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유도탄여단장⑧ 한국군이 50년 간 운영해온 나이키 유도탄 포대 임무 해제돼
[뉴스투데이=최환종 전문기자] 언젠가 선배 장교들에게 들은 얘기이다. 내용인즉,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각의 연령대별로 주요 사안들이 있는데,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나 사람은 모두 각 연령대에서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면 졸업 후 취직 걱정해야지, 이후에는 결혼, 자녀 출산, 자녀가 성장하면 자녀 교육 문제 등등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지 않은가.
생도 시절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얘기이다.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성공한 이후 당시 연합군의 지휘관인 어느 미군 장군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서 軍 작전에 필요한 모든 전술과 전략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로들(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후 포획한 수많은 독일군 포로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포로들의 기본적인 숙식 문제부터 시작하여 포로 관리에 필요한 온갖 사소하고 다양한 문제 등등)” 이 말은 사관학교에서 배운 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장교 임관 후에도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생각과 끊임없는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생도들에게는 이와 유사한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훈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취지로 생도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생도 생활에 대단히 고생이 많다. 이제 내년 봄이면 졸업 및 임관이다. 그러나 사관학교 4년 교육이 끝난다고 모든 교육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년 간은 여러분이 공군 장교가 되기 위한, 장차 지휘관이 되기 위한 기초 소양을 공부한 것 뿐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앞으로 생도 생활보다 더욱 험난한 여정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유능한 공군 장교가 되려면..... (중략)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매사에 책임감 있는 공군 장교가 되기 바란다. 여러분의 건투를 기원한다.”
후배 생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했는데, 이 말이 얼마만큼 생도들에게 와닿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후배 생도들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필자와 생도들의 마음이 서로 통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해 여름에는 한국군이 약 50여년 동안 운영해온 나이키 유도탄 포대가 장기간의 임무를 마치고 영원한 임무해제에 들어갔다.
지대공 유도탄의 개념은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국이 발전시키기 시작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나이키 유도탄 체계는 195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실전배치 하였고, 이어서 유럽의 NATO에도 배치하여 운영하였다.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196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나이키 포대를 배치하였고, 이후 한국군이 이를 인수하여 운영했다.
나이키 유도탄 무기체계는 지금 시각으로 보면 구식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개념의 무기체계였다. 레이다는 탐지 레이다(표적 탐지), 추적 레이다(표적 추적) 등 용도별로 여러 개의 레이다를 갖추었고, 유도탄은 고체 추진체를 사용하여 상시 발사가 가능했다.
또한 유도탄의 탄두는 고폭탄과 핵을 탑재할 수 있었고(한국군은 고폭탄두만 보유하고 있었다), 지대공과 지대지 겸용으로 운용할 수 있어서 작전 측면에서 상당한 융통성이 있었다. 사거리 또한 상당히 길었는데, 지대공의 경우 150km 이상이었고, 지대지인 경우 180km 이상이었다.
이후 미국은 최신 기술을 적용한 PATRIOT를 1980년대 초반에 실전 배치하였고, 패트리어트의 실전배치를 전후하여 나이키 포대를 생산 중단 및 도태시켰다. 그러나 한국군은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미군이 나이키를 도태시킨 이후에도 상당 기간을 운영해왔다. 그러다 보니 나이키 유도탄의 수리 부속이 고갈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하여 나중에는 작전 운영에 애로를 겪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공군이 PATRIOT를 전력화하면서 나이키 포대의 도태가 시작되었다. (1991년에 육군의 방포사가 공군으로 전군하였고, 공군은 육군에서 진행하던 나이키 후속 무기체계 확보 사업인 SAM-X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이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지연되다가 우여곡절 끝에 2008년경부터 독일에서 사용하던 중고 PATRIOT를 도입, 실전 배치하게 되었다. 이후 나이키 포대의 도태가 시작되었다.)
필자가 여단장 임무를 수행하던 그 시기에 여단 예하에는 0개의 나이키 포대가 있었는데, 그 중 1개 포대가 필자가 초급장교일 때 근무하던 강원도 공군 부대의 바로 옆에 위치한 그 나이키 포대(당시는 육군 방포사 소속)이다. 이 포대도 이제 수명이 다하여 임무해제를 부여받고 장비 철거 및 포대 해편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이 나이키 포대는 필자가 초급장교일 때 인접 육군 부대로서 그저 구경만 하던 그런 부대였는데, 그동안 이 부대는 공군으로 전군하면서 필자가 지휘하는 여단의 예하 포대가 되어 있었고, 그 부대를 이제 필자가 지휘하다가 해편시키게 되니, ‘운명’이라는 거창한 용어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이 임관 후 첫 근무지였기에, 또한 당시 3년간 여기서 근무하면서 피땀 흘린 곳이었기에, 그래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은 곳이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곳 강원도 부대에서 생활할 그 당시의 추위와 폭설과 강풍이 느껴져 온다. 3년 동안의 강원도 부대 생활! 아직도 내 마음과 머리속에는 00산의 지형지물과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이 희미해져도 이곳 강원도 부대에서의 추억은 잊혀지지 않으리라 ......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여단장,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무총장, 現 국립한밭대학교 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