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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기순이익 전년 대비 31.8% 감소…국책은행, 대우조선·한진해운 사태로 3조 5000억원대 손실
은행원들, 가계 대출이 '효자'이고 기업대출은 '뇌관'임을 실감...외환 위기와 유사상황?
(뉴스투데이=이지우 기자)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영업실적 성적표가 발표된 가운데 당기순이익이 31.8%나 급감했다. 이는 2003년 카드사태 이후 최저이다. 특히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 같은 엇갈린 성적표는 은행원들이 불황기의 생존전략 방향을 암시해주고 있다.
안정된 직장인을 상대로 한 가계대출이 ‘효자’노릇을 하는 데 비해 부침이 심한 기업 대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서민금융을 주로 취급하던 국민은행은 건전성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은행을 성장한 반면에 거액의 기업대출만 다뤘던 장기신용은행 등은 금융계에서 사라졌던 것을 연상시킨다는 게 은행권 안팎의 반응이다.
당시 국민은행 직원은 ‘시장판 콩나물 장수’ 돈을 받아 영업을 하고, 장기신용은행 직원은 폼나게 대기업만 상대했지만 결국 최종 승자는 국민은행이었다. 대형 기업여신 부실이 터져나오면서 장기신용은행은 주택은행에 흡수됐고, 그 주택은행은 다시 국민은행에 의해 통폐합됐다.
모 은행권 관계자는 6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국책은행은 국가정책을 집행한다는 자부심과 직업적 안정성, 높은 보수 등의 3박자를 갖춘 직장이지만 시장논리대로라면 대규모 감원과 감봉을 해야 할 처지”라면서 “국책은행들이 3조 5000억원대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고도 별 탈 없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중은행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 6조원대 순이익을 이뤄냈지만 산업은행을 비롯한 특수은행들이 대우조선해양·한진해운·STX조선해양 등 조선·해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3조원대 손실을 낸 탓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6일 금융감독원은 ‘국내은행의 2016년 영업실적’을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조원으로 전년(4조4000억원) 대비 1조4000억원(31.8%)나 감소했다.
특히 3조원대 순이익은 ‘카드 사태’로 은행들이 대규모 손실을 낸 2003년(1조9000억원) 이후 13년 만에 가장 낮은 실적이다. ‘카드사태’는 당시 정부에서 신용카드발급 문턱을 낮게 설정해 상당수의 카드사들이 연체정보가 없는 만20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발급이 가능했다. 이를 발단으로 카드사들이 무분별한 카드를 발급한 결과 카드연체비율 및 금액이 치솟아 카드사들이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시기이다.
물론 13년 전과 최악의 실적 기록 원인은 다르다. 지난해는 ‘국책은행 쇼크’가 3조원대 손실을 떠안은 게 원인이다. 산업·수출입·기업·농협·수협은행 등 특수은행은 지난해 3조5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는 국책은행이 천문학적인 조선업 구조조정 비용을 투입한 까닭이다. 특수은행 대손비용은 2015년 6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8조9000억원으로 2조2000억원 불었다. 산은과 수은의 경우 지난해 각각 3조원, 1조원 규모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시중은행은 경기불황에도 가계대출이 순이익 견인
최근 금리 상승으로 가계 부담 우려
반면 시중은행은 경기불황에도 순익이 32% 증가했다. 지난해 순익은 5조5000억원으로 전년(4조1000억원) 대비 32% 가량 증가했다. 지방은행도 전년대비 소폭 늘어난 1조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시중·지방은행을 합한 일반은행 순익은 6조5000억원으로 2012년(6조9000억원) 이후 4년 만에 최대치이다.
이렇게 시중은행이 지난해 장사를 잘 한 것은 가계 대출 증가 등으로 운용자산이 늘면서 이익 규모가 커졌다. 지난해 은행권 전체 이자수익 자산 규모는 1934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6조9000억원이 늘었다. 1300억원이 넘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된 원인이다.
반면 수수료, 유가증권, 외환파생상품 등 비이자 관련 이익은 4조9000억원으로 1조1000억원이나 급감해 가계부채 대출채권 이자 이익이 사실상 국내은행의 주 수익원인 셈을 입증했다.
하지만 가계부채 우려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최근 금리 상승으로 올해 가계부담은 작년보다 약 8조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