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ELS 판매 제도’ 개선 본격화...전면 금지 땐 반발 거셀 듯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원금 손실 사태 중심에 있는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앞으로 은행들의 파생상품 판매 경로가 좁아지거나 아예 막힐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사실상 수익성과 직결된 부분이라 시장 반발에 부딪힐 것이란 관측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홍콩H지수 ELS 불완전 판매 등과 관련해 “소비자 보호와 영업 관행, 내부통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됐음에도 불완전 판매와 같은 문제가 나오는데 조사 후 원인에 맞는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를 보면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 18조8000억원 중 은행권은 15조4000억원으로 81.9%를 차지한다. 투자자별로 보면 개인이 17조3000억원(94.5%)에 달한다. 은행 판매채널은 오프라인이 90.6%를 차지했다.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 중 올 1~2월 은행권에서 만기 도래한 건 1조9000억원인데 1조원이 손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상품이 추종하는 홍콩H지수가 2월 말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4조원 넘는 추가 손실이 날 것이라는 게 금융감독원의 예측이다.
문제는 은행권의 판매 정책 및 소비자 보호 관리 실태에 전반적인 부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일례로 한 은행 판매 직원은 고객의 투자 성향이 주가연계신탁(ELT) 가입 불가인 위험중립형으로 나왔음에도 작은 목소리로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고 유도했다.
은행들이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실적 압박을 키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른 은행은 2021년 영업 목표를 수립하면서 신탁수수료 목표를 전년 예상 실적 대비 57% 상향 설정하며 전사적으로 판매를 독려했다. 지수 변동성이 확대되던 시기에도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등 공격적 영업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원금 보호 성격이 강한 은행에서 고위험 투자 상품을 파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은행 창구 직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이 무분별하게 팔려나갔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 사례가 양산됐다는 비판도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이후에도 은행의 고난도 사모펀드·신탁 판매 금지를 예외적으로 허용해줬는데 또 대규모 원금 손실과 불완전 판매가 재현된 만큼, 판매 상품 범위 재검토와 제조·판매·규율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은행 고위험 상품 판매 금지 등은 제도 개선의 여러 가지 옵션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세밀한 원인 분석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제도 측면에서 기인하는 건지, 영업 관행의 영향이 큰 것인지 진단해서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은행권은 앞으로 진행될 배상 절차와 제재 논의 등을 의식해 잔뜩 위축돼 있는 상태다. 다만 금융당국이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개선에 착수했고, 전면 판매 금지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ELS 같은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건 금융당국의 지나친 영업 규제로 작용할 수 있고, 수익을 원하는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 역시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은행권에서 내세우는 논리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를 손질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영업 행위 자체를 못 하게 막는 건 너무 단편적인 접근 방식”이라며 “은행도 이제 종합 자산관리를 지향하고 있는데, ELS 사태가 이런 흐름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객 신뢰 하락과 영업 규제 강화 등으로 신탁 시장이 위축되면 은행권 수수료 이익 감소는 불가피하다. 최근 주요 은행들은 대출에서 발생하는 이자 부문 의존도를 수수료 등 비(非)이자 부문으로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비이자 이익은 외화·신탁·신용카드·뱅킹·방카슈랑스·펀드 등을 통해 얻는 이익인데, 이중 신탁 수수료 비중은 평균 20~30% 수준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2021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ELS 판매로 얻은 수수료 이익은 약 6815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 입장에선 ELS가 매력적 수익원인 동시에 비이자 이익 성장을 견인할 핵심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홍콩H지수 ELS 관련 배상이 지급될 경우 과거 사모펀드 사태와 유사하게 영업외 비용 등을 통해 재무제표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은행의 전반적인 투자 상품 판매 위축, 자산관리 관련 손익 감소 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