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비자금 아닌 최태원 회장·SK 임직원·주주 노력의 결실
300억 비자금 기여 논란 이어져
회사 발전, 수십 년간 이어진 경영 활동의 열매
소버린과 같은 국제 투기자본 먹잇감 될까 두려워
SK 경영 안정 이끌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 기대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판결이 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항소심 판결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얘기다.
항소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그동안 국내 이혼 소송에서 나왔던 재산분할과 비교하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두 사람 이혼이 최 회장 불륜과 이에 따른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을 법원이 고려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은 '정의'를 추구하고 그 시대 사회나 국가 이념에 부합하는 '합목적성'이 있어야 하며 사회 여러 사람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을 갖춰야 한다는 기본 취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산분할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없지 않다.
2심 법원이 판결한 재산분할액 1조3808억원이 1심에 비해 너무 많이 늘어났다. 1심에서 판결한 재산분할액 665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21배나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놀라운 판결은 1심 법원 판단을 송두리째 무시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재산분할액은 인구 약 40만 명인 세종특별자치시의 올 한 해 예산(1조5202억원)에 버금가는 엄청난 돈이다.
그러다보니 노 관장에 대한 보상금으로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그동안 노 관장의 노고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Gary Becker) 고(故)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경제학 분야에서 이른바 '가정생산(home production)' 개념을 도입한 인물이다.
이는 가계 부문이 비(非)시장 부문에서 생산활동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얘기다.
기존 경제학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가사노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베커는 가정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노 관장이 그동안 묵묵히 가정생산의 핵심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노 관장에 대한 보상이 세종시 한 해 예산과 비슷하다는 판결은 이해하기 어렵다.
2심 판결에서 불거진 노소영 관장 부친 故 노태우 전(前)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과연 정당한 방법으로 마련한 것인 지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자금이 당시 기업들로부터 받은 뇌물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점도 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만약 이러한 지적이 사실이라면 기업으로부터 받은 부정한 돈을 노 관장이 고스란히 물려받는 게 과연 정의로운 결정인 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비자금을 지금이라도 각 기업에 돌려주는 게 합리적인 수순이 아닐까 싶다.
이와 함께 비자금이 SK그룹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주장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SK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 회장이 고도의 전문적 판단과 경영활동을 펼쳤고 이를 토대로 임직원이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에서 피땀 흘린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SK그룹 계열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본 주주들의 기여도 간과해선 안된다.
이밖에 2심 판결은 최태원 회장 일가 기여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 회장 형제 등 직계 가족이 그동안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일부는 상속 지분을 포기해 SK가 지금의 대기업으로 우뚝섰다.
그러나 2심 판결은 노 관장에 대한 보상에 무게 중심을 두고 최 회장 직계 가족의 헌신과 노력은 등한시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 회장 측이 항소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상고해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 판결은 국내 재계 순위 2위 기업 SK그룹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 국면이 될 것이다.
만약 대법원이 항소심과 엇비슷한 결론을 내린다면 최 회장 지배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타격을 입으면 먹잇감을 찾는 헤지펀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룹 경영권을 뒤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이 2003년 SK 지분을 14.99% 확보한 뒤 최 회장 퇴진을 요구한 이른바 '소버린 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무늬만 그럴듯하게 자산운용사라고 하지만 소버린처럼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기업 경영권이 흔들릴 때 이를 표적 삼아 거액의 단기 차익을 챙기고 떠나기 십상이다.
대머리 독수리(벌처:vulture)처럼 기업 약점을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어 이익을 내는 벌처펀드의 교활함과 잔혹함에 SK가 또다시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노 관장이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한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SK그룹 경영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SK가 경영권 위기 없이 현재 논란을 딛고 세계 무대에서 다시 맹활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부부간 갈등이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한국경제 호(號)를 이끄는 대기업을 요동치게 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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