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조직 정의 실현돼야 지속 가능성 커"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2년 전 쯤 모 기업에서 평직원이 '왜 성과급을 이런 식으로 산정하느냐'면서 산정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한 일이 이슈가 됐었죠. 인사 평가와 관련해 조직 정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로 볼 수 있어요."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6일 한국생산성본부(KPC)가 개최한 '2023 CEO북클럽'에서 강연자로 나서 '공정과 정의: 미래 조직을 위한 비전'을 주제로 강의하며 이같이 말했다.
권력, 정의, 불평등 문제를 중심으로 조직 이론 및 조직행동론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지난해 첫 단독저서 '공정 이후의 세계'를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이번 강의의 주제를 '조직 정의'로 설명했다. 김 교수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조직 공정성'과 '조직 정의'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정의'는 의사결정 및 소통 과정에서 합당한 원칙과 기준을 준수하는 것이고, '공정'은 정의로운 의사 결정과 소통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되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조직정의의 네 가지 핵심 요소로 △분배 정의 △절차 정의 △관계 정의 △정보 정의를 소개했다.
■ 모두 동의했더라도 문제 생기면 수정할 수 있어야 '정의'
김 교수는 분배 정의에 대해 "결과의 정의로움"이라며 "조직의 자원이나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배분하는데 있어 얼마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원칙을 지키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분배 정의에는 비물질적인 영역도 포함된다"면서 "회의에서 발언권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도 포함되고, 물질적인 보상과 상징적인 보상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또 김 교수는 절차 정의에 대해 "의사결정의 과정이 공정한 것"이라며 "조직 신뢰도나 헌신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개념은 분배 정의보다 절차 정의라는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남편들도 유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쓰기 굉장히 어렵다는 등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런 것이 절차 정의의 문제"라며 "절차가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절차 정의가 위반된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김 교수는 절차 정의의 6대 원리로 △대표성 △일관성 △편견 배제성 △정확성 △윤리성 △수정 가능성을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수정 가능성을 꼽았다. 공정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절차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구성원이 개입해 수정할 수 있어야 절차 정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 팬데믹 이후 '정보 정의' 이루기 어려워져
김 교수는 사회에서 자원 분배나 의사 결정 등 한정적 맥락에서만 정의와 공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적으로 존중을 받는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관계 정의'다.
그는 관계 정의의 영역을 알 수 있는 예로 '동전 갑질'을 이야기했다. 동전 갑질이란 한 근로자가 임금을 동전으로 받은 사례로, 임금을 정확하게 계산해 분배 정의가 실현됐고 임금 산정 과정이 정확하고 공정해 절차 정의가 실현됐음에도 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해 불공정한 사례가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콜센터 직원 등 감정노동자들이 번아웃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 관계 정의와 절차 정의가 성립됐다고 생각하면 번아웃의 수준이 일정정도 상쇄된다고 했다. 그는 "특히 관계 정의의 효과가 더 크다"면서 "이를 염두에 두고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보 정의'에 대해서 "의사소통 과정에서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팬데믹 이전에는 사무실이나 회사 복도 등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공유하던 것들이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원격근무 등으로 잘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면서 "이럴 경우 직급이 낮거나 혹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정보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메신저나 이메일, 화상회의 등에서는 공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고, 비공식적인 정보가 공유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보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내용의 공유 △의사결정 시 그 근거 내용 제시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조직마다 필요가 다를 수 있어 정보 공유는 모두가 다 알 수 있도록 프로토콜을 확립해 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보 공유가 잘 될수록 협업의 수준이나 만족도가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직 문화는 CEO나 설립자가 만든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조직 정의가 실현된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회복력이 더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