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림 교수 “가업승계 특례제도, 재벌세습 위한 특혜로 변질”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부모가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 줄 경우 상속세를 공제해 주는 ‘가업 승계 증여세 과세 특례 제도’(이하 가업 승계 특례 제도)가 지난 1997년(김대중 정부)에 도입됐다. 도입 당시 중소기업으로 한정했으며 공익성과 사후 관리까지 깐깐하게 운영됐다.
이후 7차례 제도 개편을 통해 가업 승계 적용 범위와 공제 한도가 확대됐다. 현재 매출 5000억 미만 기업일 경우 최대 600억원의 상속세를 공제해주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공익적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던 가업 승계 특례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중견기업 오너 일가가 상속세 납부 없이 경영을 승계하는데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를 27일 만나 현행 가업 승계 특례 제도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8월25일 정부는 가업 상속 관련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는 기업가치 제고(벨류업) 계획을 공시 이행하는 기업에 가업 상속 시 최대 1200억원의 상속세를 공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기존 가업 상속 요건(중견기업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을 충족한 후 매출액 대비 연평균 R&D(연구개발) 투자 비용이 5% 혹은 10% 증가한 기업에 대해 최대 1200억원의 상속세를 공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유 교수는 “형제들끼리 대기업을 분할하고 중소기업을 설립 후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고 향후 일감 몰아주기 형태로 덩치를 키운다면 상속세 공제받을 수 있다”며 “현 정부의 기조를 봤을 때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 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손봐 시행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1997년에 가업 승계 특례제도가 재벌들의 부의 대물림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세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27년만에 상속 공제액이 1200배 오르게 된다. 일반인이 부모로부터 부동산 상속 시 절반가량이 과세되지만, 연매출 5000억원 미만 기업을 물려받을 때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조세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장 중견 기업의 경우 오너가 지분율 20%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오너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가업 승계 특례 제도를 이용하는데 유 교수는 이 같은 사례에 대해 다수결 원칙과 상법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민주주의를 기반한 시장 경제 국가라는 가치가 전도된 것이며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원칙이 훼손된 것”이라면서 “중견기업(상장사)의 지분 20%를 갖고 있는 오너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데 80%의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은 회사의 주인이 아닌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또 사회 환원 기준이 줄어들면서 가업 승계 특례 제도의 공익적 목적성은 사라지고 오너 일가의 사익을 늘리는데 맞춰져 있는데 이는 기회 균등 위법이며 금수저 논란을 부축인다”라면서 “예외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 가업 승계인데 누구나 똑같은 출발점에 서야 되는 평등의 원칙이 훼손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업 승계 특례 제도가 재벌에게 관대한 것은 우리나라에게서만 찾을 수 현상이다. 정부가 세법을 개정하면서 일본과 독일 모델을 참조했다고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 가업 승계 특례 범위를 축소했으며 철저히 중소기업에게만 세금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지난 2014년 가업 상속 공제에 대해 조세평등 원칙과 동일부담원칙, 자의금지원칙, 비례의 원칙에 근거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유 교수는 “시민의식이 성장한 국가는 관습법에 따라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이 이루어진다”면서 “빌 게이츠가 상속세를 더 걷어가라라고 발언한 것은 가업 상속은 미국의 헌법 가치에 반하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가업 승계에 따른 상속 공제 범위를 넓히고 있는 시점에서 본래 입법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유 교수의 주장이다. 가업 승계로 사회적 공익이 발생해야 되며 고용과 투자, 기술 전수 등 원 규정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가업 상속 공제를 매출액과 R&D 투자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순자산 상속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순자산 100억원 이상 가업 상속 특례 적용이 안되며 업종 변경도 못하게 하는 것과 사후 관리도 1997년 입법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제약사의 경우 가업 상속 특례 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국민의 치료 옵션을 제공을 위해 신약 개발이라는 기업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개발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돼 오너의 리더십이 필요해 가업 상속 공제를 받아야 한다는 업계 내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아버지가 특허를 받았다고 해서 아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오픈이노베이션, 더 뛰어난 전문가들이 많이 모여야 제약사가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