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조기석 호(號) 물적분할 논란·업황 불황 등 '이중고'에 휘청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주요 반도체 기업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 한파로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업체들이 영업적자를 보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가운데 DB하이텍은 지난해 매출액 1조6753억원과 영업이익 7687억원으로 2021년 대비 각각 38%, 93%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머쥐었다. 남들이 울 때 웃는 진정한 승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요즘 DB하이텍은 오히려 뒷걸음치는 모습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은 브랜드 사업부 물적분할에 따른 소액주주들과의 갈등이 진행 중인 가운데 주력 사업인 8인치 웨이퍼(집적회로 만들 때 쓰는 직경 5~10cm 실리콘 단결정의 얇은 판)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정도 녹록지 않다.
올해 국내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 가동률 40~50% 수준으로 전년 대비 반토막에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기조가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당분간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가 예상된다.
■ DB하이텍 물적분할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
DB하이텍의 반도체설계(팹리스·Fabless) 사업을 담당해 온 브랜드사업부문 분할은 회사가 해당 안건을 2023년 정기주주총회 심의에 올리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논란이 됐다.
파운드리는 고수익 전력반도체를 주축으로 한 순수 파운드리로 키우고 브랜드사업 분할 후 새롭게 설립되는 자회사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구동칩 분야에 집중해 각각 전문화된 경쟁력을 기반으로 동반성장하겠다는 것이 DB하이텍이 밝힌 분할의 취지다.
그러나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회사 물적분할 계획에 거세게 반발했다. DB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물적분할 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주주들은 분할 과정에서 DB하이텍 주가가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해 5월 DB하이텍의 주가 상승 등을 이유로 DB그룹에 지주사 전환을 통보했다.
당시 DB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려면 시가총액 2조원 이상의 DB하이텍 지분을 30%까지 확대해야 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DB하이텍 최대주주였던 DB아이엔씨(DB Inc.) 지분은 12.42%였다.
만일 DB아이엔씨가 지주사로 강제 전환되면 17.58% 수준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한 수 천억원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정위 통보 후 불과 4개월 후인 9월 DB하이텍이 최초의 물적분할 추진을 시도하자 소액주주들이 이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DB하이텍 주가가 하락해 DB 자산총액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그해 12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주사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물적분할 추진 이후 주가하락을 경험한 소액주주들로서는 회사가 다시 든 분사 카드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2023년 주총에서 이 방안이 가결돼 지난 5월 팹리스 신설법인 ‘DB글로벌칩’이 출범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DB Inc.에 지주사 전환 회피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결국 지난 16일 문덕식 DB Inc 대표가 물적분할 논란과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국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문덕식 대표는 DB하이텍 물적분할 추진이 '지주회사 강제 전환 회피용'이라는 논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DB하이텍 주가 하락도 물적분할 이슈가 아닌 반도체 불황에 따른 영향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국감에서 “팹리스 파운드리 분리가 사업 성장과 기업가치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물적분할을 시도했다"며 "당시(지난해 9월)에는 소액주주 보호장치가 없는 등 상황상 적합하지 않았고 주식매수청구권이 생긴 후 2023년에 와서야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주가 하락과 관련해 “반도체 경기의 일반적 현상이지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행위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액주주의 반대를 잠재우는 해법은 DB글로벌칩의 상장을 막는 것이다. 새롭게 설립된 회사가 상장하면 기존 회사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주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DB하이텍도 분할 후 5년간 신설법인 상장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만일 물적분할 5년 경과 후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DB하이텍 주총을 통해 주주 동의를 반드시 거치겠다는 정관을 수립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5년 후 상장 가능성에 여전히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도 이번 DB하이텍 물적분할을 둘러싼 회사와 소액주주간 갈등 해소의 핵심은 상장이라고 여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경제경영 전문가는 뉴스투데이에 “설계 사업부와 생산사업부가 함께 있으면 설계를 맡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자신 사업정보가 생산사업부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오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 측면에서는 두 사업부를 서로 떼어놓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장을 한다고 하면 좀 문제를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될 상황은 아니다”라며 “자금 문제이다 보니 주주 입장에서는 당연히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만일 상장하더라도 자본시장법 주식매수청구권을 청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신설법인을 상장하지 않고 천년만년 100% 자회사로 가면 주가가 떨어질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하면 주가 하락 역시 업계 불황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하지만 5년 내 상장을 안 하겠다고는 했지만 이후 할 가능성도 있다 보니 현재 주주 입장에서는 회사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상장 여부”라고 말했다.
■ 8인치 웨이퍼 가동률 하락 전망에 DB하이텍 실적 악영향 가능성 주목
물적분할 이슈가 계속되는 가운데 반도체업계 불황에도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이던 사업 실적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재택근무가 빠르게 증가하며 IT(정보기술)·가전제품 판매 증가와 함께 전기자동차 반도체 수요 확대 등이 맞물려 8인치 파운드리 사업은 호황기를 맞았다.
덕분에 8인치 파운드리를 주력 사업으로 삼는 DB하이텍은 지난해 매출 1조6753억원과 영업이익 7687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썼다.
올해도 DB하이텍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전방산업 수요 부진이 지속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이 1분기 28%, 2분기 29%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줄었지만 파운드리가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업계 불황 영향을 덜 받다 보니 선방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스마트폰, PC 등 IT기기 수요 약세가 이어지면서 8인치 파운드리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웨이퍼는 피자에 빗대면 ‘도우(Dough)’에 해당하는 반도체 생산 기초재료로 생산량과 연결돼 있다. 이에 따라 IT 기기 수요가 8인치 웨이퍼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DB하이텍은 부천캠퍼스와 상우캠퍼스 모두 가동률 하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2분기 두 캠퍼스의 평균 가동률이 97.68%에서 이후 △2022년 3분기 94.96% △2022년 4분기 89.64%로 점차 줄어드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해 DB하이텍은 "올해 3월 초 가동률이 전력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지난 달 80% 중반대까지 올라갔다”며 “파운드리 가동률이 6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업계 우려와는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23년 1분기에는 77.40%를 기록하며 지난해 4분기 대비 하락했고 2분에도 직전 분기 보다 하락한 73.83%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파운드리 기업의 올 하반기 8인치 웨이퍼 팹 가동률은 50~60%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이 같은 예상대로라면 DB하이텍 역시 추가 가동률 하락 가능성도 열려있다.
특히 DB하이텍은 지난해 말 기준 월간 14만장 수준이던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최근 15만1000장 규모로 늘린 상황이다. 생산능력을 키운 상황에서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동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DB하이텍 관계자는 “업황이 안 좋아진다 하더라도 (8인치 웨이퍼) 시장 자체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특히 차세대 전력반도체 성장률은 30~40%로 두 자릿수대로 높은 편”이라며 생산능력 확대가 당장 수익성 확보를 위함이 아닌 성장 가능성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