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기업대출 먹거리 삼았는데...심상치 않은 ‘중기 연체율’

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6.17 08:08 ㅣ 수정 : 2024.06.17 08:08

5대 은행 기업대출 잔액 ‘800조원’ 돌파
가계대출 막히자 기업대출로 활로 찾아
경기둔화에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 시작
중소기업 대출 부문 건전성 악화 뚜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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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본점. [사진=뉴스투데이 DB]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이 대출 자산 증대를 위해 공략하던 기업금융에서 부실 신호가 가시화되고 있다.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경기 둔화로 업황까지 악화되자 기업들의 대출 상황 능력이 떨어진 영향인데, 특히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세가 뚜렷하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02조1847억원으로 80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말(767조3139억원)과 비교해 34조8708억원(4.5%) 증가한 수준이다. 

 

최근 은행권 여신 균형은 기업대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달 말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02조7020억원으로 기업대출이 100조원가량 더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은행들의 기업대출 유치 경쟁이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기업대출 금리는 연 4.88%로 전월(연 4.96%) 대비 0.08%포인트(p)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말(연 5.29%)과 비교하면 0.41%p 내려간 수준이다. 각 은행들이 금리 경쟁으로 ‘기업 고객 모시기’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은행권에선 당분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가계부채가 연일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금융당국이 고삐를 강하게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확대에 제한이 따르면서 은행들은 기업대출로 활로를 찾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지난해 회사채 금리 상승 때부터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크게 늘어났고, 이에 맞춰 영업 전략을 세워 진행해왔다”며 “기업대출은 수익성 뿐 아니라 추가 고객 확보나 법인끼리의 협력 기회 등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대출에서 나타나고 있는 잠재 부실 우려다. 기업의 수요와 은행의 공급에 따라 대출이 많이 풀린 상황에서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환경 변화로 기업의 업황이 위축될 경우 수익성 둔화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54%로 전월 말(0.48%) 대비 0.06%p 상승했다. 1년 전 같은 기간(0.39%)과 비교하면 0.15%p 오른 수치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0.40%)보다도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기업 규모별로 차이가 뚜렷하다. 4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전월(0.58%) 대비 0.20% 오른 0.66%를 기록했는데 대기업 대출 연체율(0.11%)보다 6배 높은 수준이다. 4월 말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은 각각 0.70%, 0.61%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4월 연체율은 코로나 이전과 유사한 수준”이라면서도 “고금리·고물가 등이 지속되면서 경기 민감 업종 개인사업자 등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신규 연체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가계·기업대출 잠재 부실에 대비하기 위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늘려가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아직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이 전입한 충당금 규모만 5조540억원에 달한다. 올해 충당금 규모가 이보다 커질 경우 당기순이익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자산 건전성 악화를 경계하며 대기업 등 우량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만 늘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당장 유동성 공급이 필요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금리 인상과 한도 축소 등으로 대출 문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기업과 가계 모두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고 있고, 금융당국의 모니터링도 돌기 때문에 위험 신호가 일어나기 전에 대응할 수 있다”면서도 “코로나19 지원으로 상환 유예된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이 있는데, 아직 여기에 어느 정도 수준의 부실이 섞여 있을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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