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K-Sapience (18)] 국가상징공간④ 거대한 쇼윈도 평양

민병두 입력 : 2024.08.01 08:54 ㅣ 수정 : 2024.08.0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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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 광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보험연수원장] 평양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피해가 가장 큰 도시였다. 소이탄 네이팜탄의 실험장이었다. 3년여간 3000여회의 공습이 있었다. 김일성이 건물 두 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없어졌다고 할 정도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은 정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 평양성 뿐만 아니라 수천 채 있었던 한옥 가옥도 모두 불에 타서 없어졌다.

 

노동당이 미제(미국)을 철천지 원쑤로 선전할 때 주민들이 동의하게 되는 한 요인으로 작동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교토를 공습 대상에서 제외한 것과 비교해 볼 만하다. 당시 미국 내 지일파는 천황이 있는 교토와 그 문화재를 공격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교토공습을 반대했다. 

 

평양이 폐허가 된 것은 사회주의 수도를 건설하는데 기회가 되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김일성주의 도시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국가의 사상과 가치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지구상의 도시가 있다면 평양을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 평양은 사회주의 건축이 가장 잘 보존된 야외박물관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건축은 정치인이 가진 가장 강력한 미학적 무기” (G. 버나드 쇼)이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체제는 그 강력한 무기를 유감없이 실험했다.

 

국가중심에 도서관과 미술관 역사관을 배치

 

김일성주의 도시, 평양은 세단계로 발전했다. 전후에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모든 공산주의 국가가 그러하듯이 중심광장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광장과 TV 송신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장은 인민을 동원하고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낫과 망치 같은 형상이 동원되고 코민테른가 적기가가 울려퍼지는 곳이다. 지도자가 여기에서 해방군을 사열하고 연설을 하면서 인민들의 충성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TV송신탑은 인민들에게 해방의 소식을 전달하는 도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곳으로 치장된다. 상하이의 동방명주타워가 TV송신탑인 것도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평양의 대동강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른다. 모란봉에서 평양역이 있는 평양 중구역은 과거 평양성이 있던 곳이다. 북한은 여기에 김일성광장을 건설(1954)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북한군의 열병식이 진행되는 곳이다. 전쟁 직후인 1951년에 중심거리를 조성했는데 남북으로 2.4Km에 이른다. 처음에는 쓰딸린거리로 명명했다.

 

김일성광장이 이 거리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선전하는 입장에서 쓰딸린거리라는 명칭이 문제가 되었다. 주체사상이 강화되면서 승리거리로 명칭을 바꿨다. 서울의 여의도 공원은 그 전에는 김일성광장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박정희가 여의도의 남과 북을 잇는 광장을 조성하고 5.16광장이라고 명명했다. 

 

평양 중구역을 명실상부하게 국가상징공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김정일이다. 김일성주의 평양건설의 두번째 단계이다. 김정일은 1980년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을 유일 지도이념으로 정립하는 것을 주도했다.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김정일은 평양의 동서축에 위치한 국가상징공간에 남북축을 만들었다. 김일성광장의 북쪽에 인민대학습당(도서관)을 만들었다. 인민대학습당은 소련의 신고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전통건축을 가미한 북한식 건축을 선보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2년에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맞아 지어졌다. 인민대학습당 앞쪽에 대주석단이 있어서 김일성광장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올려다 보게 되어있다. 위대한 수령이 조명될 수 있도록 지어졌다.

