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부회장 ‘수소사업’으로 1800조 블루오션 선점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그룹)이 차세대 먹거리로 수소·자율운항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소·자율운항 사업 육성은 오너가(家) 3세인 정기선 부회장(42·사진)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사장에 오르고 2023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 부회장은 △궁극의 친환경 사업인 수소 △마진 높은 소프트웨어 사업인 자율운항에서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방침이다. 지난 수십 여 년 간 조선·정유·건설기계 등 기간산업 위주로 성장해온 HD현대는 친환경과 AI(인공지능) 등이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시대 변화에 발맞춰 정 부회장이 제시하는 신(新)사업으로 그룹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정 부회장이 펼치는 신사업 전략 방향과 의미를 짚어 보기 위해 2회 시리즈를 기획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1800조원 블루오션(미개척시장)을 잡아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친환경 업종인 ‘수소사업’에 가속페달을 밟는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선다.
수소를 활용한 사업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0)에 가까워 완전한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된다.
HD현대가 추진하는 수소사업에는 △계열사 HD한국조선해양의 수소 생산·수소운반선 건조·수소 활용 사업 △계열사 HD현대오일뱅크의 수소 생산 및 인프라 구축 사업 등이 포함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서울대학교, 부산대학교 등과 손잡고 해수를 활용한 수소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기존 선박 건조역량에 수소 생산 능력을 접목해 액화수소운반선 건조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와 함께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엔진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정유업체 현대오일뱅크는 전국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해 HD현대가 추진하는 수소 사업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HD현대 핵심 계열사 두 곳이 이처럼 수소사업에 보폭을 넓히는 데에는 향후 성장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세계 수소 시장은 2030년 6420억달러(약858조원)에서 2050년 1조4000억달러(약1871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수소 시장은 절대 강자가 없는 '무주공산'이다.
이에 따라 HD현대가 수소산업을 계속 공략한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친환경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 청사진을 뒷받침하듯 정기선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전시회 CES에 참석해 ”해상에서 육상까지 전 지구를 아우르는 수소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며 “미래를 위한 탈(脫)탄소 글로벌 에너지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 수소사업, 2021년부터 그룹 전사적 차원에서 가속화
HD현대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퓨처빌더(미래 개척자)'가 되기 위해 지난 2021년 ‘수소 드림 2030 로드맵’을 공개했다.
수소 로드맵에는 △HD한국조선해양이 수전해기술을 활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수소운반선 건조와 수소를 연료로 활용하는 사업 계획 △HD현대오일뱅크가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오는 2030년까지 수소 충전소 180여 곳을 구축하는 사업 계획이 담겼다.
그린수소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되는 수소다. 그린수소는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수소 에너지 가운데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으로 평가 받는다.
블루수소는 수소 생산 과정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하지 않고 포집 및 저장 기술인 CCS 기술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따로 저장한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그린수소는 2020년 18억5200만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에서 연평균 6.7% 성장해 2025년에 25억 5800만달러(약 3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블루수소는 2020년 602억7200만달러(약 80조원)에서 연평균 성장률 11.2% 증가해 2025년에는 1027억600만달러(약 137조원)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HD현대 관계자는 "그린수소는 완전한 친환경 설비를 갖춘 상태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점이 최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비해 블루수소는 기존에 보유한 공장설비를 개량한 후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수소를 생산한다"며 "이에 따라 이미 큰 규모의 원유 정제시설과 철강시설을 보유한 기업은 블루수소 시스템을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얼마전 CES 2024에 참석한 정 부회장도 수소산업 혁신에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정 부회장은 CES 2024에서 사촌 관계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나 수소산업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의선 회장은 HD현대 부스를 방문해 수소를 연료로 활용하는 추진선박 개발 현황에 대해 질문했고 이에 정 HD현대 부회장은 "수소 추진선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이며 오는 2030년까지 추진선 개발을 끝내는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 해수 수전해기술 활용에 박차
HD현대 자회사 HD한국조선해양과 손자회사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월 해수 수전해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돌입해 수소사업에 뛰어들었다. 수전해기술은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글로벌 에너지 리서치 기업 프레지덴스 리서치에 따르면 수전해기술을 활용한 세계 수전해 장치 시장 규모는 2021년 56억달러(약 7조5000억원)에서 2030년 691억달러(약 92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은 수전해기술력을 쌓아가며 새로운 먹거리 사업에 뛰어들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HD현대오일뱅크, 한국재료연구원, 서울대학교, 부산대학교 등이 수전해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손잡았으며 정기적으로 만나 각자 연구 현황을 공유하고 협력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HD한국조선해양은 세계 최초로 2만㎥급 대형 액화수소운반선 기술 개발에 나선다.
액화수소운반선은 화물창을 영하 253도 초저온 상태로 유지하고 이를 통해 액화된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이송하는 선박이다.
업계 관계자는 "액화수소운반선은 전 세계에서 10척 이내로 건조가 진행되고 있으며 선박 상용화 역시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며 "액화수소운반선은 완전한 블루오션 시장이라는 점에서 HD한국조선해양도 관련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술 확보를 위해 HD한국조선해양은 강원도와 손을 잡았다. 강원도는 국내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과 강원도는 △액화수소 실증사업 △액화수소운반선 관련 기술 개발·상용화 △액화수소·암모니아 터미널 구축 △수소어선 기술개발 등 관련 사업을 차례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글로벌 에너지시장 분석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수소를 연료로 하는 전 세계 엔진 시장은 2022년 26억달러(약 3조4700억원)이며 2028년에 105억 달러(약 14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해양산업 전반에 탄소중립(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지는 모습”이라며 “수소, 메탄올, 암모니아 등 청정연료를 활용한 친환경 기술로 세계시장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HD현대오일뱅크, 수소 인프라 구축 추진
정유업체 HD현대오일뱅크도 수소시장 개막에 발맞춰 인프라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이미 폭넓은 원유 정제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HD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 시스템을 운영해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수소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HD현대오일뱅크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연간 약 20만t 규모의 수소 생산 공장을 구축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국내 최대 액체 탄산 제조업체 신비오케미컬과 손잡았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2022년 충남 서산시 대죽리 일반산업단지에 ‘액체 탄산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액체 탄산은 반도체 세정, 철판 용접 등에 사용되는 물질이다. 대죽리 공장은 하루 600t의 액체 탄산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충남 서산시 대산 공장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인근 액체 탄산 생산공장에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비오케미컬은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공장 가동 원료로 사용해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배출되지 않는 블루수소 생산 시스템이 조성됐다"고 덧붙였다.
HD현대오일뱅크는 수소 생산 설비를 토대로 수소충전소 네트워크를 늘린다. 이에 따라 수소충전소를 오는 2030년까지 180여곳으로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