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노젓자”···은행권, 회사채 냉각에 대기업 대출 ‘군침’
올 상반기 4대 은행 대기업 대출 17조원 늘어
기업들 채권금리 뛰자 회사채 대신 대출 받아
가계대출 성장세 둔화···기업금융 확대 본격화
금리 인하로 경쟁···대기업 대출 0.08%p 하락
건전·우량 차주 확보 효과···마진 저하 우려도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만기가 짧고 금리가 낮은 은행 대출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기업대출로 외형 확대를 꾀하던 은행권에선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낮은 대기업 대출은 매력적인 먹거리로 평가받는다.
00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올 6월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27조9027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7조3564억원(15.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대출 증가분(22조6000억원)의 76.8%를 차지한다.
은행권 대기업 대출 성장세는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 기업은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최근 채권금리가 뛰면서 은행 대출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긴축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도 채권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9조원대로 순발행됐던 일반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2분기 3조4000억원, 7~8월 1조7000억원 각각 순상환됐다. 순상환은 회사채 발행 규모보다 상환된 규모가 많은 상태를 뜻한다.
지난해 하반기 채권시장을 얼어붙게 했던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 등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유인은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다. 회사채는 만기가 길고 고정금리로 책정되는 만큼 고점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 기회를 노린 은행들은 보다 우호적인 대출 조건을 내세우며 ‘기업 모시기’에 나섰다.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대기업 대출금리는 지난 7월 연 5.17%로 전월(연 5.25%) 대비 0.08%포인트(p) 하락했다. 기업대출 전체로 봐도 같은 기간 금리가 연 5.32%에서 연 5.25%로 하락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기업은 여전히 강한 대출 수요를 나타내고 있다”며 “현재 금리 환경에서 자금을 단기로 조달하려는 대기업 차주의 대출 수요는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은행권은 공격적인 기업대출 확대로 전체 여신 성장세를 이어가겠단 전략이다. 그동안 여신 증가세를 견인하던 가계대출의 경우 성장률 둔화와 각종 규제 등으로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전망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은행 입장에서 대기업 대출 확대는 건전한 우량 차주 확보로 이어진다. 최근 강신국 우리은행 기업투자금융부문장은 기업금융 확대 전략을 발표하면서 “아직까지 대기업 부실은 제로(0)”라고 말한 바 있다. 신용도와 상환력이 받쳐주는 대기업 대출은 연체 등의 리스크 가능성도 낮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 중 대기업 대출만 전년동월 대비 0.03%p 하락한 0.11%를 기록했다. 중소기업 대출(0.19%)과 중소법인(0.15%p), 개인사업자 대출(0.25%p) 등은 일제히 상승했다.
다만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대출은 한정된 파이를 뺏어야 성장할 수 있는 만큼 자칫 은행들의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금리 경쟁력을 갖추는 건데, 사실상 마진을 낮춰 잡아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요즘은 신용대출 같은 게 잘 안 나가다보니 올해 누적으로 보면 가계대출은 역성장하고 있다”며 “리테일(소매금융)도 은행업의 중요한 분야지만 전체적인 여신 잔액 성장을 위해선 기업대출 쪽도 더 커줘야 한다, 대기업 대출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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