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완 기자 입력 : 2023.09.12 05:00 ㅣ 수정 : 2023.09.12 06:40
가성비 전기차 시장에서 LFP 배터리 중요성 갈수록 커져 전기차 시장 커지면서 LFP배터리 활용한 가성비 모델 중요성 부각 ESS시장, 中 배터리업계 장악해 국내 업체 진출 쉽지 않아 LG에너지솔루션,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빠르게 LFP 양산설비 구축
[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348조원대 알토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 잡아라'
한국 배터리업계가 LFP 배터리 양산 체제 미비로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에 밀리고 있다. 이에 따라 거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LFP 배터리 생산 설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ESS는 일반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발전설비와 연계돼 설치된다. 이에 따라 에너지 밀도가 높고 가격이 비싼 니켈·코발트·망간(NCM) 계열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가 선호되는 추세다. 친환경 발전설비 인근에는 풍부한 공간이 제공되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가 아닌 가격이 저렴한 장점이 더 부각된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GII에 따르면 2022년 기준 ESS 시장에서 LFP 배터리 점유율은 약 87%에 이른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보다 ESS 시장 규모가 더 커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블룸버그NEF는 2021년 110억달러(약 14조5000억원)에 불과했던 ESS 시장이 오는 2030년 2620억달러(약 347조5000억원)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또다른 글로벌 리서치업체 리서치앤마켓이 예상한 2030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 1660억달러(약 220조2000억원)를 크게 앞지르는 숫자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ESS 사업에서 아직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그동안 NCM 계열 배터리 생산에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NCM 배터리는 LFP 배터리보다 제조 원가와 판매가격이 비싸 마진을 확보하기에 쉬운 편이다. 이뿐 아니라 중국 기업이 대부분 생산하는 LFP 배터리와 비교해 고급인 NCM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
그렇다고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더 이상 LFP 배터리 생산을 미루거나 외면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ESS 시장이 확대되면서 제조 원가가 낮은 LFP 배터리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자동차 보급이 가속화되면서 제조 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LFP배터리를 탑재한 '가성비 전기차'가 대거 출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ESS 시장을 공략하고 가성비 전기차를 제조하는 기업을 고객사로 유치하기 위해 LFP 배터리 양산 체제 구축에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저가 모델이 대중화되려면 LFP배터리가 다량 확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LG에너지솔루션, LFP 생산체제 구축 추진해 ESS 시장 공략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LFP배터리 공장을 구축하는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州)에 3조원을 투자해 연산 16.3GWh 규모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ESS용 LFP 배터리 생산 공장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광활한 국토를 지녀 전력설비망이 촘촘하지 못한 점이 단점이이다. 이에 따라 친환경 발전설비를 구축하고 ESS도 동시에 설치하는 것이 최근 업계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LG에너지솔루션의 ESS용 LFP배터리 양산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이를 기반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ESS 사업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4조2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연산 27GWh 규모 원통형 배터리 생산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이 공사는 2025년 준공 및 가동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원통형 배터리는 NCM 계열 또는 LFP 계열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새로 추진 중인 생산설비가 LFP 배터리 양산시설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1위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NCM 배터리, 중국 CATL의 원통형 LFP 배터리, 일본 파나소닉의 원통형 NCM 배터리 등을 공급받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 설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NCM 배터리 뿐만 아니라 LFP 배터리 수요도 해마다 늘어나는 모습이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이 원통형 LFP 배터리를 생산하면 테슬라 공급물량이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SK온, 삼성SDI 등은 대규모 LFP 배터리 생산 설비 구축 계획을 아직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SK온은 이미 상당 수준의 LFP 배터리 기술 역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고객사를 확보하면 LFP 생산 및 판매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지난 5월 233억원 규모 정부 주도 LFP배터리 프로젝트를 수주했으며 이를 통해 △LFP 양극재 국산화 △세계 최고 밀도 LFP배터리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 배터리 3사, LFP 양산 체제 미비로 ESS 시장서 中 기업에 밀려
LFP배터리 양산체제 미비는 글로벌 ESS 시장점유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배터리·반도체 리서치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글로벌 ESS 시장에서 각각 8GWh, 8GWh 규모를 공급해 글로벌 2,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두 회사는 2022년 중국 배터리 기업 CATL·BYD에 밀려 세계 3, 4위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ESS용 배터리 공급량이 2021년에 비해 거의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ESS는 일반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생산설비 인근에 설치된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NCM 배터리를 굳이 고집하지 않고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저렴한 LFP배터리가 더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LFP 배터리 양산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보유하고 있는 CATL, BYD가 글로벌 ESS 강자로 등장하고 있다.
■ LFP 배터리 영향력, 전기차 시장에서 갈수록 켜져 국내 배터리3사 더 관심 가져야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기차 시장에서 주목받던 LFP 배터리 탑재 전기차는 테슬라의 모델3와 모델Y에 불과했다. 테슬라는 지난 수년 동안 싼 가격의 LFP배터리를 대거 활용해 전기차 시장을 쥐락펴락해왔다.
반면 현대차,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NCM 배터리를 적극 활용해 고급형 전기차 생산을 이어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NCM 배터리가 리사이클링(제품 재활용) 측면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가성비 전기차가 출시되려면 결국 LFP 배터리가 적극 사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진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에서 LFP배터리를 활용한 전기차는 △2020년 6%에 이어 △2021년 17% △2022년 27% 등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봤을 때 올해는 30%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즉 전세계 대다수 전기차 업체들이 LFP배터리를 적극 활용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어 LPF 배터리 양산이 한국 배터리 업계 핵심과제로 등장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기아가 중국 CATL의 LFP배터리를 활용한 전기 '더 기아 레이 EV'를 이달 출시했다. 이달 중에 출시될 KG모빌리티 전기차 '토레스 EVX'에는 중국 BYD의 LFP 배터리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내 배터리 3사는 아직까지 LFP 배터리 양산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이는 국내 완성차 기업이 중국산 LFP배터리를 사용해 전기차를 제작하게 만드는 것을 고착화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업계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 배터리 업계가 LFP 양산을 서두르지 않으면 가성비 전기차에서 사용되는 LFP배터리 시장 상당 부문을 중국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설상가상으로 CATL은 올해 8월 최신형 LFP 배터리 '센싱(Shenxing)'을 공개했다. 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10분 간 충전해 400km를 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진투자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NCM 배터리를 장착한 현대차 아이오닉5는 10분 충전에 200km 이동할 수 있고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은 10분 충전에 183km 갈 수 있다. 이에 따라 LFP 배터리가 NCM 배터리 성능을 따라잡거나 혹은 능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힘입어 CATL은 올해 말에 최신 LFP 배터리 '센싱 배터리' 양산 설비 구축을 추진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 추세를 볼 때 국내 배터리 3사는 NCM 배터리 역량을 더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LFP 배터리 양산 설비 구축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