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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B 비자 등 외국인 취업자 겨냥한 비자법 손보기로
실리콘밸리 등 IT분야 취업비자 따기 갈수록 힘들어져
(뉴스투데이=정진용기자) 이란 등 중동 7개국 출신들의 미국 입국금지 조치를 담은 반이민 행정명령 서명으로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진 트럼프정부가 이번에는 외국인 전문직 취업비자 제한을 골자로 하는 비자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 이민법에 이어 비자법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조치로 외국인의 전문직 취업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트럼프가 공언해온 미국인 우선주의가 노골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동시에 미국 취업을 타진해온 한국인 해외 취준생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 비자 행정명령 초안에 외국인취업 규제 못박아=블룸버그통신은 3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를 비롯해 다른 취업비자를 손보는 내용의 취업비자 프로그램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단독 보도했다.
IT 등 기술분야 대졸 전문직들이 선호하는 H-1B비자는 외국인들에게 연간 8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제공해왔으며 매년 4월 첫째 주 신청을 받아 6월쯤 컴퓨터 추첨을 통해 국무부가 합격자를 발표해왔다. H-1B비자 신청자는 연평균 35만명을 넘어 평균경쟁률이 3대1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이 입수, 보도한 행정명령 초안에는 “우리의 이민 정책은 국익에 가장 먼저,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고안되고 이행돼야 한다”(Our country’s immigration policies should be designed and implemented to serve, first and foremost, the U.S. national interest)고 명시돼 있다.
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비자 프로그램은 미국 노동자들, 합법적 거주자의 시민권을 보호하고 잊혀진 노동자들과 그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Visa programs for foreign workers … should be administered in a manner that protects the civil rights of American workers and current lawful residents, and that prioritizes the protection of American workers -- our forgotten working people -- and the jobs they hold)는 내용도 포함됐다.
앞으로 외국인을 위한 취업비자 역시 자국민 우선주의에 입각하여 미국인을 먼저 고용하지 않으면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외국인 기술자 의존도 높은 실리콘밸리 등 타격=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조치가 실현되면 이 비자프로그램을 이용해 외국인 전문인력 수만 명을 채용해온 실리콘밸리 등 IT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마이크로스포트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관련 기술직의 상당수를 외국인근로자, 특히 인도출신 IT기술자들에게 의존해 왔다.
인도의 대표적인 IT 서비스 하청업체들인 타타컨설턴시서비스, 인포시스, 와이프로 같은 회사들이 이 비자프로그램의 주된 수혜자로 인식돼 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IT기업들이 인도출신 IT기술자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적 이유가 크다. 구글, 애플 등 미국 톱5 IT기업들의 평균연봉을 보면 미국인 기술자들이 10만달러 정도인 반면, H-1B 비자 취득자는 7만달러 선으로 30%가량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IT기업들이 H-1B 비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IT 기업들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 저임금 외국 인력을 채용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행정명령 초안은 특히 H-1B비자를 활용한 기업들의 광범위한 데이터 축적을 위해 정부회계연도 마지막 달에 모든 기업들이 H-1B 비자 관련통계를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의회 역시 올 들어 비자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3개 법안을 상정했다. 법안을 낸 조 로프그렌 민주당 상원의원은 H-1B의 발급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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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 J-1 등 다른 비자들도 손보나 우려 제기=트럼프정부의 행보는 이제 시작일 뿐 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비자법을 손보기 시작한 이상, 거의 모든 비자까지 손을 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CNN머니는 트럼프정부가 H-1B는 물론 기업 주재원 비자인 L-1, 투자 비자 E-2, 관광비자 B-1, 문화교류 비자 J-1, 이공계 선택적 실무연수 비자 OPT 등 비자 정책 전반을 손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들 비자들이 실질적으로 미국에 고용창출 효과를 불러오거나 미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3D 직업과 관련된 것들이어서 실제적인 제재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CNN은 트럼프가 운영하던 호텔이나 리조트 등에서 임금이 싼 외국인 인턴들을 많이 사용했던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미국 뉴저지에서 이민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제임스 박 이민전문변호사는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취업비자 자체를 중단시키거나 쿼터를 당장 축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발급절차를 엄격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취업비자 발급자수를 억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뉴저지에서 인턴에이전시 및 이민컨설팅을 하고 있는 JOB USA의 임현덕 대표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려는 미국 내 고용주들에게 미국근로자들을 먼저 고용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방안도 예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기 위한 고용주들이 줄어 외국인 비자신청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