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4.08.05 00:41 ㅣ 수정 : 2024.08.05 10:46
테라-루나사태 권도형, 몬테네그로 법원 판결로 한국송환 결정, 경제사범에 자비 없는 미국에서 처벌 받는 대신 상대적으로 경제사범에 관대한 한국에서 재판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듯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테라-루나사태는 2022년 5월 권도형 씨와 신현성 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테라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코인 루나가 대폭락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시가총액 5위에 오르며 개당 10만원에 거래됐던 루나는 한순간에 개당 1원도 되지 않는 수준인 -99.99%라는 말도 안되는 손실율을 기록하며 수 많은 투자자들에게 회복하기 힘든 손해를 입혔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인 피해규모는 5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개월 뒤인 2023년 3월 권씨는 사건을 조사 중이던 한국의 법망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가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검거됐다.
검거사실이 알려지자 미국과 한국 사법당국은 권씨의 신병인도를 위해 몬테네그로에 송환을 요청했다.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당초 권씨에 대해 한국송환을 결정했지만, 미국으로의 송환을 희망했던 검찰총장의 반대로 다시 재판에 부쳐졌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한국행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권씨는 미국으로 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한국행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검찰의 수사를 피해 스스로 해외도피를 택했던 그가 어떻게든 다시 한국에서 재판받기를 희망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권씨가 미국행을 극도로 피하려고 했던 것은 미국이 경제사범에게 무자비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화이트칼라범죄, 즉 금융범죄와 관련해서 특히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미국은 동시에 여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병과주의’를 적용한다. 병과주의란 각 혐의에 대한 형량을 합산해 최종형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병과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650억달러의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힌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던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이다. 그는 2009년 6월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징역 150년을 선고받았다. 벌금 1700억달러와 각종 재산권 박탈은 덤이었다.
메이도프가 이런 처벌을 받았던 것은 총 11개의 혐의에 대해 법원이 각 혐의별 형량을 모두 합쳐 150년의 징역형을 때렸기 때문이다. 선고 당시 71세였던 메이도프는 2021년 교도소에서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창업하며 '암호화폐의 거물'로 불렸던 샘 뱅크먼-프리드는 고객자금 수 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뱅크먼-프리드에게 징역 40~50년 형을 구형했었다.
이보다 더한 사례도 있다. 2000년 뉴욕 사업가 출신인 숄람 와이스는 내셔널 헤리티지 라이프 인슈어런스에서 4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사기를 벌였다가 84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경제사범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유죄로 인정된 여러 개의 혐의 중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를 기준으로 가중처벌하는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씨는 피해자의 수와 피해금액을 고려할 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상 사기혐의가 적용될 것이 확실시된다.
특경법은 사기로 인한 이득액이 5억원이상이면 해당되며,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의 경우 벌금형 없이 3년이상의 복역형이 선고된다,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이 내려지는데, 지금까지 경제사범에 대해 무기징역이 내려진 사례가 없다.
권씨는 특경법 외에도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모든 혐의에서 유기징역형이 내려져 가중되면 권씨의 형량은 최대 50년 이내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그나마 항소 과정에서 최초의 형량보다는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경제사범에게 내려진 최대 형량은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내려진 징역 4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