가진 이들이다. 때문에 고객의 분노를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 '고객 분노' 받아내며 고강도 스트레스 달고 살아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하 우분투재단)에서 콜센터 상담원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김경선 하제심리연구소 소장은 "콜센터 상담원은 풀어낼 수 없는 긴장도를 늘 달고 있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어렵다"면서 "퇴근 후 누구와도 대화하기 싫어 혼술, 혼밥 등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분투재단은 금융사와 사무금융노동조합이 노동자 보호를 위해 함께 설립한 재단이다. 우분투재단이 지원하고 있는 활동가와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이하 통통톡)은 콜센터 상담원을 대상으로 '마음치유 프로그램'과 '개인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 소장은 우분투재단에서 4년째 콜센터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내담자의 사례를 통해 콜센터 상담원의 정신적 어려움을 나누고 있다.
김 소장은 콜센터 상담원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배경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편집증 등 정신질환 관련 증상을 보이는 내담자가 많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최근 편집증적인 증상을 보이는 내담자가 늘고 있다"면서 "악성민원이 본인에게만 몰리고 상사가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것 같다거나, 누군가 헤드셋으로 안 좋은 에너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려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콜센터 상담원은 업무 특성상 통화 중에 이석을 할 수도 없고,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혜택 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권한도 없어 고객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고강도의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김 소장은 "우울, 공황장애 등 정신적 질병은 물론 스트레스와 긴장도가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돼 소화기계, 근골격계 질환도 많이 나타난다"면서 "짧은 쉬는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흡연을 하는 상담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긴장도에 불안감이 확대되고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작은 것에도 트리거가 돼 공황증상도 발현된다"면서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만큼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근무시간 절반 이상 '정서적으로 불안' 13.7%…전 직업군 두 배 이상 높아
실제 콜센터 상담원의 스트레스 강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안전보건연구원이 2017년 내놓은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원의 업무는 '고객, 승객, 학생, 환자와 같은 직장 동료가 아닌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다. 하루 업무시간 중 화가 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 비중은 △근무시간 1/4 30.9% △근무시간 절반 7.7% △근무시간 내내 7.3% 순으로 나타났다. 화가 난 고객을 대하는 시간이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인 경우를 합치면 콜센터 상담원 23.0%다. 이는 전체 직업군의 9.7%에 비해 확인히 높은 수치다.
근무시간 절반 이상이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는 상황에 놓인다'고 응답한 인원은 13.7%로 전 직업군의 6.7%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다. 우울감을 겪고 있다는 응답은 6.9%로 전체 직업군 2.4%의 세 배에 달했으며 불안감은 5.9%로 전체 직업군 3.1%와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3월 발표한 '콜센터 상담노동자 인권 관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노동자 1996명 중 48%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응답일 기준 1년 이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30%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55.6%)과 스트레스 등 직업적 문제(53.4%)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소장은 "2018년 감정노동자보호법이 마련되면서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의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권리가 생겼지만,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사측이 상담원에게 감정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안내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고객은 왕'이라며 상담원을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 노조 등 동료 지지‧사측의 상담원 보호제도 마련 병행 필요
기업이 콜센터 상담원의 권리를 안내하고 개선방안을 강구하는 사례도 있다. 흥국화재는 지난달 콜센터 직원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자 건강마음 간담회'를 진행했다.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응대 과정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를 소개한 것이다. 흥국화재는 지난해 11월에도 '감정노동자 보호방안 개선 간담회'를 실시한 바 있다.
또 흥국화재는 '고객응대직원 보호를 위한 매뉴얼'을 마련해 두고 있다. 2021년 처음 제작된 매뉴얼에는 '감정노동'의 정의와 진단방법, 고객응대 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별 대응 방법, 관계법령에 따른 보호장치,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심리상담제도' 등이 담겨 있다.
콜센터 상담원의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은 물론 노동자 간, 노사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소장은 "고객응대 과정에서 성희롱 등 피해를 당했을 때 회사 법무팀 등 구조적 지원이 있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상담원의 피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와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조 등 동료의 지지가 있을 때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고 사측의 보호가 있어야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면서 "개인이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상담원을 보호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