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新풍속도'...임원은 주 6일제, 노조 창사 이래 첫 쟁의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가 이달 초 공개한 1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액 71조원과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이다.
이를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액은 11.37%, 영업이익은 931% 늘어난 성적표다.
반도체 사업이 길고 길었던 불황 터널을 지나 흑자 전환에 성공해 마침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실적을 놓고 ‘깜짝실적’, ‘훈풍’, ‘반도체의 봄’ 등 긍정적 평가가 쏟아진다.
그러나 삼성전자 내부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은 반도체 불황으로 이례적인 실적 악화를 보였던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개선된 모습이지만 크게 나아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결 기준 매출 77조7800억원과 영업이익 14조12000억원을 기록했던 2022년 1분기와 비교하면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
매출 65조3900억원과 영업이익 9조3800억원을 낸 2021년 1분기와 비교하면 지난해 1분기 매출액이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3조원 가량 축소됐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이스라엘-이란 전쟁 가능성 등 중동발(發)악재가 이어지면서 국내외 성장·물가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재계는 올해 기업 경영환경이 지난해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전체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상경영’에 돌입하기로 했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미 지원과 개발부서를 중심으로 시행해온 임원의 ‘주 6일 근무’가 전체 임원으로 확대된다.
이보다 앞서 올해 1월에는 DS(반도체) 사업부 임원이 경영 실적 악화에 따른 특단의 대책 마련 취지로 임원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15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이다.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 위기에 그룹 모든 계열사들도 힘을 보탠다.
삼성전기·삼성SDI·삼성SDS·삼성디스플레이 등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전체 임원이 주 6일 근무를 시작할 전망이다.
삼성물산·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등은 이미 올해 초부터 임원 주 6일 근무를 시행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 통화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실적이 개선되긴 했지만 엄중한 경영환경에 놓인 삼성전자 임원 전체가 자발적으로 주 6일 근무에 참여하기로 했고 다른 계열사들도 동참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위기 상황에서 삼성전자 임원과 직원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임원 주 6일 근무 확대 적용이 알려진 지난 17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 부품연구동(DSR) 앞에는 창사 이래 첫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이 진행됐다.
삼성전자 사측과 삼성전자 노조 중 최대 규모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올해 1월부터 임금교섭을 진행했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지난달 18일 교섭이 최종 결렬됐다.
사측이 노조에게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임금인상률은 5.1%,이지만 노조는 6.5%를 요구했다.
사측은 삼성전자노조와의 교섭과는 별개로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이 참여하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별도 임금 조정 협의를 실시해 올해 평균 임금인상률을 평균 5.1%로 확정했다.
삼성전자 임금인상률인 5.1%가 적다고 볼 수는 없다.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 모두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을 5.1%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삼성전자 계열사가 삼성전자 임금 수준에 버금가는 인상 폭을 정한 점도 있지만 이들 계열사는 노사간 마찰 없이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는 노사간 갈등이 이어지는 삼성전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물론 노조 속사정도 분명히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성과급 봉투가 예년에 비해 매우 얇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업황 악화로 지난해 DS(디바이스솔루션) 사업부의 초과이익성과급(OPI·옛 PS) 지급률은 연봉의 0%로 정했다.
DS 부문의 목표달성장려금(TAI·옛PI) 지급률도 지난해 하반기 기준 평균 월 기본급의 12.5%로 상반기 25%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실적이 곤두박질 친 상황에서도 올해 임금인상률을 지난해 보다 4.1% 높게 정했는데 이는 예상 소비자 물가 인상률 2.6%의 약 2배 수준이라는 게 사측 입장이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실적이 아무리 좋은 기업이지만 건강한 노사관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회사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LG경영연구원이 발간한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의 5가지 특징‘ 자료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업체 제너럴 모터스(GM)는 2006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 바로 전 단계 등급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주 원인으로 ‘노사관계’를 꼽았다.
GM이 미국 내 최강성 노조로 알려진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UAW)’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으며 노사관계 건전성을 해쳐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LG경영연구원은 “건강한 노사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기업은 결국 조직의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아 기업이 시장 환경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기업은 서서히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노사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파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다만 노조는 2022년과 2023년에도 임금교섭 결렬에 따른 쟁의권을 확보했지만 실제 파업을 하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노조가 17일 화성사업장 단체행동에 이어 내달 24일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에서 같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업에 신중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노조는 파업과 관련해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서 삼성전자 영향력이 매우 커 파업이 일어나면 타격은 사측은 물론 노측과 국민까지 입을 수 있다”면서도 “사측에서 전향적 변화가 없으면 결국 파업으로 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삼성전자가 만일 파업에 들어가면 사측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된다.
실제 2016년 임금협상에서 노사간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파업으로 이어진 현대자동차는 그 해 3조100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손실을 입었다.
당시 현대차는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돼 차량 약 14만2000대가 생산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차는 이듬해에도 같은 이유로 파업이 발생해 차량 약 8만9000대를 생산하지 못해 1조8900억원 규모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 258조94억원과 영업이익 6조5700억원으로 2022년 대비 매출 14.58%, 영업이익 84.92% 급감해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맞은 상황에서 파업은 삼성전자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재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현재 단체행동 중인 노조 구성원 상당수가 반도체 부문 임직원이기 때문에 실제 파업이 이뤄지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향후 실적에도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며 “이에 따라 노조 입장에서도 파업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여서 조만간 파업이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반도체 시장이 회복세로 턴어라운드(개선)하는 중대 시점에 노사갈등이 지속되면 또다시 실적과 경쟁력 악화가 반복될 것”이라며 “노사갈등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고 경쟁력과 실적 회복에 집중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