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 포항공대 교수, 작가의 사상을 강조하는 '개념미술' 총정리... AI시대 예술가의 직업적 돌파구?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한국생산성본부(KPC)가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2024 KPC CEO 북클럽' 강연을 열었다. 2024 KPC CEO 북클럽은 최고경영자(CEO) 북클럽 회원들로부터 주제를 추천받아 실시하는 강연 프로그램으로 올해 5회차를 맞는다.
이날 강연은 우정아 포항공과대학 교수가 ‘한국미술의 개념적 전환과 동시대성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우정아 교수는 작품 자체보다 작품에 담긴 창작자의 '생각'을 중시하는 '개념미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훨씬 능숙하고 빠른 솜씨로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개념미술'은 최근 예술의 돌파구로서 재조명받고 있다. 인간의 예술작품이 AI의 예술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사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강연이 끝난 뒤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석자가 "AI가 사람의 그림 그리는 능력을 대체할 수 있냐. 예술의 영역을 얼마나 침범할 수 있다고 보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우 교수는 "AI가 이미지를 생성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의식을 가지고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조합하는 수준으로 이해한다. AI의 작품에는 사상이 없다"고 답변했다.
우교수는 "기계가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사람이 감동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개념미술이 AI예술 시대에도 인간 예술가가 존립할 수 있는 직업적 근거 혹은 돌파구라는 입장인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미술 전문가인 우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 학사 △동대학원 석사 △UCLA 대학원 미술사학 박사 등의 과정을 거쳐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미국 Getty Scholar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초빙교수 등으로 근무했다.
우 교수의 저서로는 △세상의 모든 미술 수업 △한국미술의 개념적 전환과 동시대성의 기원 △오늘, 그림이 말했다 △명작, 역사를 만나다 등이 있고, 조선일보 전문가 칼럼 ‘우정아의 아트스토리’를 연재했다.
정갑영(전, 연세대 총장) 고문은 이날 강연에 앞서 “미술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기존의 독자는 조각, 미술, 그림 속의 색, 질감, 조형 요소 등을 중요하게 보는데, 개념 미술은 눈에 보이는 작품보다도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개념미술의 개념을 설명했다.
정 고문은 이어서 “CEO 북클럽을 진행하면서 미술사를 다룬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오늘 강연을 진행할 우 교수는 이 분야의 학술 논문을 가장 많이 쓴 교수다”라고 소개했다.
■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이 개념미술 시작에 큰 영향을 끼쳐…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이 각광받아
우정아 포항공과대학 교수는 한국인이 흔히 아는 작가와 미술관 사진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우 교수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백남준 작가와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면서 “이 작가는 유일하게 미술적인 가치에 걸맞게 작품의 가격을 인정받는 작가다”고 소개했다.
이어 지난 1월까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전시된 로렌스 위너(LAWRENCE WEINER) 작가의 ‘UNDER THE SUN’이라는 전시회를 설명했다.
우 교수는 “개념미술은 1960년대 생겨난 다양한 미술 장르의 하나인데, 1990년대 한국 미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면서 개념미술이 형성되기까지의 중요한 작가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앤디 워홀(Andy Warhol)을 꼽았다.
우 교수는 “잭슨 폴록은 추상주의가 미국 미술을 전세계에서 유명하도록 만들었다”면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이 되었는데, 미술은 주목받지 못했다. 잭슨 폴록 작품을 통해 미국 미술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어 “잭슨 폴록은 미술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정신질환이 있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심리와 정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술을 통해 갈등, 우울을 풀어낼 수 있어서 시골에서 그림을 그렸다”면서 “큰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저게 무슨 그림이냐고 항의했고, 잭슨 폴록은 나도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 모른다. 그림을 그리면 내가 그림에 들어가는 것 같다. 내가 곧 그림이고 자연이다”고 답했다며 잭슨 폴록의 미술 세계를 설명했다. 그는 아쉽게도 전성기에 술을 잔뜩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앤디 워홀에 대해서 우 교수는 “실크 스크린에 프린트한 것 같은 느낌의 그림을 찍어냈다”며 “앤디 워홀이 슈퍼스타라는 말을 만들었고, 연예인만큼의 유명세를 타면서 미술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우 교수는 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옮기는 사진을 보여 주면서 2600억원에 낙찰되는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파급력과 개념미술의 등장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서 “이 작가들의 등장 이후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는지에 대한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개념미술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1960년대는 격동의 시대로 대학생이 늘어나고, 사회에 반항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기였다”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예술이 각광받았다”고 말하며 개념미술 전 단계 설명을 마무리했다.
