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이자-비이자 불균형 여전...요원한 ‘수익 다각화’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의 올 1분기 순이익이 일회성 비용으로 역성장했지만 수익성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고금리 기조와 대출 성장이 맞물리면서 이자 이익 성장세가 이어졌다. 은행들은 이자 부문에 기울어진 이익 지표를 비(非)이자 부문으로 분산하겠다고 제시해왔지만 지표상 눈에 띄는 변화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3조372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2.8% 줄었다. 이들 은행이 1조6650억원 규모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금을 충당부채(영업외손실)로 반영하면서 순이익이 감소했다.
다만 파생상품 관련 일회성 비용이 없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이다. 이들 은행의 올 1분기 총영업이익은 11조5075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8% 늘었다. 최종적으로 거둔 순이익이 줄었지만, 은행권의 수익성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5대 시중은행의 영업이익 성장은 이자 이익 증가에 기인한다. 올 1분기 기준 총영업이익 중 이자 부문에서 일어난 이익은 10조7850억원으로 집계됐다. 비중은 전체의 93.7%에 달한다. 나머지 6.3%를 수수료를 비롯한 비이자 부문이 채웠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올 1분기 이자 이익은 2조552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8.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의 이자 이익은 6.2% 늘어난 2조4054억원을 기록했다. 농협은행(1조9829억원) 역시 1년 전과 비교해 7.0%의 성장률을 보였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올 1분기 이자 이익은 각각 1조9688억원, 1조875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동기 대비 하나은행은 1.6%, 우리은행은 0.9% 감소했다. 1년 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감소율 자체가 크지 않고, 2조원에 근접한 대규모 이자 이익을 거뒀다.
은행권 이자 이익이 늘어난 건 고금리 기조 속 대출 성장세가 이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5대 시중은행 공시에 따르면 올 1분기 원화대출금 잔액은 약 1531조6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8% 증가했다. 특히 기업대출 증가율은 평균 7.1%를 기록했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올 초 대환대출 플랫폼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까지 확대되면서 가계대출 증감에 영향을 줬다”며 “우량 자산으로 꼽히는 기업대출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대출금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당장 이자 이익으로 실적 성장세를 떠받치고 있지만, 수익성 다각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대형 시중은행들이 고금리 기조에 올라탄 이자 장사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가운데 영업 구조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자 부문 성장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이자 부문 증대까지 이뤄내면 양적·질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은행권의 구상이다. 다만 현재 은행들이 비이자 부문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제한적이라 눈에 띄는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비이자 부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수료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과 상생금융 확산의 영향으로 발굴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 예금 이체와 인출은 물론 중도상환, 환전 등의 분야에서 수수료를 면제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파생상품 판매 등에서 나오는 신탁 수수료 역시 홍콩H지수 ELS 원금 손실 사태로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나마 유망한 건 퇴직연금과 자산관리(WM) 분야인데 은행 간, 업권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한 상황이다.
특히 연내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완화로 시장금리가 하락할 경우 은행권의 이자 이익 축소는 불가피하다. 이자 이익 비중이 90%를 상회하는 현재의 수익 구조상 금융시장 변동성에 따라 실적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정서상 안 받거나 줄여온 수수료를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다른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며 “비이자 확대는 그룹 차원의 경영 전략이기 때문에 당국과도 꾸준히 소통하며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