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ABL생명 매각 속도전…자산 '51조' 생보사 탄생하나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우리금융그룹이 동양생명‧ABL생명에 대한 실사기한을 연장하면서 인수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가격을 둘러싼 진통은 클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가를 두고 동양생명‧ABL생명의 대주주인 다자보험과 우리금융 간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금융이 부정대출 관련 당국 제재가 내려지기 전 인수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두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당초 지난주 끝낼 예정이었던 동양생명‧ABL생명에 대한 실사기한을 한 주 연장했다.
우리금융은 6월 25일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대주주인 다자보험과 비구속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인수 협의에 나섰다. 비은행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험업 진출을 고려 중인 우리금융은 당초 롯데손해보험 지분 인수를 검토했으나 추진하기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금융은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한꺼번에 인수해 보험업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은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미래 성장 가치, 그룹과의 시너지 여부 등을 검토하고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 위해 실사 기한을 연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주 안으로 실사를 마무리한 뒤 이달 말 다자보험으로부터 두 회사의 경영권 지분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우리금융은 손태승 전 회장이 연루된 부정대출 사건이 걸려 있어 보험업 진출을 위해 속도를 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 현장검사에 나서 2020년부터 올해 1월까지 부적정 대출이 발생한 사실을 인지했다.
우리은행은 2020년 4월 3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등을 대상으로 42건, 총 616억원 규모의 대출을 내줬다. 이 가운데 28건, 350억원이 대출 서류 진위 여부 확인 누락, 부적정한 담보‧보증 평가, 대출금 용도 외 유용 등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우리금융에 제재가 내려지면 보험사 인수를 위한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사가 다른 금융사의 최대주주가 되려는 경우 최근 1년 동안 기관경고 등 제재조치를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은 실사를 완료한 뒤 당국의 제재가 내려지기 전에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양생명은 올해 상반기말 기준 자산규모 33조3057억원, ABL생명은 17조7591억원을 기록했다. 두 회사의 자산규모를 단순 합산하면 51조648억원으로 생보업계 6위에 안착하게 된다.
다자보험 역시 안방보험이 파산하면서 매각에 속도를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동양생명 지배구조는 중국보험보장기금→다자보험그룹→다자생명→안방그룹홀딩스→동양생명으로 구성된다. 안방보험은 동양생명과 관계없는 회사이지만, 다자보험그룹이 안방보험의 구조조정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인 만큼 목적을 달성한 상황이어서 동양생명과 ABL생명 매각을 서둘러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금융과 다자보험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매각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남은 문제는 가격이다.
다자보험은 두 회사의 매각가로 2조원 규모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우리금융은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오버페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우리금융은 1조원 후반대의 금액을 고려 중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다자보험이 설립 목적인 안방보험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만큼 빠르게 한국 자산을 처분하려 할 것"이라며 "우리금융 역시 손 전 회장 관련 제재가 내려지기 전 인수를 마쳐야 한다는 점에서 빠르게 인수가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자보험이 2조원 규모를 제안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산규모 15조원인 롯데손보 인수가로 2조원 중반대가 거론됐던 것을 감안하면 더 낮은 가격에 자산규모가 더 큰 회사를 사들일 수 있는 것"이라며 "단숨에 업계 6위권에 오를 수 있는 만큼 우리금융으로서는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건전성 비율이 낮은 점은 우려 요소로 지목된다. 동양생명의 상반기말 기준 지급여력(K-ICS) 비율은 167.1%로 나타났다. 금융당국 권고 비율은 150%를 상회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수치는 아니다.
ABL생명의 경우 올해 1분기 말 기준 160.6%의 K-ICS 비율을 기록했다. 다만 이는 K-ICS 도입에 따른 경과조치를 적용한 비율로, 적용 전 비율은 114.4%다. 당국 권고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또 동양생명의 투자손익이 부진한 점이 매각가 협상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상반기 기준 동양생명의 투자손익 규모는 87억2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136억8000만원에 비해 36.3%나 감소했다.
다만 보험손익이 증가한 점은 유리한 요소로 평가된다. 같은 기간 동양생명의 보험손익은 116억2000만원에서 136억8000만원으로 17.7% 상승했다. 건강보험, 종신보험 등 보장성 상품 판매 확대에 따라 보장성 연납화보험료(APE)는 314억5000만원에서 387억5000만원으로 23.2% 늘었다. APE는 보험료 납입 주기를 1년 단위로 환산한 것으로, 이 수치가 클수록 보험 판매액이 크다는 뜻이다.
이에 당국 제재 전 인수를 마무리해야 하는 우리금융이 '오버페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부정대출과 관련해 당국의 제재가 내려지면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과할 수 없는 만큼 가격 협상이 지연될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빠른 시간 안에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는 우리금융의 협상력이 열위에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금융은 '오버페이'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제재 전 인수하기 위해서는 더 큰 지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