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50)] 이현부 장군은 “부락을 피해라”고 지시, 참모들은 군단장을 껴안아...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05.25 11:10 ㅣ 수정 : 2022.05.25 11:10
발렌티누스는 사랑을 위해 순교, 故 이현부 장군과 한황진 중령 등은 국가를 위해 순국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무적태풍부대에서 새로운 임무를 시작한 지 100일이 넘어 4개월째 되는 1992년 2월이 되었다. 2월14일은 발렌타인-데이(St. Valen-tine's Day)이고 이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군(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여성에 대한 사랑이 전투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에 청년 군인들에게 결혼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결혼시켜 주던 사제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발렌티누스였다.
그는 곧 반역죄인으로 지목돼 서기 269년 2월14일 순교했고, 이를 기념해 연인에게 사랑을 전하는 풍습으로 전해지게 됐다.
당시 발렌티누스는 군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역자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그는 수많은 젊은이의 사랑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병영에도 매년 이맘때면 예쁜 초콜릿과 사탕, 애인 사진 등이 곳곳에 전해져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서도 장병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 헬기추락 순간 이현부 장군은 “부락을 피해라”고 지시, 참모들은 군단장을 껴안아...
발렌타인-데이(St. Valen-tine's Day)는 꼭 30년 전인 1992년 2월14일 오전 선산에서 발생한 헬기추락 사고로 평소 존경하던 7군단장 이현부 중장과 사랑하는 동기생 한황진 중령을 떠나보낸 날이기도 하다.
당시에 7군단장 이현부 중장은 참모들과 함께 UH-1H헬기를 타고 경기도 장호원을 출발해서 작전통제 부대인 포항의 해병 부대 순시에 나섰다.
헬기안에서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은 군단장에게 헬기 아래 내려다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주변의 지형을 설명했고 탑승자 모두는 이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로 이때즈음 탑승한 헬기가 경북 선산군 삼정산 7부 능선 상공을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에 헬기가 요동쳤다. 이어 헬기의 뒷날개가 떨어져 나가더니 균형을 잃고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공포와 당혹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추락현장을 발견한 마을주민과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이현부 군단장은 “부락을 피해라”고 지시했고 이에 정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좌측으로 쏠리며 급강하하는 헬기가 부락을 피하도록 조종간을 잡고 안간힘을 썼다.
또한 참모들과 수행원들은 군단장을 살리기 위해 이 중장의 몸을 겹겹이 껴안았다. 그러나 결국 헬기는 인근 과수원으로 추락했다.
사고 당시 배터리의 전원을 떼어내려다가 우측 문밖으로 튕겨져 나온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는 헬기추락 현장에 나타난 마을 주민들에게 “빨리 배터리를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기체가 폭발한다. 군단장님을 살려야 한다”고 절규한 후 실신했다.
이 사고로 탑승장병 10명 중 7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끝까지 군단장을 껴안으며 지키려고 했던 작전참모 허정봉 대령,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 감찰참모 노용건 중령, 비서실장 한황진 소령, 전속부관 서상권 중위와 조규성 상병은 머리를 다친 군단장과 함께 그 자리에서 순직했다.
군단장 지시에 따라 추락하는 헬기가 부락을 피하기 위해 조종간을 잡고 안간힘을 썼던 조종사 이지성·이수호 대위와 보조승무원 문기남 상병 등 3명은 다행히 목숨을 건지며 부상을 입었지만, 정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사고 후유증으로 한달 만에 군단장 곁으로 떠났다.
육군 사고조사반은 ‘사고 원인을 기상이변에 의한 프로펠러 손상’이라고 발표했고, 순직 장병들은 영결식을 거쳐 이현부 장군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른 순직자들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처럼 이들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사고 현장에서 순직한 7군단장 故 이현부(육사 20기) 중장은 육사 졸업시 학업성적과 리더십이 가장 우수한 생도가 받는 ‘대표화랑’상을 수상했다.
그는 기계화부대에서 소대장~사단장등 모든 지휘관직을 역임하고 또 기동군단장에 보직되어 기계화부대 작전분야의 1인자로 통했다.
또한 군사전술과 작전지휘 능력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생활 자세와 리더십을 포함한 인품도 탁월하다는 정평을 얻어 군단장직책에도 동기생 중에 가장 빨리 보직됐으나, 그만 취임 두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故 한황진(육사37기) 중령 역시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하고, 럭비부 주장까지 할 정도로 실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특히 한 중령은 임관 후 첫 번째 보직부터 승리부대에서 필자와 군생활을 같이 시작해 인접 중대장직을 수행했으며, 이 장군은 당시 부사단장으로 필자와 함께 근무한 인연도 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2)] ‘전방오지 산짐승과 눈싸움 그리고 셋방살이 오강의 추억…’ 참조)
한 중령은 미국 해대원 유학 복귀 후, 필자가 근무하던 무적태풍부대의 인근부대의 대대작전장교로 배치받아 오랜만에 친분을 나눌 수 있었으나, 워낙 우수한 장교인지라 군단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헌데 보직된지 얼마 안되어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들의 순국은 당시 그들을 군생활의 멘토로 삼고 있던 필자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또한 “추락 당시 수행원 모두가 이 장군을 끝까지 보호하려 장군을 감싸고 있었다”라는 사고수습자가 전해준 증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숙연케 했다.
이 장군과 참모 및 동기생 한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바쁜 작전보좌관직을 수행하던 필자도 참모에게 보고후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전역한 병사들까지도 포함한 수많은 장병이 조문했던 7군단 사령부의 장례식장은 애도를 표하던 그들의 안타까운 눈물바다였다.
‘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 즉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아들 돌보듯 한다면 가히 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 지형편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대전 현충원의 묘비 번호를 1048번부터 1052번까지 나란히 부여받고 안장되었고, 사랑하는 동기생 한 중령은 새로운 군번인 묘비번호 ‘1-203-1051번’을 부여받았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다가오자 먼저 떠난 전우들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다. 발렌티누스는 사랑을 위해 순교했다. 故 이현부 장군과 한황진 중령 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순국했다. 비록 목적은 달랐으나, 이들의 순교와 순국은 남을 위한 희생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을 더욱 뜨겁게 사랑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립 현충원을 찾아 옛 전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면서, 전후방 각지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을 정진하며 묵묵히 책무를 다하고 있는 국가 안위의 마지막 보루인 우리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