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무협지를 보면 절대고수가 되어 무림을 평정할 수 있는 소위 “비급”이라는 것이 항상 나온다. 의천도룡기의 “건곤대나이”, 사조영웅전의 “구음진경”, 소오강호의 “규화보전”처럼 말이다. 스토리 또한 그 비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급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무협 드라마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광고의 절대고수가 되게 해주는 비급이 있다면…” 무협지의 비급처럼 광고계에서 절대고수가 될 수 있는 숨은 비급을 꿈꿨던 것이다.
비급은 얻기는 어렵지만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다. 효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경쟁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은 학창시절부터 공부건 놀이건 모든 영역에서 일종의 비급인 지름길(Short Cut)만을 추구 하도록 강요 받아왔고 또한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비급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광고쟁이들이 “왓 위민 완트(What women want?)”라는 영화를 보면 광고의 고수가 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비급 그 자체는 아니지만 비급에 버금가는 특별한 능력과 관련된 영화다.
영화 자체는 대단히 훌륭하지도 히트를 치지는 못했지만 내 평생 직업인 광고 그리고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무협지의 절대고수의 경지와 비견되는 광고계를 평정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내가 이 영화를 관심 있게 본 이유이며,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을 통한 깊은 공감을 만들어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멜 깁슨은 광고회사의 부장급 크리에이터다. 여자를 좋아하는 바람둥이지만 여성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천상 마초, 남성 우월주의자다.
승진을 앞둔 어느 날 새로운 여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의 상사로 오게 되고, 멜 깁슨은 위기에 몰린다. 여성을 타겟으로 한 제품이 많아지며 여자 디렉터를 영입하기로 경영진이 결정한 것이다.
첫 만남 자리에서 팬티스타킹, 제모용 파스, 화장품 등 여성 용품들을 직접 사용해 보고 느낌을 말해 보라는 숙제를 받게 된다.
그녀에게 밀려 승진도 못하던 차에 숙제까지 받고 열 받아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다. 집에 와서 술김에 숙제로 받은 여자 용품들을 사용하다가 그만 실수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드라이기를 떨어뜨려 감전 사고가 난다.
그 사고로 멜 깁슨은 여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 엄청난 능력으로 개인적으로는 많은 여자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쩌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웠을 것이다.
업무적으로는 나이키 여성 신규 품목의 광고를 따내는 큰 성과를 거둔다. 여기까지는 우연한 기회에 비급을 얻어 무림을 평정한 무협지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마무리는 무협지와는 달리 비 내리는 날 또다시 감전이 되어 여자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잃고 그대신 자신의 상사인 여자 디렉터와의 사랑만 남게 된다는 다소 허망한 이야기로 끝난다.
이 영화가 나에게 준 교훈은 이렇다. 광고계를 평정 할, 광고의 절대고수로 만들어 줄 비급 따위는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멜 깁슨이 감전사고를 통해 가졌던 특별한 능력은 광고에 대한 남다른 열정, 자사와 경쟁사의 브랜드에 대한 끈임 없는 연구, 소비자 심리와 행동에 대한 관심과 이해, 차별화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개발하기 위한 지속적 시도 등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후천적 능력인 것이다.
2023년 새해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 “비급”을 얻으려는 목표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 필요한 것 등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필수 능력인 숙련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신재훈 프로필▶ (현)BMA 전략컨설팅 대표(Branding, Marketing, Advertising 전략 및 실행 종합컨설팅) / 현대자동차 마케팅 / LG애드 광고기획 국장 / ISMG코리아 광고 총괄 임원 / 블랙야크 CMO(마케팅 총괄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