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 이자로 곳간 채운 은행...올해는 부실 대비 총력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내 5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실적 둔화 우려에도 역대급 이자이익에 기반한 호실적을 시현했다. 민생금융 지원과 건전성 관리 등을 위한 선제 비용 반영도 은행권의 ‘실적 파티’를 멈추지 못했다. 시장에선 올 하반기 수익성 및 리스크 관리가 실적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2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공시를 종합한 결과 지난해 당기순이익 합계는 14조1023억원으로 전년(13조8482억원) 대비 1.83% 증가했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4개 은행이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말 이자 캐시백(환급)을 골자로 한 2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과 잠재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 전입을 회계 처리했는데, 조(兆) 단위 비용 지출에도 최종 순이익은 꺾이지 않았다.
이는 금리 상승과 대출 성장이 맞물려 나타난 이자이익 성장에 기인한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이 ‘이자’로만 얻은 이익은 41조3880억원으로 전년(39조5646억원)보다 4.6%(1조8244억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은행별 지난해 이자이익은 △국민은행 9조8701억원 △신한은행 8조4027억원 △하나은행 7조9174억원 △농협은행 7조7616억원 △우리은행 7조436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은행의 전년 대비 이자이익 증가율은 0.2~5.4%로 나타났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의 총영업이익(44조3262억원)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93.4%에 달한다. 은행이 1000원의 이익을 냈을 때 934원은 대출이자에서 발생하고 나머지 66원을 수수료 등 비(非)이자 부문이 채우는 구조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완화 시점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은행권의 이자이익도 당분간 견조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원화대출금 잔액은 1509조8000억원으로 전년(1448조9000억원) 대비 4.2% 증가했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대출 자산의 구성이 변하는 건 있을 수 있어도 증가 흐름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계와 기업 모두 수요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범위 내에서 대출이 관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에선 올해 영업 환경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자 중심의 양적 성장과 별개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은행들의 수익성 지표는 이미 둔화하기 시작했다.
하나은행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순이자마진(NIM)은 1.52%로 전년동기(1.74%) 대비 0.22%포인트(p) 급락했다. 우리은행의 NIM도 같은 기간 1.59%에서 1.56%로 0.03%p 떨어졌다. NIM은 자산단위당 이익률로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로 꼽힌다.
고금리 장기화로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약해지면 건전성이 악화되고, 대손비용 증가로 수익성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평균 연체율은 0.29%로 전년 말(0.21%) 대비 0.08%p 뛰었다.
은행권에선 올 하반기 중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해 이자 마진이 줄어드는 와중에 잠재 부실마저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사실상 지난해 수준의 실적 창출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대손충당금은 무조건 손실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환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제 대비 성격으로 봐야 한다”며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NPL) 같은 건전성 지표 추이와 경기 전망을 반영해 당분간 보수적으로 운용될 걸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