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인천 이승환 호(號),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인수 따른 '승자의 저주' 피할까
[뉴스투데이=최현제 기자] 항공 화물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저비용항공사(LCC) 에어인천(대표 이승환)이 대형 항공사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의 새 주인이 됐기 때문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삼킨 셈이다.
이번 인수로 에어인천이 국내 항공화물 시장에서 2위로 도약하는 등 업계 판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보여 업계는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2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사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에어인천을 선정했다.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LCC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쟁쟁한 후보를 물리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에어인천이 인수 후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가 쏟아진 이번 선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에어인천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 연매출 707억원 에어인천, 인수가격으로 약 4700억 원 제시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 매각주관사 UBS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에어인천을 선정하고 후속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BS와 에어인천은 앞으로 2~3주 동안 매각에 따른 추가 실사작업을 펼친다. 이를 위해 매각 대상 자산과 지상조업 계약 등 세부 사항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에어인천은 이번 입찰에서 약 4700억~4800억 원의 인수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매출 707억원으로 항공업계 6위인 에어인천으로서는 재정적인 부담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에어인천이 매출 규모가 다른 경쟁 항공업체에 비해 작지만 화물 전용 항공사의 전문성과 화물 경쟁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번 화물사업 매각과 관련해 △사업 인수에 따른 거래 확실성 △항공화물 사업 경쟁력 유지와 발전 가능성 △역량있는 컨소시엄을 통한 자금동원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에어인천을 낙점했다는 얘기다.
에어인천은 2012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항공화물 전용 항공사로 그동안 중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근거리 아시아 노선 위주로 화물사업을 펼쳤다.
2013년 첫 상업 운항에 나선 이 업체는 보잉 737-400 화물기를 도입해 인천과 아시아 국가 간 화물 운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항공 화물 노선을 계속 넓혀 현재 보잉 737-800SF 화물기 4대를 포함해 총 11대 화물기를 운영 중이다.
■ 에어인천,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인수로 국내 항공화물 시장 2위로 껑충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에어인천은 지난해 3만9323톤의 화물을 운송해 에어프레미아(3만228톤)와 이스타항공(2518톤)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였다.
에어인천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인수하면 단숨에 국내 항공화물 시장 2위 사업자로 급부상한다.
2023년말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인천의 국내·외 화물 물동량을 합치면 약 80만 톤이다. 이는 대한항공(146만4414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화물을 운송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인수로 아시아나항공 화물 자산을 추가로 확보하면 에어인천 화물 운송 역량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승환 에어인천 대표는 “국내 유일의 화물 전용 항공사로 화물 운송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콜드체인(저온 유통) 부문의 의약품과 농수산물, 위험품 등 부가가치 사업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장거리 노선 확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이번 인수로 에어인천은 기존 중국, 동남아 중심 중단거리 노선에서 머물지 않고 사업 지평을 더 넓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이번 인수로 에어인천은 향후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 네트워크를 넓혀 항공 포트폴리오를 보완해 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와 영업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에어인천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인수 따른 '승자의 저주' 우려 목소리
UBS와 에어인천은 오는 7월 중 기업 인수에 따른 계약을 체결한 뒤 EU(유럽연합) 경쟁당국의 심사 승인 절차를 밟은 예정이다.
기업결합심사와 외국 항공당국 인허가 등 관련 절차에 따른 시간이 약 6개월 정도 걸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에어인천은 기업 분할·합병 계약 체결과 주주총회를 거쳐 이르면 내년 1분기에 사업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 절차도 속도를 낼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매각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조건이 충족되면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속도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남은 과제는 미국 당국 승인이다. 대한항공은 이르면 10월에 관련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과 EU에서 요구한 모든 걸 다 해왔다"며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과 일부 장거리 여객 노선 조정 외에 더 이상의 양보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에어인천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을 인수하는 것은 업종 전문화에 따른 결정"이라며 "그러나 자금력에 한계가 있는 에어인천이 거액의 자금을 마련해 인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최근 국제유가 급등으로 항공업계가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 데 이번 인수가 자칫 '승자의 저주'가 될 가능성을 모두 배제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