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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경민 기자)
2월 주총서 현대중공업 분사결정...경제적 이해관계 일치하는 노조와 지역사회 반발
현대중공업이 4월 1일 4개 법인으로 나누기로 예정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노조와 울산 지역사회가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 분사 계획이 진통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노조와 지역사회의 반대가 비현실적이라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달 27일 열린 주주총회 결정에 따라 기존 법인인 현대중공업에 조선·해양·엔진만 남기고 ▲전기·전자(현대 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건설장비(현대건설기계) ▲로봇(현대로보틱스·대구) 등 나머지 3개 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리할 계획이다.
분리되는 회사의 본사도 각각 서울과 대구로 이전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와 현대글로벌서비스 등 2개 회사를 분리해 각각 본사를 충북 음성과 부산으로 이전한 바 있다.
하지만 분사 과정은 주주총회 전부터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4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의 주도 아래 ‘현대중공업 분사 구조조정 저지, 지역경제살리기 동구주민 총궐기대회’가 24일 오후 울산 동구 현대백화점 옆 분수대 광장에서 열렸다.
해당 집회는 결의문에서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게 된다"며 "분할회사의 본사를 울산 외 지역으로 옮겨가면 인구유출, 세수감소로 울산과 동구경제의 미래는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측은 시위의 격렬함을 우려하여 지난 24일 울산지법으로부터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신청의 일부 인용 결정을 받아 주주총회장에 게시하고, 26일부터 주주총회가 열리는 한마음회관 주변에 버스를 동원한 차벽을 세워 노동자들의 접근을 막은 상태에서 총회를 진행했다.
노조,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및 근로조건 저하 등 우려
울산지역사회, 지역경제 침체 걱정하며 노조편 가세
노조는 사측의 사업 분할 강행에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10일 "주총 무효소송 등 법률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고용안정 등의 이유로 분사 이후에도 기존의 고용·근로조건을 승계하고, 분사된 6개 사 조합원들을 하나의 노조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사업 영역이 전혀 다른 4개 회사가 단일교섭을 해야 하는 4사 1노조 체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분사에 대해 노조가 우려하는 부분은 고용불안과 임금삭감이다. 노조 측은 “분사 이후 노동자들에겐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근로조건 저하밖에 돌아올 것이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울산지역사회 또한 지역경제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울산발전연구원 황진호 경제산업팀장은 "현대중공업 본사가 울산에 있더라도 명맥상 유지되는 것일 뿐 지배구조나 위상은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울산은 단순 선박을 만드는 생산기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최근 울산시의회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 의회는 사업분할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노조 및 지역사회 반발은 시장논리 무시한 '기득권 지키기' 비판 대두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의 걱정이 과장되거나, 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생떼’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조선·해양산업이 불황인 요즘,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분사로 회사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데 노조 및 지역주민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권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합의점을 찾지 않고 무조건적인 반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노조의 고용불안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입장을 밝혔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2일 분사 결정에 관한 담화문을 내고 "고용과 근로조건은 100% 유지된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은 접고 회사를 살리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강 사장은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문제되지 않았지만 극심한 불황 속에서는 누가 누구를 보호해줄 수 없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인데도 노조 등 일부에서는 아무 근거 없이 사업 분할을 무조건 반대했다”고 지적하였다.
분사반대를 외치는 울산 동구 지역사회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분사 확정 이후 분사법인의 본사 울산존치와 지역투자 확대 등을 유치하는 방향으로의 현실적 접근을 해야지 무조건적인 반대로 회사의 계획을 방해하면 지역사회와 회사 양측이 불경기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지역 노사관계 전문가는 “지역 주민들의 희생과 공헌으로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중공업이 지역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분사 이후 지역 내 신규 투자 등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지역사회의 현실적이고 노련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회사 또한 지역사회의 요청에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한 때 조선산업으로 유명했던 스웨덴 ‘말뫼’시의 사례를 들어 울산 지역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말뫼 시도 조선산업이 쇠락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버려진 조선소와 공장 부지에 IT와 지식산업체를 유치하고 태양열, 풍력, 지열 등 신재생 에너지를 100% 자급자족하는 친환경도시로 거듭나면서 경제가 되살아났다.
재계 전문가는 “지금까지 울산시는 타성과 매너리즘에 젖어 지역경제의 상당 부분을 현대중공업과 포스코에 의존해 왔다”며 비판하였다.
또한 이 전문가는 “말뫼 시처럼 새로운 산업에 투자해서 지역사회의 산업구조를 혁신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면서 “무조건적으로 현대중공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연명하다가 나중에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과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면 그때는 울산도 파국적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노조 일부에서도 회사 측과 협상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노조 간부는 "3월말까지 임·단협 협상을 매듭짓자는 데는 노조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노사 분규 장기화로 인한 노조원들의 피로감의 심화 및 명분 부족을 자각하고 있기에 노조 내 온건파의 입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