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 개최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남수)는 지난 19일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대한민국 건국과 6·25남침전쟁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로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강정애·박민식 전현직 국가보훈부 장관과 김황식·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상시청, 추모사, 추모의 노래, 헌화·분향 및 유족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875년 황해도 출생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를 조직하고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을 발행하여 주필로 활동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1904년 8월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으며,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1910년 귀국 후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 대표로 임명되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하였으며,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을 폭로하였다.
1941년 12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예언한 논문과 같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해방후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적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특히 스탈린이 사주하고 북한의 김일성이 주도한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신속히 유엔군이 투입하도록 외교적역량을 발휘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으며, 정전을 앞두고는 이 대통령의 혜안과 배짱 덕택에 ‘반공포로 석방’과 “한국과 미국 어느 한쪽이 외부의 침략을 받으면 자동개입한다”는 조건을 넣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한미동맹에 따른 미국의 확고한 방위보장에 힘입어 한국은 최근까지 GNP의 4% 이내라는 비교적 적은 국방비만 쓰면서 경제개발 우선정책으로써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강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신 분”이라며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신명을 바쳐 희생·헌신하신 모든분들이 제대로 예우받을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