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사법 족쇄' 벗어난 이재용 회장, '뉴 삼성' 위한 투자 가속페달 밟는다

전소영 기자 입력 : 2024.02.05 18:22 ㅣ 수정 : 2024.02.05 18:22

이재용 회장 사법리스크 3년 5개월 만에 일단락
대한상의·경총·무협 "이 회장 무죄 판결에 환영"
검찰 항소 가능성 있지만 1심서 검찰 논리 빈약 드러나
이 회장, AI 혁명 발맞춰 첨단 반도체 등 'IT 기술 초격차' 노릴 듯
삼성전자 지난해 3분기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 75조원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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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106회에 걸친 재판, 19만 페이지에 이르는 검찰 수사기록, 제출 증거 2만3000개, 증인신문 80명, 의견서 600여개 등 대기록을 쓴 ‘사건번호 2020고합718’'

 

이재용(56·사진) 삼성전자 회장을 둘러싼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재판이 무죄로 끝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햇수로 9년째 겪은 '사법 리스크'가 일단락됐다. 

 

또한 이재용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前)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아 승기가 삼성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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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사진 = 연합뉴스]

 

 

■ 3년여간 이어온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적법성 논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015년 5월 26일 주식교환 방식 합병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양사가 밝힌 합병 배경은 핵심 사업인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식음료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해 2020년까지 60조원 매출을 달성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취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양사 기업가치를 기반으로 주식가치를 평가하고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맞바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의 주식 전량을 매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양사는 그해 7월 17일 각 회사 임시 주총에서 승인을 받아 합병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2018년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계기로 논란이 재점화됐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하던 검찰 총구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 모두 이 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행위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교환한다는 조건은 그만큼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제일모직이 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제일모직이 확보한 삼바 순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1면 출범한 삼바는 4년간 적자를 내던 상황이었는데 2015년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자회사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 행사에 따른 것이다. 

 

삼바는 2012∼2014년 바이오에피스를 단독 지배하는 종속회사(Subsidiary)로 판단해 장부를 하나로 합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다. 하지만 회사를 함께 설립한 미국 제약업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을 이유로 2015년 바이오에피스를 관계기업(Affiliate)으로 정립해 개별재무제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보유주식도 장부가에서 공정가(시장가)로 평가했다. 그러자 삼바의 에피스 지분 장부가 2900억원에서 공정가 4조8000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즉 삼바는 바이오에피스로부터 4조5000억원이라는 지분평가 차익을 거두게 됐고  1조9000억원대 순이익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제일모직 가치를 향상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2015년 당시 이 회장이 확보한 제일모직 지분은 23.2%다. 삼성 총수 일가 지분을 모두 합치면 42.7%에 이른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삼성물산은 삼성 지배구조에서 사실상 지주사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양사 합병으로 이 회장은 그룹 내 지배력이 강화된 셈이다.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를 통해 제일모직 가치를 향상시켰고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제일모직 대주주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조직적인 불법행위라고 판단한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삼성은 합병 비율이 국내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 1항1호, 시행령 제176조의5 1항1호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산정된 합병가액을 근거로 정상적으로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삼성물산 주주총회 표결 결과 전체 주주의 69.53% 찬성으로 제일모직과 합병안이 가결돼 문제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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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 = 연합뉴스]

 

 

■ 재판부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 없다” 모두 불인정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5일 검찰의 19개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해 이 회장과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제일모직 자회사 삼바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무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 의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회장의 변호인단은 재판이 끝난 후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바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앞으로 검찰의 항소가 이어질 경우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까지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1심에서 검찰 논리가 빈약하다는 판결이 나온 만큼 이 회장에 대한 사법리스크는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풀이된다. 

 

■ 이 회장, 대규모 투자· M&A 등 삼성 新경영에 가속도

 

1심 판결로 이 회장은 경영활동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돼 기업 인수합병(M&A) 등 삼성의 신(新)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메모리 시황과 IT(정보기술) 수요 회복세가 예상되는 올해 반등을 노리고 있다. 

 

특히 2017년 미국 자동차 전자부품(전장)업체 하만(Harman)을 끝으로 멈췄던 삼성전자의 대형 M&A 시계추가 다시 움직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대형 M&A는 꾸준히 가능성만 제기됐을 뿐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올해 1월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올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4’에 참석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다시 한번 대형 M&A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간 대형 M&A 최대 걸림돌 중 하나로 이 회장 사법리스크가 지적돼 왔던 만큼 이번 재판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75조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금 보유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못하고 현금을 쌓아뒀다는 얘기"라며 "이 회장이 사법 족쇄에서 벗어나 앞으로 보다 야심찬 투자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계도 이날 1심 재판 결과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대한상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과 이제 막 회복세에 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경영계는 법원 판단을 존중하며 금번 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됐던 의혹과 오해가 해소돼 다행”이라며 “삼성이 그동안 사법리스크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판결을 글로벌 기업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돼 결과적으로 우리 수출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다행”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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