■ 개념미술의 시작 마르셀 뒤샹의 ‘샘’…작품 자체보다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철학‧개념이 예술의 본질
우 교수는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언급했다. 우 교수는 “뒤샹의 작품인 샘(Fountain)이 개념미술의 시초가 될 수 있다”면서 "샘을 전시하기 전 뒤샹은 이미 유명한 작가였다.
뒤샹은 이 작품을 미술관에 전시할 때 ‘리차드 머트’로 이름을 속여서 전시 요청을 했다. 처음 뒤샹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그 작품을 미술로 인정하지 않았고,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어 ”뒤샹의 작품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작가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었나, 완성품은 어떤가 보다는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뒤샹이 항공동력기 박람회에 전시된 프로펠러를 본 후로 작품이 저렇게 아름다우면 더 이상 미술가가 할 일이 없겠다. 미술가가 손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드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면서 작가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작품은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시대가 도래한 배경과 예시들을 설명했다.
이어 개념미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70년대의 시대상을 설명했다.
우 교수는 “미술가가 무엇을 만드는가, 어떻게 만드는가가 사회 변화나 구조를 벗어난 적이 없다. 미술가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이다.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실제로 미술품을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해도 된다”면서 정보화 사회에 접어든 당시의 시대 구조와 아이디어만으로 전세계 누구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기술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작가의 ‘세 개의 의자’를 예로 들었다. 우 교수는 “의자가 전달될 수 있는 3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면서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에는 △실물 의자 △의자 사진 △의자의 사전적인 의미를 설명한 표지판 등 3가지 구성 요소가 있었다.
조셉 코수스는 사진 속 의자든, 텍스트의 의자든, 실제 의자든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고, 실제 사물보다는 작가의 철학, 개념이 들어가는 것이 예술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 교수는 “개념미술에서 작품을 판매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작품 안에 본질적인 의미는 없고, 작품의 의미와 가치는 맥락에서 나온다”면서 개념미술의 특징의 되짚었다.
■ 한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 3인방 박서보, 이우환, 이건영…작품의 의미가 작품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 확장
우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로 박서보, 이우환, 이건영 3명을 거론했다. 이우환 작가가 국내 개념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고, 이건영 작가가 그 뒤를 이었다. 박서보 작가는 6‧25 전쟁을 겪은 세대로 전쟁에 대한 기억이 많은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이건영 작가는 박서보의 화풍을 이어가기를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 교수는 이우환 작가가 개념미술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우 교수는 “이우환 작가는 서울대를 다니다가 일본에 가서 철학을 공부했다. 작가로 성공하기 전에 평론가로 성공을 한 인물이다”면서 “서양 문명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간 중심의 예술을 지향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서양의 인간중심주의가 환경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서양적인 미술의 사고방식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면서 “인간의 의지대로 세계를 바꾸려는 서양의 가치관을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작가는 인간이 조성해 놓은 인공적인 공원에 자연물을 설치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우 교수는 “아무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만나는 순간을 가져보자. 자연과 나의 만남의 순간을 깨우치는 것이 예술이다”면서 이우환 작가의 작품 세계관을 설명했다.
우 교수는 이건영 작가의 작품을 공개했다. 우 교수는 “이건영 작가는 세대차이로 박서보 작가의 작품 세계는 거부했지만,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는 크게 감탄했다”면서 “작가가 중심이 되는 작품 세계를 표출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이어 “이건영 작가는 화방에 가면 작가의 팔이 닿는 길이의 캔버스를 구매해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이 캔버스의 가운데에 서서 주변을 칠하기도 한다”면서 ‘The Logic of Place’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을 보며 우 교수는 “이건영 작가는 원 밖에서 안을 보면 ‘저기’, 원 안에 들어오면 ‘여기’, 원 안에서 밖을 보면 ‘거기’라고 말을 남겼다”면서 동일한 사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기회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60년대, 70년대 각광을 받은 작가들이다”면서 “90년대 들어서는 의미가 본질적으로 작품에 내재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이 더 확장됐다. 작품을 통해서 의미를 전달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납득해야 한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