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4.03.19 05:00 ㅣ 수정 : 2024.03.19 05:00
바이든 美정부, 2022년 반도체 기업에 390억달러 지원하는 '칩스법' 제정 삼성정자, 美정부로부터 8조원 넘는 반도체 보조금 지원 받을 전망 거액 보조금 수령에 따른 투자 확대와 정보 공개 등 '부담' 만만치 않아 한국, 반도체 R&D 세액공제 세계 평균의 4분의 1 수준...보조금은 0원 세계 각국 반도체 산업 파격적 지원...한국 방심하면 반도체 경쟁에서 후퇴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에 8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한국 정부는 '무늬만 지원책''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 실행이 가시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2022년 8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390억달러(약 52조260억원) 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칩스법을 제정했다.
총 600여개 기업이 미국 보조금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삼성전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미국 텍사스주(州) 테일러시(市)에 17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추진한 미국 투자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테일러시 발전에 이바지하고 핵심 로직 칩(Logic Chips·시스템 반도체)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60억달러(약 8조70억원)이 넘는 반도체 보조금을 지원할 계획이라는 내용을 최근 보도했다.
당초 업계에서 전망한 보조금은 20억~30억달러(약 2조6690억~4조35억원)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제시한 보조금은 이보다 2~3배가 더 많은 규모다.
이 금액은 대만 반도체업체 TSMC를 크게 앞지르는 규모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400억달러(약 53조38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공장을 설립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로부터 50억달러(약 6조6700억원) 수준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170억달러를 투자한 삼성전자 보조금이 400억달러를 투자한 TSMC 보조금보다 더 많은 셈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 등에 주요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미국 칩스법이 중국을 견제하는 취지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등으로 부담이 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그동안 미국 보조금을 받기 위해 물밑에서 적극 협력해 왔는데 이에 따른 결과물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삼성전자 보조금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온도차가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지난해 말 삼성전자에 제시한 보조금 규모가 예상보다 낮아 삼성전자가 증액을 위한 추가 협의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 설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건비와 원자재비 등 투자 비용이 예상보다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보조금 증액이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압박과 통제도 커질 것이란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칩스법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기 위해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한 ‘자국 우선주의’ 의도가 담긴 법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보조금 확대 협상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테일러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 건설 계획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블룸버그통신 보도에는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삼성전자가 계획한 ‘텍사스 프로젝트’ 외에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도 나왔다.
이런 점을 미뤄볼 때 삼성전자가 많은 보조금을 받는 만큼 미국 정부의 자국 내 반도체 투자 압박도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보조금 수령에 따른 각종 리스크도 뒤따른다.
삼성전자는 미국 국방부에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을 공개해야 한다.
또한 미국 법규는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이 미리 제출한 전망치를 뛰어넘는 초과 이익이 발생하면 미국 정부에게 지원금의 최대 75%를 반납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이러한 리스크를 감내하며 미국 투자에 나서는 데에는 보조금뿐만 아니라 세액공제 영향도 크다. 미국 내 반도체 관련 제조업 투자에 보조금 지원과 함께 최대 25%의 세액 공제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는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외 이렇다 할 반도체 육성 지원책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부문 세액공제마저 세계 표준에 한참 못미친 수준이다. 전 세계 평균이 25%인 반면 한국은 8%로 4분의 1수준에 그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이른바 ‘K-칩스법’ 제정을 추진했다. 그리고 여야 격론 끝에 지난해 3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의 투자세액공제율을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늘린다.
또한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은 2023년에 한해 10% 추가공제(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결국 추가공제 혜택을 제외하면 삼성전자가 받을 수 있는 투자세액공제율은 15% 수준이다. 기획재정부에서 추가공제를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한시적 운영인 셈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도 자국 반도체 패권 확보를 위해 보조금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시한부 시설투자 공제 외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반도체 초강대국을 건설’을 약속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보조금 등 지원책이 없어 비난 여론이 거세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국가전략기술로 경제 성장을 위한 핵심 경쟁력"이라며 "한국은 지금까지 반도체 강국이었으나 이제는 경쟁국과 기술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쟁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해 기업체 지원에 본격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국내에서 R&D와 생산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투자는 때가 있다. 늦어지면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밀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