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4.02.15 05:00 ㅣ 수정 : 2024.02.15 05:00
EU, 대한항공·아시아나 조건부 합병 승인 아시아나 화물사업 분리 매각·티웨이에 유럽 4개 노선 넘기면 '최종 승인' 경쟁당국 14개국 가운데 미국만 남아...미국 승인하면 '메가 캐리어' 탄생 아시아나 화물사업 입찰에 제주항공·이스타항공 등 LCC 인수戰 나설 듯 조원태 회장, 양사 합병 성공하면 경영권 분쟁 가능성 잠재울 듯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그동안 기업결합 승인을 미루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애를 태운 EU(유럽연합) 경쟁당국이 마침내 승인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EU는 두 항공사가 통합하면 경쟁제한이 우려되는 일부 사업 시정을 전제로 하는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그동안 EU가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를 연기해온 점을 감안하면 대한항공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 3년여간 이어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가 EU 경쟁당국 문턱을 넘어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쟁당국은 모두 14개국 가운데 미국만 남았다.
미국이 승인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른 '메가 캐리어(Mega Carrier·초대형 항공사)' 탄생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대한항공은 EU가 제시한 합병 승인 조건을 마무리 지어야 하고 남아있는 경쟁당국 미국의 입장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필수 신고국가인 EU 경쟁당국은 시정조치 이행을 경쟁당국으로부터 확인받은 후 거래 종결이 이뤄지는 형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대한항공은 2021년 1월 EU 경쟁당국과 사전협의 절차를 시작하고 2023년 1월 정식 신고서를 제출했다. EU는 그해 2월 양사 합병과 관련해 2단계 심사(Phase 2)를 발표했고 대한항공은 이를 토대로 자료조사 협조와 시정조치를 협의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 3일이면 EU 최종 승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EU가 ‘경쟁 제한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예비조사 결과 심사보고서(Statement of Objections·SO, 중간심사보고서)를 대한항공측에 발송해 예상이 빗나갔다.
대한항공은 EU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했으며 EU는 최근 시정조치안 이행을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시정조치는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사업 부문 분리 매각 △여객 4개 중복 노선에 대한 신규 항공사 노선 진입 지원 등으로 나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사업 부문 분리매각을 위한 입찰과 매수자 선정 등 매각 조치를 우선 이행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선정된 매수인에 대한 EU 경쟁당국 승인 절차를 거쳐 거래를 끝낸 후 실제 분리매각을 추진한다.
여객 4개 중복 노선은 신규 진입항공사(Remedy Taker)로 지정된 티웨이항공이 올해 하반기부터 '인천~파리', '인천~로마', '인천~바르셀로나', '인천~프랑크푸르트'에 차례대로 진입할 수 있도록 대한항공이 지원할 예정이다.
EU 승인으로 대한항공은 합병까지 마지막 관문인 미국만을 남겨두고 있다. 미국도 EU만큼 난항을 겪고 있는 경쟁당국이다.
미국 법무부(DOJ)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을 무기한 미뤄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3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 심사 절차를 ‘심화’로 격상한 후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미국은 경쟁 제한성 우려가 높다고 판단해 독과점을 해소할 구체적 방안을 대한항공 측에 요구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그해 8월 자료를 제출했지만 미국은 11월 예정이던 심사 최종 승인을 연기했다.
미국 승인 여부가 안갯속으로 빠져들자 항간에는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미국과 한국 간 여객·화물 운송 경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EU 경쟁당국 승인을 기점으로 미국 경쟁당국과의 협의에 속도를 내 빠른 시일 내에 심사 절차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화물 부문은 이미 승인한 EU처럼 아시아나 화물기 사업 분리 매각으로 미국 경쟁당국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객 부문은 아시아나가 운항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뉴욕, 하와이 노선에 다른 국내 항공사가 이미 진입했고 잔여 2개 노선도 추가 진입할 예정"이라며 "이에 따른 경쟁환경이 조성돼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승인 만큼 중요한 당면 과제는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매각을 무리 없이 마무리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입찰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에어인천 등 LCC(저비용항공사)가 인수전(戰)에 참여할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2023년 3분기 기준 12조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어 화물사업 인수사 선정에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자금조달 능력’을 꼽고 있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 자금력을 동원하거나 전략적투자자(SI)와 함께 컨소시엄을 꾸리는 전략이 예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각 모기업을 두고 있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이 유력하다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EU로부터 최종 승인을 얻으려면 매수자 선정은 물론 매수자에 대한 EU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EU의 완벽한 승인이 마무리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진다.
업계 관계자는 “EU 승인으로 화물사업 입찰도 조만간 개시될 전망”이라며 “입찰 후보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해도 인수 과정에서 재무 부담과 인수 후 경쟁력과 수익성 등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고심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양사 합병과 관련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도 관심이 모아진다.
조원태 회장은 2020년 누나 조현아 전(前) 대한항공 부사장 중심의 3자연합과 대한항공을 계열사로 둔 한진칼 지분 경쟁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산업은행을 등에 엎어 승기를 잡았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이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경영권 분쟁에 쐐기를 박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