 

그 맞은 편 대동강을 건너 남쪽에는 주체사상탑을 세웠다. 김일성의 세계관과 북한의 지도원리를 담은 탑으로 형상화했다. 평양 경관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높이는 17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조 건물 중의 하나이다. 평양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밤에는 꼭대기의 붉은 색 봉화가 빛을 내면서 흔들리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 불멸의 사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역시 1982년 김정일의 작품이다. 인민대학습당과 주체사상탑 사이에 주요한 건물들이 배열해 있다. 주체사상탑 쪽으로는 대동강을 건너서 양쪽에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조선중앙미술관을 두었다. 승리거리를 사이에 두고 인민대학습당 쪽에는 내각종합청사와 대외경제성이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북한을 방문하게 된 한국의 건축가들이 가장 눈여겨 본 곳이 김일성광장의 배치도이다. 체제를 유지하고 우상화를 위한 공간 설계라고 하지만 인민대학습당을 중심에 놓고 양쪽에 역사박물관과 중앙미술관을 놓은 곳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시도해보기 힘든 과감한 상징배열이라는 것이다. 인민대학습당은 우리로 치면 광화문광장의 세종문화회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양식을 도입한 것도 비교가 되어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김정일, 건축 예술의 창작자가 되다

 

김정일은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 북한 건축을 총지휘했다. 김정일은 1991년에 그의 건축에 대한 생각을 담아 ‘건축예술론’이라는 책을 펴냈다. 2007년 북한에 학술여행을 다녀온 뉘른베르크 예술아카데미의 크리스천 모스토펜이 이를 영문 팜플렛으로 요약했다. 김정일의 건축예술론을 보면 평양의 건축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아래는 ‘이제는 평양건축’ 필립 뭬제아 엮음. 도서출판 담디) 

 

“건축은 계급성을 띤다. 건축은 그것이 어느 계급의 이익을 반영하고 어느 계급을 위하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계급사회에서 계급성을 떠난 초계급적인 건축이란 있을 수 없으며 또 있어본 적도 없다” “건축은 나라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건축을 보고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을 이해할 수 있다.”

 

북한 건축물에는 궁전이라는 명칭이 많다. 압박받고 수탈당했던 노동자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주인이라는 새 신분에 맞게 궁전에 살며 일한다는 것. 그리고 국가는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 궁전을 짓는다는 것이다. 국가는 인민의 신하니까. 그래서 인민문화궁전, 만경대소년학생궁전등이 있다.” (북한여행. 뤼디거 프랑크. 한겨레 출판) 이런 철학은 김정일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구 소련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보편화된 생각이다. 중국 천안문광장의 민족문화궁, 동베를린의 ‘노동자들의 궁전’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인민대학습당을 국가상징공간의 중심에 놓은 것도 이러한 철학 원리에 기반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 체제가 인민을 위한 것이냐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그런 건축문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업적과 위대성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가장 직관적이고 항구적인 수단은 기념비 건축이다. 기념비 건축은 인간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며, 따라서 사회발전과 세대교체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사상 의식에 능동적으로 작용한다. 대기념비는 서사시적 화폭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사람들을 키우는데 적극 이바지하고 있다.” “건축을 혁명적 수령관으로 일관시키는 것은 주체건축 창작에서 확고히 지켜야 할 근본 원칙이다.” “건축의 예술적 영상은 수령의 위대성을 높이 칭송하기 위한 담보가 되며… 수령의 위대성을 높이 칭송하는데서 기본은 수령의 영상을 밝고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다. 건축 공간에서는 수령의 영상을 중심에 두고 모든 공간요소를 배치해야 하며 모든 건축의 구성 요소는 수령의 영상을 부각시키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수령의 영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들에게 수령의 품에서 행복을 누린다는 높은 긍지와 자각을 안겨줄 수 있다. 수령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대기념비는 거기에 담기는 사상적 내용이 풍부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웅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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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수대 김일성.김정일동상. [사진=연합뉴스]

 

만수대 대기념비 동상 기술은 다른 나라에도 수출

 

평양의 북쪽에는 만수대가 있다. 천리마 동상, 만수대의사당, 만수대 대기념비로 불리우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있다. 앞서 김정일이 ‘건축예술론’에서 이 기념비를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서사시적으로 펼쳐 보이고 위대성을 높이 칭송해야 한다, 웅장해야 한다, 경외의 대상이 되게 끔 크고 장대하고 엄숙한 건축물이어야 한다.

