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우 기자 입력 : 2021.11.27 08:00 ㅣ 수정 : 2021.11.27 08:03
수년 만에 한국청년의 고통은 더욱 깊어져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취업전선에 뛰어든 한국 청년들은 수십개, 수백개의 기업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러나 번번이 면접장에도 가기 전에 ‘광속’으로 탈락해버린다. 이런 비애를 담은 신조어가 '광탈절'이다. 이는 10여년 전부터 유행했다.
2∼3년 전부터는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가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 취업이 늦어지면서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은 학자금 대출도 갚지못해 '신용불량'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광탈절이 취업난만을 풍자한 신조어인데 비해 청년실신은 실업난과 학자금 대출 상환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한국청년의 삶은 '광탈절'에서 '청년실신'으로 추락 중임을 알 수 있다.
■ '광탈절', 어떤 기념일보다도 자주 맞이하는 자조적인 날
'광탈절'은 취업시험에서 ‘광속으로 탈락한다’는 의미의 신조어인 ‘광탈’과, 제헌절·개천절 등 기념일을 뜻할 때 사용하는 '절'이 합쳐진 신조어이다. 말 그대로 구직자들이 서류나 면접 등 채용전형에서 탈락하는 날을 일컫는 신조어다.
특히 서류전형의 결과 발표가 있는 날에 빠른 속도로 탈락한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광탈했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비상경 서류분쇄’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상경계열이 아닌 졸업자의 서류는 받자마자 분쇄기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비상경계열 졸업자가 훨씬 심하게 겪는 광탈의 세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청년들이 오랜 취업준비 기간동안 반복되는 광탈을 당하게 되고, 매년 맞이하는 명절이나 기념일처럼 느껴서 광탈절이라는 말이 생기게 됐다. 수백개에 달하는 기업에 자소서를 넣으니 불합격 소식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당연지사가 됐다.
특히 주요 대기업의 서류전형 결과가 주로 발표되는 3~4월과 9~10월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 탈락했다는 후기가 자주 올라오는 광탈절 대목이다.
■ 청년이 ‘실신(실업난+신용불량)’ 당하는 ‘청년실신’ 시대
최근 청년들이 대출을 받는 비율이 높아졌다. 특히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는 학자금·생활비 등을 위해 대출받은 경우가 많다. 청년들은 사회에 나와 취업을 해서 그동안에 생긴 빚을 갚을 계획을 할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계속되는 광탈절을 맞이하며 취업난을 겪는 바람에, 취업커뮤니티 등지에서는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당장의 생활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한탄 섞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취업난의 심각성은 지난 7월 11일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자료는 취업 후에 의무상환을 개시하는 대출 상품인 ‘취업후상환학자금’을 빌린 사람들이 졸업 후 상환개시까지 걸린 기간을 조사한 통계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에 성공해서 상환의무가 생긴 대상자 중 36%는 졸업 후 ‘3년 이상’이 지나서야 상환의무가 생겼다. 10명 중 3~4명꼴로 대학 졸업 이후 3년이 넘도록 취업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대학 졸업 이후 3년이 넘도록 취업을 못하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대출자 중 취업까지 '3년 이상'이 소요된 사람의 비율은 △2016년 20% △2017년 26% △2018년 30% △2019년 33% △2020년 36%로 매년 꾸준히 상승했으며, 2016년에 비해서 2020년에는 2배에 육박하는 수치까지 오른 것이다.
그나마 '취업후상환학자금'의 경우 취업 전까지는 상환의무가 부과되지 않고, 이자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나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거나 다른 생활비 등의 이유로 추가적인 대출을 받은 상황이라면, 청년은 취업 전 공백기간에 대출 상환까지 해야하는 말 그대로 실신상태를 겪을 것이다.
■ ‘아프니까 청춘’?… 실신할 정도로 아파서 죽는 '청년 고독사' 급증
몇 년 전 국내를 뜨겁게 달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 유행어는 동명의 저서가 유명해지면서 생겨났는데, 유행어의 요지는 ‘청춘은 원래 힘들고 고통스러우니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라는 의미였다.
근데 아파도 적당히 아파야 한다. 실패를 반복되는 기념일처럼 자조하고, 아예 실신 직전까지 몰리는 청년들은 아픔에 파묻히다 못해 생을 마감하는 비극까지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9월 22일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40세 미만의 청년 중 무연고 사망(고독사)로 추정되는 인원이 2017년 63명에서 2020년 102명으로 단 3년만에 62%나 급증했다. 청년의 고독사 현장은 더욱 처참하다. 취미생활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당장 전기세 낼 돈 몇 천원도 없어서 굶어 죽는 경우도 있었다.
청년의 자살률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대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19년 19.2명에서 2020년 21.7명으로 12.8%나 급증했다. 국내 전체 자살률은 10만명당 25.7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이처럼 청년 실신시대에는 청년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