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현대차·LG 총수, 여름휴가 반납하고 하반기 위기전략 세운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재계 총수들이 올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하반기 대응을 위한 비상경영 체제에 고삐를 죄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낼 전망이다.
이는 올해 하반기에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AI(인공지능) 경쟁에서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HBM(고(高)대역폭메모리) 패권 다툼에서 기술 경쟁력 확보가 주요 과제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기술 초격차 경쟁력 확보와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에 시간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엔비디아에 HBM 납품 달성에 총력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반도체 시장 회복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452.24% 늘어나 10조원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달성했다.
특히 AI(인공지능)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HBM 수요가 늘어난 점도 어닝 서프라이즈의 주요인이 됐다. HBM 수요 증가는 D램, 낸드플래시 등 일반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삼성전자 하반기 실적 향상의 열쇠는 HBM이 거머쥐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미국 AI 반도체업체 엔비디아에 HBM을 반드시 납품해야 한다. HBM의 주 수요처인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이 80%가 넘는 등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업계 최초로 개발한 5세대 HBM ‘HBM3E 12단’ 제품 샘플을 엔비디아에 공급했고 엔비디아는 현재 삼성전자 HBM을 놓고 품질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HBM 공급 계획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춰온 이재용 회장이 어떻게 지원사격을 할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일식집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와 만났다. 두 회장의 만남은 실리콘밸리 일식집이 자사 SNS 계정에 두 사람과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HBM 이외에 6G(6세대) 이동통신 기술 개발을 통한 미래 네트워크 시장 선점과 삼성만의 차별화된 AI 기술을 보다 많은 소비자에게 선보여 ‘AI가전=삼성’, ‘AI폰=갤럭시’ 공식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HBM 첨단화와 AI 밸류체인 리더십 강화에 주력
최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귀국 후 출장 결과와 경영전략회의 내용을 토대로 하반기 위기관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달 22일 미국을 방문해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인텔 등 미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CEO들과 만난 후 곧바로 동부로 이동해 SK바이오팜과 SKC 자회사 앱솔릭스를 방문한 후 이달 9일 귀국했다.
최 회장은 미국 출장 중 화상으로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해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고 밝혔다.
그는 또 화상 회의에서 경영진에게 SK그룹의 전사 역량을 활용한 ‘AI 밸류체인(가치사슬) 리더십’ 강화를 독려했다.
업계는 최 회장과 주요 경영진이 이번 출장에서 미국 빅테크 파트너 업체와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가 손잡고 SK AI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사업 협력을 위한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점치고 있다.
특히 최 회장에게도 HBM 경쟁력 강화는 촌음을 다퉈야 하는 핵심 과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해 시장 리더로 평가받고 있지만 HBM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가 HBM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어 SK하이닉스는 주도권을 거머줘야 한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앤디 재시 아마존 CEO와 만났는데 이는 SK가 HBM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아마존은 최근 머신러닝(ML) 학습과 추론에 특화한 자체 AI 반도체 ‘트레이니움’ ‘인퍼런시아’를 잇따라 개발하는 등 반도체 설계부터 서비스까지 AI 모든 사업 영토에서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트레이니움과 인퍼런시아는 처음부터 AI 목적으로 개발해 HBM이 반드시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월 업계 최초로 HBM3E를 양산해 고객사에 납품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과 앤디 재시는 이번 만남에서 양사간 협력 방향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미국 전기차 전용공장 가동 등 글로벌 경영 박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예년처럼 생산공장 휴가철인 8월 초 혹은 중순에 별다른 휴가 일정 없이 집에 머물며 하반기 경영 구상에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 하반기 신차 출시와 판매 극대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고민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미국 전기차 전용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가동을 앞두고 있다.
HMGMA는 로보틱스(로봇공학)·AI·소프트웨어 등 첨단기술을 모두 갖춘 미국내 현대차의 첫 스마트팩토리(지능형 생산공장)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올해 10월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있는 HMGMA에서 아이오닉5 등 전기차를 본격 생산한다.
특히 현대차는 연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플래그십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아이오닉9(가칭)'도 HMGMA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HMGMA를 활용해 연간 전기차를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고 수요가 늘어나면 50만대까지 늘릴 방침이다.
HMGMA를 본격 가동하면 아이오닉 시리즈를 비롯해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브랜드 6개 차종이 생산될 예정이어서 정 회장은 공장 가동에 따른 신차 마케팅 전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 회장은 올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대미(對美) 수출 전략에 중대 변수가 생길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 구광모 LG그룹, 'ABC 분야' 경쟁력 초격차에 집중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그동안 임직원에게 여름 휴가 기간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갖두록 당부해온 점을 감안할 때 일정 기간 휴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구광모 회장은 휴식 못지 않게 하반기 경영전략 구상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측된다.
구 회장의 하반기 경영 방침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은 AI·바이오(Bio)·클린테크(Clean Tech) 등 이른바 ‘ABC’ 분야 경쟁력 강화 방안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은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테네시주와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를 찾아 북미 현지 사업과 미래성장동력인 ABC 분야의 준비 현황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보여주듯 구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AI 반도체 설계업체 '텐스토렌트'와 AI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를 방문해 반도체 설계부터 로봇까지 AI 밸류체인 전반을 점검했다.
또한 구 회장은 '반도체 설계의 전설'로 알려진 짐 켈러 텐스토렌트 CEO와 만나 최근 가전·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근 AI 반도체 추세를 확인했다.
그는 또 텐스토렌트 기술과 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산업 영향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정의선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크고 작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검찰이 불복하며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최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구 회장은 LG그룹 창사 이래 최초로 모친 김영식씨와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구연수씨 등 세모녀와 상속 분쟁을 겪고 있다.
이들이 리스크를 딛고 하반기를 준비하려면 미래 먹거리 발굴과 이를 위한 협력 방안이 절실하다.
재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삼성은 전 계열사 임원이 주 6일 근무를 시작하고 SK는 토요일 사장단 회의를 부활하는 등 주요 그룹사를 중심으로 재계 내 비상경영 체제가 확산되는 분위기”라며 “이에 따라 그룹 총수들도 여름휴가가 아닌 짦은 휴식과 함께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에 따른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