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노조, 위로금 200만원 때문에 '밥그릇' 걷어차나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와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집중 교섭에서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해 파행했다.
이에 따라 전삼노는 1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무노조 경영 폐기 약속 이행과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강수를 뒀다.
이에 대해 사측은 계속 노조와 대화의 문을 열어놓지만 파업으로 경영과 생산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삼노는 사측이 납득할 만한 협상안을 제시하는 조건으로 교섭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노조 요구를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면서도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달 8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시작한 전삼노 요구사항은 △성과급 제도 개선 △노동조합 창립 휴가 1일 보장 △전 조합원 기본 인상률 3.5%(성과급 인상률 2.1% 포함하면 5.6%) △파업에 따른 조합원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이다.
그리고 이번 3일간 집중 교섭에서 사측은 사실상 노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사측은 노조 총회 8시간을 유급 노조 활동으로 인정해 사실상 노조 창립휴가 1일을 보장한 데 이어 △전 직원에게 사내 복지포인트인 여가 포인트를 50만 포인트 지급 △올해 연차휴가 의무사용일수 10일로 축소 등이다.
그런데 전삼노가 협상 막바지에 '삼성 패밀리넷(임직원 대상 삼성전자 제품 구매 사이트) 200만 포인트'를 추가 요구했다. 200만 포인트는 해당 사이트 내에서 현금 200만원 가치가 있다. 이는 노조원이 임금 손실을 우회적으로 보전받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사측은 이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아 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사측과 파행 다음날인 1일 오전 전삼노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사측과 싸우는 게 아니다. 조합원의, 직원 권익을 위해 최소한 우리 요구와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사측은 조합원, 직원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고 호소했다.
손우목 위원장은 또 “이재용 회장은 본인이 말한 (무노조 경영 철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야 한다”며 “지금 삼성의 위기 속에서 그룹 오너는 어떠한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다”며 책임의 화살을 이 회장에게 돌렸다.
이에 대해 사측은 노조와의 대화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면서 경영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전삼노와 합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결렬돼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계속 노조와 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업에도 현재 고객 물량 대응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며 “파업이 지속되더라도 경영과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적법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악화로 지난 1년 내내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영위기를 겪어왔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이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5% 급감한 6400억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다시 경영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전삼노 노조원 다수가 몸담고 있는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은 이를 증명하듯 올해 2분기 매출액 28조5600억원과 영업이익 6조4500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각각 23%, 237% 증가하는 실적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HBM(고(高)대역폭메모리) 사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HBM3E 8단 제품 양산 공급이 본격화되고 업그레이드된 HBM3E 12단도 양산 준비를 맞췄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여러 고객사 요청 일정에 맞춰 올해 하반기에 HBM 공급 확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 HBM 내 HBM3E 매출 비중은 올해 3분기 10% 중반을 넘고 4분기에는 60%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이에 따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이에 대해 전삼노는 "반도체 공정 가운데 필름 공정 문제로 웨이퍼 1000랏(lot)이 대기하는 등 이미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며 "반도체 공정은 당장 타격이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반도체 생산 차질’이라는 전삼노의 총파업 목적이 달성될 가능성이 없고 노사 간 협의가 진전 없이 갈등이 장기화된 데다 이에 따른 '노노 갈등'마져 불거져 파업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풀이한다.
전삼노의 대표교섭 노조 지위는 이달 5일까지 보장된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사무직노조(1노조) 외에 △구미네트워크노조(2노조) △삼성전자노조 동행(동행노조·3노조) △전삼노(4노조) △DX(디바이스경험)노조(5노조) 등 5개 노조가 있다.
이에 따라 오는 6일부터 1개 노조라도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면 개별 교섭을 진행하거나 교섭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이럴 경우 전삼노는 쟁의권을 상실해 더 이상파업은 어렵게 된다.
특히 동행노조는 전삼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 26일 사내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대표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한 협상이 회사와 첨예하게 대립해 더 이상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삼노는 동행노조를 제외한 나머지 노조로부터 교섭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받았다며 새로 교섭권을 얻어야 하는 기간 동안 잠시 파업권을 잃을 뿐 이후 교섭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파업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쟁의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법조계·시민단체와 연대 등 파업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노조 리스크는 당장 경영이나 생산에 차질을 가져오지 않아도 장기화되면 기업 이미지나 사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쳐 회사는 물론 직원들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양측이 조속히 협상을 마무리하고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