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교수 “ '우리'라는 한국식 ‘관계주의’로 세대 간 갈등 해결해야”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한국생산성본부(KPC)가 30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리더의 변화와 디지털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한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2023 KPC CEO 북클럽’ 강연을 진행했다.
올해 열다섯번째인 이날 강연은 특별히 CEO 북클럽 회원들로부터 꼭 듣고 싶은 강연을 추천받아 선정했고 김경일 아주대학교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김 교수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사람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고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인지심리학자다. 그는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마음의 지혜’, ‘적정한 삶’,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 다양한 심리학 도서를 저술했다.
김 교수가 준비한 이날 강연 주제는 ‘지혜로운 인간생활 소통과 공존의 레시피’다.
김 교수는 "과거 질병 데이터에 기초해 발표한 인간 기대 수명이 85세 수준으로 알려졌다"며 "그러나 실제 인간 기대수명은 이미 20년 전부터 90대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 수명이 점차 길어져 현재 60~70세는 120세까지 살 수 있다"며 "이는 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연령도 그만큼 길어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은퇴’를 검색하면 2012~2013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라며 “이는 현재 60년대 생은 은퇴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금 40·50대는 80세까지 노동시장에 남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예로 영화 <인턴>을 들었다.
<인턴>은 올해 나이 70세 정년퇴직 한 벤이 사회생활을 새롭게 하기 위해 30대의 젊은 CEO 줄스가 운영하고 있는 패션 쇼핑몰 회사 인턴으로 취직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룬다. 30세에 성공한 패션 쇼핑몰 CEO와 삶의 경험이 풍부한 70세 인턴의 나이를 뛰어넘은 성장 스토리다.
이는 비단 영화 속 스토리만은 아니다. 모 은행 부지점장으로 퇴임한 A씨는 은행권 재취업이 어려워 판교 스타트업의 지원업무 스태프로 새롭게 근무를 시작했다. 3년 정도 흐른 지금 A씨는 스태프 지원 부서 실장으로 여전히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사례는 A씨 한명에서 500명으로, 내년에는 2000명 정도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이제는 다양한 세대가 공존을 해야 한다. 이미 꽤 많은 기업에서 앞으로 들어올 알파세대 직원들과 기존 멤버가 어떻게 협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직장 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면서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사람 간 관계도 더 복잡해지는 만큼 인간관계 고민은 갈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소통’이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주체성이 유독 강한 한국인들은 소통 과정에서 갈등을 피하기가 어렵다. 한국인 주체성은 ‘우리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유일한 민족’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보다도 강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대사가 단골처럼 등장하고 “내가 예뻐, 연예인 OOO이 예뻐” 혹은 “내가 잘생겼어, 연예인 OOO이 잘생겼어”라고 끊임없이 되묻는 것 등은 모두 강한 주체성을 보여주는 예다.
김 교수는 이처럼 주체성이 강할수록 상대방 관점의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 관점의 언어는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부모가 시험을 가지고 자녀와 대화할 때 접근 동기는“평균 90점을 넘기면 제주도에 보내줄게”라고 한다면 회피 동기는 “이번 기말고사에서 평균 90점 못 넘기면 해병대 캠프를 보내버리겠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지금 당장 해야 하고 결과도 빨리 볼 수 있는 일은 회피 동기 대화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일의 결과나 먼 미래나 나오는 일은 접근 동기 대화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상대방 시간을 봐야 한다. 상대방에게 긴 시간 일인가, 짧은 시간 일인가를 살피고 접근 동기 언어와 회피 동기 언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한국인들은 접근 동기 대화와 회피 동기 대화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즉 소통 중 갈등이나 싸움을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또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관계주의’ 문화가 다양한 세대를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관계주의를 쉽게 한 단어로 표현하면 ‘우리’다. 전 세계 통틀어 자신 배우자를 ‘우리 남편 혹은 우리 아내’라고 표현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또 혼자 사는 사람이 자신 집에 놀러 오라고 할 때 ‘우리집에 놀러 와’라고 말하고 무남독녀 외동 딸이 자신의 부모님을 ‘우리 아빠 혹은 우리 엄마’라고 칭한다.
가까운 일본의 ‘집단주의’나 서양의 ‘개인주의’로 구분할 수 없는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다.
관계주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때마다 적합하게 바뀐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변화무쌍함 때문에 평소에는 세대 차이로 갈등을 빚더라도 관계주의적 상황에는 순간적으로 모든 세대가 통일되는 효과가 있다.
관계주의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예가 바로 ‘훈수’다. 그러나 훈수가 때로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역량에 비해 더 큰 결과값을 가져올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훈수가 중요한 메커니즘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A팀이 2~3일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는데도 묘수를 못찾고 괴로워하는데 다른 팀 팀장이 지나가다 던진 한마디가 해답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훈수 잘 수렴할 수 있는 개인과 조직은 굉장한 문제 해결력을 지닌다"며 "개인 개별 역량은 비슷해도 조직에 훈수가 많다면 똑같은 역량으로도 결과 총합은 당연히 커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도 “개별 역량에서 좀 매력적이지 않더라도 다른 팀 직원에 대해 따뜻하고 다른 팀 리더에게도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 조직의 일정 수준을 차지하고 있어야 조직 전체 생존력과 창조성과 문제 해결력이 올라갈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