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영업시간’ 투쟁 전략 바꾼 금융노조...공감대 얻을까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 노동조합이 영업시간 단축과 주 4.5일제 시행을 요구하면서 ‘9월 총파업’ 준비에 나섰다. 은행을 향한 이자 장사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만큼 임금 인상보다는 근로조건 개선을 중심으로 한 투쟁 전략을 전개하는 모양새다. 다만 고객 불편 가중과 사회적 합의 부재 등을 고려했을 때 금융노조 요구가 온전히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지난달 28일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재적인원 8만9335명 중 6만2685명이 참여해 95.06%의 찬성률로 최종 가결됨에 따라 오는 25일 총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노조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국책은행 등의 노조가 소속된 은행권 노조 상급 단체다.
금융노조의 총파업 결정은 사측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금사협)와의 산별중앙교섭 결렬에 따른 것이다. 산별중앙교섭은 근로자와 사용자 대표가 협의해 정한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을 해당 산업 전체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금융노조와 금사협은 지난 4월 17일 상견례를 가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지만 주요 안건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번 산별중앙교섭에서 금융노조가 전면에 내세운 건 영업시간 단축이다. 은행 영업점 기준으로 오후 4시인 폐점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되, 개점 시간을 기존 오전 9시에서 오전 9시 30분으로 30분 늦추자는 요구다. 은행 영업점은 코로나19 사태 당시 오전 9시 30분~오후 3시 30분으로 단축 운영되다가 지난해 1월 30일부터 현행 체제로 정상화됐다.
주 4.5일제(주 36시간 근무) 도입도 금융노조의 핵심 요구 중 하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하루 8시간)에 연장근무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으로 규정한다. 주 4,5일제는 연장근무를 제외한 주 40시간에서 4시간을 더 줄이자는 뜻이다. 금융노조는 은행권이 2003년 국내 노동시장에 주 5일제 도입을 주도한 전례가 있는 만큼, 주 4.5일제 도입에도 앞장서겠다는 구상이다.
눈에 띄는 건 금융노조가 꼽은 핵심 안건이 임금보다는 근로조건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이다. 금융노조와 금사협의 올해 임금 인상률 제시안은 각각 5.1%, 1.9%로 간극이 커 갈등의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다만 최근 은행권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이자 장사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를 총파업 명분으로 내세울 경우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노조는 영업시간 단축 및 주 4.5일제 도입 필요성을 저출산 문제와 연결 지었다. 은행업 특성상 정규 영업시간 전부터 출근해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만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특히 여성 근로자 비중이 높은 은행권의 이 같은 근로 방식은 결과적으로 저출산 현상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게 금융노조의 주장이다.
금융노조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노조 산하 한 지부의 영업점 근무자 6459명 중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출근한다고 응답한 건 5492명(85%)으로 집계됐다. 또 금융노조 산하 7개 지부의 출생아 수를 조사한 결과 2020년 1512명, 2021년 1464명, 2022년 1338명 등 하락세를 이어가다가 지난해에는 996명에 그쳤다.
김태희 금융노조 여성위원장은 “은행원들은 9시부터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일찍 출근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인사를 나눌 시간도 빠듯한 실정”이라며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우리 노동자들이 보다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가정 내에서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노조의 이번 요구를 사측이 받아들이고, 실제 현장에 적용될 지는 미지수다. 특히 영업시간 단축 문제의 경우 이해관계 범위에 고객도 포함돼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은행들이 인력·비용 효율화 차원에서 영업점을 줄여가고 있는 흐름인 걸 고려하면 고객들의 금융 접근성이 더 약화될 것이란 우려 역시 해결해야 될 부분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국내 영업점 수는 2021년 3월 말 3674개에서 올 3월 말 3261개로 413개 감소했다. 단순 계산으로 이들 은행에서 매년 100개 넘는 영업점이 문을 닫고 있는 셈이다. 갈수록 영업점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개점 시간마저 늦춰지면 고객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노조의 총파업은 지난 2022년 9월 16일 이후 2년 만이다. 총파업을 막기 위해서는 늦어도 오는 24일까지 산별중앙교섭이 타결돼야 하는데, 노사 간 이견 차이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은행원들의 근로시간 단축 및 주 4.5일제 도입 요구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영업점은 금융 서비스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영업시간 단축에 대한) 강한 필요성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빠른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며 “파업이라는 수단으로 의견을 내세우는 건 자칫 욕심으로 비춰질 수 있다. 기대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꾸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