 

“만수대 대기념비는 북한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 중의 하나다. 북한의 해방자이자 건국가, 승리자, 승리의 보호자라는 이미지를 모두 담을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 황금색으로 권위를 더했다가 인민 친화적인 청동색으로 바꾸었다 김일성의 오른팔은 미래를 향해 쭉 뻗어있다. 그와 인민의 성취 모습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에서 미래를 가르키는 사람은 김일성이다. 김정일 사후 그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졌다. 왼팔은 김일성 처럼 뒤로 돌리고 있다. 오른팔은 아래로 향해 있다.

 

뒷 배경은 혁명기념관이다. 70미터 높이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백두산 천지연의 그림이다. 백두산은 북한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김일성 김정은 동상의 양편에 청동으로 제작한 군상이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대표적 조각이다. 노동자 농민 지식인에게 할당된 영웅적 자세로. 맨 앞의 노동자는 김일성전집을 들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라는 곳이 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해방전쟁을 묘사하는 작품을 만들 때 만수대창작사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앙골라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가 대표적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도 있다”고 뤼디거 프랑크가 기록하고 있다. (북한여행. 한겨레출판) 

 

남서쪽에 있는 김일성 생가에서부터 북동쪽의 김일성 묘지 금수산 태양궁전, 개선문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북한의 건축물 건조물은 모두 김정일의 건축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항미전쟁이다. 전쟁의 영웅이다. 1973년9월 북한에서 지하철을 남한 보다 먼저 개통했다. 북한의 국력의 상징으로 선전했다. 이 모든 것을 영국의 한 언론은 ‘대동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 임산부석 이외에 영웅석이 따로 있다. 전쟁과 복역으로 부상을 당한 이들을 위한 좌석이다.

 

북한은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면서 능라도에 5.1.노동절체육관을 건립했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 시절에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일은 전쟁장면을 연출하는 대규모 매스게임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미국이 보는 마지막 전쟁신이라고 했다. 북미수교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평양을 방문하려던 클린턴의 계획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능라도 경기장과 함께 대규모 호텔의 건축에 나섰다. 피라미드 모양의 류경호텔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남한에서 가장 높았던 63빌딩을 훨씬 능가하는 높이를 자랑했다. 재정난으로 방치하다가 이집트 통신사가 공사를 재개했지만 다시 무산되었다. 지금은 LED조명으로 미디어파사드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김정일은 샹하이를 방문한 후 “천지가 개벽했다”며 평양을 푸동처럼 만들고 싶어했다. 다양성 통일성 입체성 비반복성의 원칙 아래 아파트 거리를 조성하려고 했다. 그가 1980년대부터 살림집의 건축 원리로 획일성 대신 다양성을 내세운 것의 연장선상이다. 평양에 건설하고자 하는 신도시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김정은이 한편에서는 핵무장을 서두르면서도 다른 한편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평양 내 신도시이다. 최고 45층짜리 수직적 거대건축을 서둘렀다.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보통강변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김정은의 최고 업적인 인민 생활의 변화를 보여주는 거리이다. 한국의 타워펠리스 등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자 북한도 영향을 받았다. 평양은 원래 사회주의 이념에 맞게 직주근접으로 계획되었다. 노동자들의 집과 일터가 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층아파트를 건립하는 것도 직주근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평양은 보통 인민의 천국은 아니다. 북한 내부엘리트, 선택된 인민들의 천국이다. 잘 만들어진 쇼위도 같은 평양은 그 존재 만으로도 중요한 체제유지기능을 한다. 여기까지 천리마 속도전을 함께 한 사람들의 충성심을 보상하는 공간이며, 여기로 달려오기 위해 만리마 속도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된다. 인구 250만명의 이 도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유지하는 뼈대이다. 사회주의가 꿈꿨던 평등한 세상은 아니다. 지금은 보통인민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언젠가는 저항의 동기가 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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